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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자유의 경계선 걷다.
자연스러움이란 또 다른 이름의 ‘운명’
2016년 04월 22일 (금) 17:58:26 김광연 flowersinlake@hanmail.net

운명론 (fatalism)

운명론 또는 숙명론은 세상의 모든 삶의 과정이 어떤 신비하고 절대적인 힘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변경될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운명론에 따르면,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정해진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이를 ‘운명론’이라고 한다. 이 숙명론은 흔히 종교적이고 관념적으로 발전하지만, 한편으로는 기계론적 내지는 유물론적 숙명론도 있다. 기계론적 유물론은 우연을 인정하지 않고, 필연을 절대시 하면서 모든 것의 원인과 결과의 운동방식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자연 현상이나 인간의 활동이 이미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그 원리에 따라 살아가며, 동시에 사람의 힘으로는 어떠한 것도 정할 수 없이 무조건 그 정해진 것에 따라야 하는 것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탁(神託)’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이미 신들이 운명을 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신생아의 신탁과 행복의 여신에게 운명을 걸기도 했다. 인간은 초월자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자신의 모든 운명을 신에게 걸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인간의 연약함에서 이 운명이 스스로 나온 것은 아닐까?

기독교에서의 예정론(豫定論)은 인간의 구원이 신(God)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으며 신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리 정한 바를 실현시켜 나간다는 이론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은 타락하고 스스로 선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존재에서 시작된 이론은 무조건적인 선택과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신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한 이론이다.

   

운명과 자유의 경계선

신이 미리 정해 놓은 길, 예정론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개척, 그 경계선은 어디서 만날까? 우리는 정말 신의 전적인 섭리와 의지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신의 간섭이 지극히 제한적이어서 인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일까? 아니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은 신이 정해 놓은 운명의 기찻길에 서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기찻길을 만들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늘 이런 질문과 사유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나의 운명, 그리고 너의 운명 아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만날 운명이야”.. 이런 속삭임과 말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영향을 미칠까?

삶은 정말 운명처럼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일까? 그리스가 붕괴되고 로마의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던 시기 헬레니즘 시대가 도래 했다. 당시 스토아 학파(stoa)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su)는 “태초부터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주로부터 당신에게 주어진 것이고 당신의 운명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운명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모든 불행 곧 가장 끔찍한 불행의 죽음이 닥쳐올 운명적 필연성을 너무 당연히 받아들였다. 이들은 모든 인간의 삶이 죽음이라는 운명의 손짓을 거부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모든 인간은 거대한 질서 속에서 운명론적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운명론 VS 자유의지론

과연 이 운명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지배하는 것일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일까?
오늘은 갑자기 운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내일을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또 이미 정해진 것이라면 우리의 후천적인 노력은 무의미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아니 우리의 삶에게 질문을 던진다. 운명에 맡겨야 하는지 아니면 무소의 뿔처럼 무조건 앞만 보고 가야하는지.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운명이 있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해진 운명을 따라야 하는 우리의 삶에 신(神)의 존재를 상정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우리는 운명론자인가 아니면 자유 의지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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