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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될 때만 개혁이다
개혁 프로그램은 계속 제시되었지만
2017년 08월 02일 (수) 16:29:35 강명관 dasanforum@naver.com

조선후기의 양심적 지식인, 학자들은 세상을 바꿀 계획을 내놓았다. 그들을 흔히 실학자라고 부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실학’이란 명칭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임병양란 이후 개혁책이 수없이 제출된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 풍성한 개혁책을 보고 있으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흐뭇하기도 하지만, 한편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혁 프로그램은 계속 제시되었지만

예컨대 유형원(柳馨遠)은 『반계수록(磻溪隧錄)』에서 임병양란 이후 사족체제가 노정한 문제를 소상히 지적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았다. 『반계수록』은 이후 개혁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지식인이라면 으레 참고하는 책이 되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렇게 존중받았던 중요한 책이었지만, 이 책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내용이 실천된 적은 없었다. 예컨대 공전제(公田制) 같은 것이 그렇다.

이런 개혁책은 반계만 제출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실학자로 높이 평가하는 지식인들, 예를 들어 이익(李瀷)이라든지, 박지원(朴趾源)이라든지, 정약용(丁若鏞)이라든지, 유수원(柳壽垣) 같은 분들은 물론이고, 이분들보다는 대중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장지완(張之琬) 같은 중인도 나름 체계적인 개혁책을 제출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개혁책을 제출한 사람과 저작의 리스트를 더 길게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지적하는 바이지만, 이렇게 풍성한 개혁책이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된 것은 거의 없다. 또 개혁의 당위성과 개혁책의 졸가리를 정치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이 몰랐던 것도 아니다. 공전제, 균전제(均田制), 한전제(限田制) 등의 토지개혁책은 물론이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양전(量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도 모두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문란한 관료선발제도 곧 과거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 극소수 경화세족(京華世族)이 독점하고 있는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 민(民)에 대한 수탈을 멈추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실학의 개혁책이란 것도 특별히 새롭고 난해한 것이 아니었다. 조선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모두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른바 실학이란 개혁책은 그것을 정교하고 체계적인 형태로 서술했을 뿐이다.

유형원의 『반계수록』은 17세기 중반 어림에 쓰인 것이다. 정약용의 일표이서(一表二書)는 19세기 초반에, 장지완의 『고문비략(顧問備略)』은 1858년에 쓰인다. 『반계수록』부터 『고문비략』까지는 거리는 거의 2백년이다. 그 사이에 수많은 개혁책이 있었다. 세부적 국면이야 다르겠지만, 개혁의 큰 졸가리와 그 내용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거의 동일한 내용이 어찌하여 2백 년 동안 반복되어 나타났던가.

실행 프로그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이들 저작을 보면 하나 공통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것이 있다. 곧 이런저런 개혁의 아이디어는 풍성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 것인가 하는 실행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이다. 좀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한숨을 내뱉고 걱정을 하면서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고려 말에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조선후기의 실학자들이 내놓았던 그런 정교한 개혁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수의 개혁파는 개혁을 능동적으로 수행했다. 그 결과가 1392년 조선의 건국이었다. 조선후기의 책 속에 갇혀 있던, 실행프로그램이 결여된 개혁책과는 아주 달랐던 것이다(아마 여기에는 따져야 할 복잡한 문제가 허다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일단 덮어두자).

개혁의 내용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개혁을 이루는 방법이다. 집요하고도 대담한 방법의 모색에 고민이 쏠려야 할 것이다. 실행되지 않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실행될 때만 개혁이다! 문재인 정부 이후 진정한 개혁을 기대한다.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 휴머니스트, 2016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휴머니스트, 2015
〈이 외로운 사람들아〉, 천년의상상, 2015
〈홍대용과 1766년〉, 한국고전번역원, 2014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천년의상상, 2014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2
〈조선풍속사 1,2,3〉, 푸른역사, 2010
〈열녀의 탄생〉, 돌베개, 2009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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