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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소성리 현장기도
평화를 주는 작지만 큰 동네 될 것
2017년 05월 30일 (화) 11:37:17 백창욱 webmaster@eswn.kr

2017년 5월 30일(화) 성주 소성리현장 아침기도회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본문은 메시아가 태어난 장소예언으로 유명한 말씀이다. 미가의 예언은 마태복음 탄생이야기에서 빛을 발한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묻자,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다. 권력욕망의 지존인 헤롯왕은 긴급하게 대제사장들과 율법교사들을 소집하여 메시아가 태어날 장소가 어디인지 빨리 알아내라고 닦달한다. 그들은 미가서 5:2을 근거로 베들레헴이라고 정확히 답한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미가는 8세기 예언자이다. 미가는 700-800년 후 일을 예언한 것인가? 마태복음의 탄생이야기 인용만을 기다리며 그 긴 세월을 보낸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예언의 기능과 맞지 않다.

민중은 지금 당장 야웨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희망의 말씀이 절실하다. 7-8백년 후에 이루어 질 예언의 말씀에 위로를 얻고 만족할 수는 없다.

여기서 예언자의 정의를 살펴보자. 예언자는 앞일을 미리 맞히는 점쟁이가 아니다. 한자로 예는 ‘미리 예’가 아니고 ‘맡을 예’이다. 하나님 말씀을 맡은 자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는 게 예언자의 사명이다. 즉 미가의 예언은 700년 후 사람들 좋으라고 미리 말한 게 아니고 미가 시대 민중들 좋으라고 주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미가는 어떤 뜻으로 베들레헴을 메시아 나실 장소로 예언한 것인가? 베들레헴에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인가?

미가시대 당시 베들레헴은 민중들 속에서 특별한 동네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현실에서 말하자면, 제주 강정은 분단현실에서 헤게모니를 쥔 미국과 안보마피아의 탐욕으로 심히 고난당하는 동네가 됐다. 핵발전소의 전기를 실어 나르는 초고압철탑이 꽂힌 밀양과 청도 삼평리는 핵마피아의 탐욕의 제물이 된 동네이다. 광주는 민주시민의 항쟁의 상징이 된 도시이다. 한국의 50대는 청년시절, 5.18 광주로 인해 개인의 삶과 사상의 전환을 겪을 정도로 광주는 특별하다. 이들 지역은 자본과 권력이 합작해서 그들의 탐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대상이 된 동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동네들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민중이 권력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거센 저항으로 그들의 생존권, 행복권을 지키려고 했던 곳이다. 권력의 폭력에 그냥 밟히지 않고 권력의 아성에 균열을 낼 정도로 강하게 투쟁한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후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모델이 됐다. 민중의 희망으로 자리잡았다. 이들 저항의 도시들은 현대의 예언자 심성을 가진 예술가들이 그들의 언어로 무수한 예언을 쏟아내게 했다. 민중에게 희망을 주는, 거룩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역사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매년 5.18 문화제에서 나오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보라. 우리는 그 예언들이 주는 감동으로 저항과 기억, 민주와 투쟁을 더욱 다짐한다.

밀양과 삼평리에 다녀간 예술가들이 지어낸 시와 노래, 글들을 보라. 강정은 두말할 것도 없이 현재진행형이다. 군사마피아의 음모와 무력에 맞서서 지금도 면면히 평화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생명평화의 예언들을 창조하고 있다.

   

미가예언자 시대의 베들레헴이 그랬을 것이다. 이방군대는 점령하기 쉬운 시골벽지여서 대상으로 삼았는지 모르지만, 베들레헴 민중들은 이방인의 탐욕에 경종을 울리는 저항을 했다. 하나님은 베들레헴이 군화발에 밟히도록 그냥 두지 않았다. 그 결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만한 기개와 정신을 가진 동리가 됐다. 역사의 굴곡과 고난을 견디고 극복한 상징적 지역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미가예언자는 베들레헴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민중의 희망을 예언하였다. 비록 작은 고을이지만, 메시아가 나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구원의 동네로 보았다.

소성리는 현재 이 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가 됐다. 처음에는 폭탄돌리기의 희생양이었다. 사드배치는 왜관에서, 성주읍내 공군기지에서 결국은 소성리로 왔다. 안보마피아들은 할배할매만 사는 작은 시골마을이 뭘 어쩌겠냐며 얕보았다. 그러나 그 뒤 진행은 안보마피아들의 욕망대로 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똘똘 뭉쳤다. 여기에 성주 소성리만이 아니라 원불교도 김천도 같은 당사자가 됐다. 전국에서 민주시민들이 촛불로 외치고 성주로 쇄도했다. 4월 26일 기습배치에 허를 찔렸지만, 체념하지 않고, ‘사드배치반대’를 ‘사드철거’라는 한 차원 높은 구호로 승화시키면서 오히려 저항을 배가시켰다.

이제 소성리는 이 나라의 여러 동네 중 작은 마을이지만, 향후 이 나라가 독립국으로 사느냐, 식민지로 사느냐를 가늠하는, 주권을 좌우하는 핵심 동네가 됐다.

베들레헴 민중들의 남다른 저항이 메시아가 나실 영원한 상징처가 됐듯이, 소성리의 물러섬없는 저항과 간절함은 하나님의 뜻과 상통하여서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미가 5:5) 그래서 동북아시아가 전쟁무기 경쟁없는, 평화공존으로 가는 길을 열 것이다.

   

미가가 이방군대의 침략에 저항의 상징이 된 베들레헴을 메시아의 나실 곳으로 예언했듯이, 소성리가 안보마피아들의 농간을 뚫고 이 나라에 평화를 선사하는 작지만 큰 동네가 될 것이다. 소성리의 간절함이 이 나라를 다스릴 평화로 확장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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