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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 앞에 다시 서기
장윤재교수의 ‘포스트휴먼신학’을 읽고
2017년 05월 28일 (일) 07:06:37 유미호 ecomiho@hanmail.net

근대 문명이 수명을 다했습니다. 문명은 쇠퇴하고, 세상은 더 이상 좋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 곧 더 이상 성장으로 위험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른 것입니다. 기적처럼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나라도 이제는 여러 ‘위험’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예외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 글쓴이 유미호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부설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입니다
이렇게까지 된 것은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근대적 인간은, 우리와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받은 생명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졌고, 우리는 지금 일상의 삶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참으로 ‘불편한 진실’의 세상을 살아갑니다.

핵 발전으로 세상이 방사능에 오염되고, 석탄화력 발전으로 기후가 붕괴되고 미세먼지로 숨 쉬기 힘든 날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이 땅과 바다를 뒤덮고, 매년 가축들이 고통 중에 산 채로 매장되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영혼의 쉼터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어주는 산과 강이 케이블카와 댐 건설 등으로 파헤쳐져 수많은 생명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신앙적으로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책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지으신 지구의 소리에 ‘애정 어린’ 경청을 하게 하는 책입니다. 이화여대 장윤재 교수가 쓴 ‘포스트휴먼신학’(신앙과 지성사).

책을 읽고 나누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단숨에 읽었습니다. 4대강 사업과 핵발전 사고, 대규모 축산으로 고통 받고 있는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쓴 글이라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교회환경연구소의 소장으로 계실 때 여러 신학자들과 함께 성찰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강, 물 그리고 생명의 하나님’은 물론, ‘동물과 육식’, ‘물과 그 위기’, ‘핵 없는 세상’, ‘기후변화와 신 기후체제’는 여러 신학자들과 함께 한 생태신학적 성찰의 주제였습니다.

장 교수는 책을 통해 우리도 성찰하고 반응하도록 초대합니다. “그 동안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늘의 절망적 상황은 인간 중심주의가 낳은 결과다. 이제 ‘포스트휴먼 신학’을 해야 한다”라며.
대개 ‘포스트휴먼’ 하면 현존하는 인류 다음에 나타날 신인류를 말합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늙지 않으며 원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가진 인간(이에 대해서는 한국교회환경연구소가 전현식 소장을 중심으로 열두 명의 신학자들의 글을 담은 ‘포스트휴먼시대, 생명-신학-교회를 돌아보다’라는 책을 곧 출간합니다). 하지만 장 교수가 말하는 것은 좀 다릅니다. 자연의 신처럼 군림해온 인간인 ‘근대 휴머니즘의 인간’을 넘어서는 ‘포스트휴먼’의 인간을 말합니다. 인간이 자연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아주 파괴적이었음을 반성하고, 창조세계의 일원으로 겸손해져서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인간을 말합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처음 인간, 창조동산에서 하나님과 거닐던 인간의 모습으로의 회복을 말하는 듯도 합니다.

어쨌든 장 교수는 묻습니다. “아담아, 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자 청하는 성찰적 질문입니다.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는 생명들이 속출하는 창조세계 안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살피게 하는 성찰적 질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 창조 때에 나와 함께 있어 ‘참 좋다’ 하셨던 이웃이 지금 고통 중에 하나님의 자녀를 부르고 있는 그 자리를 보게 하는 성찰적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참 좋은’ 창조세계 안에서 다시금 하나님 앞에 서자는 초대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구적 상황을 보면 다소 늦은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서둘러 서투른 답변을 내놓을 것은 아닙니다. 보다 진지하게 성찰하는 가운데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각자에게 던져진 질문으로 받아 깊이 묵상하고 명료한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필요하다면, 근대 휴머니즘의 인간 개념을 뛰어넘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포스트 휴먼’의 저자 로지 브라이도티가 말하는 대로 ‘동물-되기’, ‘지구-되기’ ‘기계-되기’, 더 나아가서는 ‘강물-되기’ ‘나무-되기’ ‘플라스틱-되기’ ‘전기-되기’ 등을 해보면 각자의 자리뿐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깨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인간은 인간으로, 자연은 자연으로.

2017년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입니다. 500주년의 무게가 힘겹게 느끼지는 것은 지난 세월의 무게라기보다 다시 개혁되어야 할 낡은 것들이 쌓여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장 교수가 제안하듯이 ‘포스트휴먼 신학’ 곧 ‘인간만이 아닌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품는’ 신학으로 신앙을 바로 세우고, 또 교회가 교회다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나빠질 것만 남았다는 것은 오히려 해방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손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입니다. 아니 놓아서도 안 될 일입니다.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위기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기후가 붕괴되는 가운데 수많은 지구 생명들이 고통 중에 하나님의 자녀를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하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합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의 자리를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어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만약 그 위에서 지금의 절절한 위기(危機)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분명히 새로운 기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위험(危險) 요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에 기초한 새로운 기회(機會)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오만과 탐욕이 불러온 ‘위기의 지구’에서 또 다시 우리 인간만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그런 기회가 아니라, 지구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들을 위해 주어지는 복된 기회를 말입니다. 우선은 낡은 신학과 신앙의 허울을 벗어내고, 생명의 고귀함에 대한 존중, 생태계의 건강,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교회와 세상을 이루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위기에 처한 지구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위해 애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바라기는 7년의 흉년을 잘 극복했던 요셉과 같은 지혜로운 지도자가 우리 안에서 나왔으면 합니다. 아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당장 생각을 돌이켜 요셉처럼 지혜롭게 행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겸손히 오늘 하루를 살아낸다면, 지구는 계속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어줄 것입니다. 낮의 태양은 밝게 비추일 것이고, 밤의 달도 자신의 빛을 내어줄 것입니다. 땅도 필요로 하는 것을 기꺼이 내어줄 것입니다. 나 한 사람과 우리 모두의 깨어남을 위해서.
“나 하나 꽃피어/풀밭이 달라지겠냐고/말하지 말아라/네가 꽃피고 내가 꽃피면/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 글쓴이 유미호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부설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입니다.  글은 2017년 6월호 대한YWCA회보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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