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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경력 단절녀
여성에게 ‘독박육아’ 강요하는 사회
2017년 09월 22일 (금) 12:43:05 김명관 dasanforum@naver.com

요즘 대학원의 인문학 전공은 여성이 채운다. 곧 대학원생 중 압도적 다수는 여성인 것이다. 공부에 남성 여성의 차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공부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동지가 늘어나는 것이라 반갑기 짝이 없다. 다만 근자에 여성 대학원생들이 겪는 곤경을 보면 마음이 정말 편치 않다.

이래저래 대학에 오래 있다 보니, 나 역시 이른바 지도교수란 것을 맡게 되었다. 이따금 굳이 나를 지도교수로 삼겠다는 대학원생도 있다. 당연히 여성이다. 그중에는 또 많지는 않지만, 공부하는 것을 보고는, 시간이 흐르면 한 사람의 착실한 연구자가 되겠구나 하고 내심 기대하는 학생도 없지 않다. 당연히 그런 학생은 논문도 차근차근 써낸다.

‘독박육아’를 강요하는 사회

대학원에 진학하는 여성들은 대개 20대 후반이다. 대부분 얼마 있지 않아 결혼을 한다. 이어 출산을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청춘남녀가 만나 서로 좋아서 결혼을 하고, 또 건강하고 예쁜 아기까지 낳았으니, 다시 무엇을 더 바랄까? 당연히 축하할 일이고, 또 잘 키우라고 덕담을 전한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다면서 전화를 해 오는 학생이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결국 나오는 이야기는 육아의 고통에 관한 것이다. 아무개야, 어떠냐? 아기가 이쁘지. 예, 선생님, 아기는 이뻐요. 하지만 너무 좁은 집에서 하루 종일 아기만 보고 있으려니, 갑갑해서 미칠 것 같아요.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어요. 신혼살림을 차리는 곳은 예외 없이 아파트다. 스무 평 남짓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열댓 평의 좁은 공간이다. 그보다 좁은 곳에서 산 적이 있는 나로서 상황이 충분히 짐작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육아는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떨어진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는 것은 아주 희귀한, 예외적인 일이 아닌가. 귀여운 제 자식 저가 키워야 하는 법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갑자기 엄마가 되어 24시간 1년 열두 달을 닭장 같은 좁은 공간에서 아기와 씨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시집도 친정도 멀리 있어 손을 빌릴 곳도 없다. 남편은 아침에 부리나케 출근했다가 파김치가 되어 저녁에 돌아온다. 직장에서 시달리고 돌아오면 도와줄 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도와주지 않은 것도 아니란다. 하지만 남편의 거듦이 ‘독박육아’의 무게를 느껴질 정도로 확연히 덜어내어 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대학이라면 육아 연구자 배려해야

공부는? 상황이 이러니 공부는 손 놓은 지 오래다. 어렵사리 얻어서 하던 강의를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읽던 책과 자료는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학위논문은 언제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가 없다. 그래, 언제 다시 학교에 나올 것 같으니? 아이가 초등학교에, 아니 유치원이라도 갈 때가 되면, 좀 낫지 않을까요, 선생님. 그래, 답답하구나. 대화는 이렇게 끝난다.

아이가 유치원에, 초등학교에 간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손길이 끊임없이 가야한다. 그런 시간이 지나 학교에 복귀한다 하자. 강의를 하고 다시 연구를 시작하지만, 좋은 시절은 한참 지나간 뒤다. ‘독박육아’에 치인 여성은 결국은 ‘공부경력 단절녀’가 되고 기대했던 공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푸념하는 것 외에 나에게 무슨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이란 곳에 아기를 데리고 오는 사람은 없다. 아기를 데리고 와서는 강의를 할 수도, 도서관에 들어갈 수도 없고, 세미나에 참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언필칭 진리와 자유와 봉사를 들먹이는 대학에서는 여성 연구자를 위해 안심하고 아기를 맡길 공간과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에게 ‘독박육아’를 강요하는 사회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그런 일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 나라와 사회의 발전이란 그러자고 하는 것이 아닐까?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 휴머니스트, 2016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휴머니스트, 2015
〈이 외로운 사람들아〉, 천년의상상, 2015
〈홍대용과 1766년〉, 한국고전번역원, 2014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천년의상상, 2014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2
〈조선풍속사 1,2,3〉, 푸른역사, 2010
〈열녀의 탄생〉, 돌베개, 2009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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