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논평 환경/기술 지역/농업 전통/문화 미디어/사람 정보/게시판
  편집: 2017.12.15 금 10:03
> 뉴스 > 환경/기술 > 환경보전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아직’과 ‘이미’ 사이의 하나님
“포스트휴먼시대, 생명, 신학, 교회 돌아보다” 읽고서
2017년 11월 27일 (월) 20:48:47 유미호 ecomiho@hanmail.net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금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가속도가 붙어 과거의 지식과 경험만으로는 그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공지능과 로봇,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그들의 융합이 앞으로 펼쳐낼 우리의 미래는 예측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우리 안에 심각한 우려와 불안을 낳고 있습니다.

   

싫다고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그 곳을 향해 달리는 거센 변화의 물결 앞에 서 있습니다. 풍요와 편리에 대한 욕망이 낳은 물결인데, 과연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가져다줄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긍정적으로 말하는 이도 있지만, 오히려 심각한 양극화와 우리 삶의 기반인 지구를 소멸시켜 미래세대의 생존을 더 이상 불가능하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미 지구는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거대한 기술과 산업이 그 수용능력을 늘릴 수 있다는 자만심(교만)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탐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상황에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상황이 심각합니다. 우리들이 초래한 것으로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그에 따라 상황도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수용능력으로 보면 이미 1.5배나 초과됐고, 이대로 2030년이 되면 2배 이상 초과될 것입니다.
얼마 전, 파리협정 이후 두 번째 열린 기후총회 때 논의한 기후 대응에는 내전국인 니카라과를 제외하면 미국만이 빠져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라는 부끄러움은커녕 역사적 책임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참여하고 있기는 하나, 그 책임에는 훨씬 못 미치고 있습니다. 기후총회 때 발표된 기후변화대응지수로 보면 우리나라는 최하위 국가(58위)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데다 자발적 감축계획조차 국제사회의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인 듯합니다.

어쩌면 지금은 인간의 영향이 극대화되어 가고 있어 “인류세”라 일컬어지는 혼동과 변화, 종말과 창조의 지질학적, 역사적 순간을 성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성찰에 도움이 될 책이 있는데, 바로 “포스트휴먼시대, 생명 신학 교회를 돌아보다”(도서출판 동연)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거센 파고를 당당히 바라보며 넘어서게 할 용기를 내어보게 할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넘어설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준다기보다 어렴풋하게나마 스스로 감지하게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한국교회환경연구소가 포스트휴먼 시대의 도래를 직시하고 사랑과 정의의 지속가능한 생명공동체를 지향하게 하는 열두 명의 신학자와 함께 만든 책입니다. 책 머리말에서 전현식 교수는 발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지구적 위기의 극복을 위해 인간과 자연의 부정의한 관계(환경파괴와 사회적 불평등)를 정의로운 지속가능한 관계로의 회복을 통해 추구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생명공학, 유전공학, 정보기술 및 로봇공학 등 과학기술의 놀라운 진보에 힘입어, 생명의 분자화 및 정보화의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인공지능이 출현하게 된 21세기 인류세의 시대를 맞아, 지구적 위기 및 그 대안을 인간, 자연 및 기계(기술)의 복합적 관계 안에서 이해해야만 하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포스트휴먼 시대란 싫든 좋든 우리에게 진입하고 있는 인간과 자연과 기계(기술)의 혼종과 공존의 시대를 말합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안에 과학기술의 개입은 위기인가 기회인가? 진보인가 타락인가? 이런 복잡한 질문들은 포스트휴먼 시대가 안고 있는 불확실성과 가능성, 공포와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과 교회는 인간과 자연과 기계의 혼종적, 공존적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신학적 실천적 담론을 제시해야 하는가?
이 책은 포스트휴먼 시대의 도래를 직시하며, 창조세계 안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의 상호연결, 취약성 및 존엄성을 경시하고 파괴하는 인간 중심의 정치‧경제‧문화 체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사랑과 정의의 지속가능한 생명공동체를 지향하는 열두 분의 생태신학자들이 함께 고민하며 펴내는 공동저작의 결실입니다.”

“죽임의 체제와 생명문화,” “포스트휴먼과 생태신학,” “지구 생명 공동체와 한국교회” 이상 세 주제 아래 각각 네 개의 논문들이 담겨 있습니다.

1부의 “죽임의 체제와 생명문화”는, 창조명령과 구원명령의 역동성 안에서 죽임의 체제를 넘어서는 생명문화의 대안을 찾는 “살아라, 살려라: 참여적 인격의 존재론”(백소영), 피조물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신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는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생명에 대한 폭력과 신의 절규’(김정두), 간학문적 대화를 통해 현실이 주는 고난 속 사회적 연대성을 체계적으로 제안하는 ‘민중 신학과 체계 이론의 생명론’(전철), 생태여성신학자들의 종말 이해에 근거하여, 파국적 종말의 입장을 벗어나, 가장자리의 의미의 종말을 되새김으로 죽임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게 하는 “죽임의 문화에 대한 저항의 메타포, 종말”(김수연)에 관한 글이 담겨 있습니다.
2부 “포스트휴먼과 생태신학”은, 인간과 자연과 기계의 혼종 및 공존하는 시대에 포스트휴머니즘과 에코페미니즘의 상호대화와 변혁에 기초하여, 우리가 더욱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열어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제시하는 “포스트휴먼 시대와 환경운동의 좌표”(전현식),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에 함께하는 ‘성육신적 사랑 즉 긍휼’로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는 사이보그, 호모 데우스의 시대를 읽게 하는 신학적 상상력과 정체성의 한 모델을 제시해주는 “사이보그에게 묻다: 테크노-영지주의인가 체현된 주체성인가?”(박일준), 인공지능이 모방하고 있는 인간 뇌의 신경연결망, 생명의 항상성을 변증법적 관계로 보면서 메시아적 희생의 변증법을 윤리적 성찰과 실천과 연결하는 “희생의 변증법: 휴먼과 포스트휴먼 사이에서”(신익상), 인간중심주의를 내포한 휴머니즘의 위기를 지적하면서, 휴머니즘의 인간중심적 오만을 넘어서게 할 포스트휴먼으로서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포스트휴먼 신학을 향하여: 생태신학과 포스트휴머니즘의 만남”(장윤재)을 통해 휴머니즘 신학이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포스트휴먼 신학으로의 전환을 기대하게 합니다.
3부 “지구 생명 공동체와 한국교회”는, 적색은총의 의미를 녹색은총의 지평으로 확장시키는 脫/向(탈/향)을 비롯하여 동서양의 사상을 아우르는 기독교적 탈향의 해석학적 이해로 생태정의를 지향하는 교회운동을 제안하는 “기후붕괴 시대, 기독교의 재주체화와 작은 교회 운동”(이정배), 지구 생태계를 위한 기도의 형식을 빌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생태 윤리적 실천의 구체적 모델까지 제시하는 “신자유주의와 기독교 생태윤리”(송용섭), 페스탈로치의 종교교육사상과 신유교 전통의 유기체적 생명의식 속에서 ‘인간 본성 안에 깃들어 있는 신적 가능성’과 ‘만물일체의 생태적 감수성’을 기르는 녹색 교회교육의 필요성과 그 모델을 제시하는 “생태적 감수성과 녹색 교회교육”(이은선), 생태적 자폐증을 앓고 있는 우리들에게 생태적 감수성을 불러일으켜,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영적 심리적 힘을 회복시켜줄 “창조세계를 거룩한 책으로 읽는 렉시오 디비나가 가능한가?”(최광선) 하는 글로, 위기적 상황과 미래를 깊이 성찰하게 해줍니다.

단 번에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책상에 올려놓고 곱씹으며 읽다보면 지금의 ‘생명’과 ‘신학’과 ‘교회’를 다시 돌아보게 해줄 것이 분명합니다.

우선은 지금의 문명이 수명을 다했다는 걸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문명은 쇠퇴하고, 세상은 더 이상 좋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그것이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기 때문이란 것을 알게 할 것입니다. 근대적 인간이, 우리와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복을 받은 생명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음도 알게 할 것입니다. 그 결과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졌고, 우리의 일상의 삶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참으로 ‘불편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음도 알게 할 것입니다.

세상은 핵 발전으로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석탄화력 발전으로 기후가 붕괴되고, 미세먼지로 숨 쉬기 힘든 날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이 땅과 바다를 뒤덮고, 매년 가축들이 고통 중에 산 채로 매장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쉼터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어주는 산과 강이 케이블카와 댐 건설 등은 파헤쳐져 수많은 생명이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유전자를 조작하는 일을 넘어 인공 지능과 로봇 인간 등이 출현하여 인간의 정체성과 주체성, 그리고 그 관계성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 및 개입을 통한 인간, 자연 및 기계의 혼종, ‘포스트휴먼’ 시대의 ‘아직’과 ‘이미’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진지한 신앙적 성찰을 하게 도울 것입니다. 장윤재 교수가 말하듯,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첫 질문 즉 ‘아담아(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하는 질문에 다시금 서게 된 것입니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아직’과 ‘이미’ 사이에 서서 받는 물음은 ‘나와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아직’ 남아있는 참 좋은 세계와 ‘이미’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생명들을 돌아보게 하고, 새로이 서야 할 자리를 보게 해줄 것입니다.

상황이 급박하여 서둘러 답을 내놓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늦은 만큼 더 명료한 자신만의 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근대 휴머니즘의 인간 개념을 뛰어넘는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포스트 휴먼’의 저자 로지 브라이도티가 말하는 대로 ‘동물-되기’, ‘지구-되기’ ‘기계-되기’, 더 나아가서는 ‘강물-되기’ ‘나무-되기’ ‘플라스틱-되기’ ‘전기-되기’ 등을 하다보면, 각자 자신의 자리뿐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깨어나는 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인간은 인간으로, 자연은 자연으로.”

2017년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입니다. 500년의 무게가 힘겹게 느끼지는 것은 지난 세월의 무게라기보다 다시 개혁되어야 할 낡은 것들이 쌓여서일 것입니다. 어리석다고 할 수 있겠으나,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삶 안에 들어와 있는 ‘포스트휴먼’ 시대 앞에서 당황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라(시46)"는 말씀에 의지해,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의 자리를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다가오는, 아니 이미 우리 앞에 온 ‘포스트휴먼 시대’에 우왕좌왕하지 말고, 그냥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인간만이 아닌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품는’ 신학으로, 신앙이 바로 세워지고, 교회가 교회다워진다면, 온 생명이 풍성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날이 오리라 믿고 기도합니다.

* 글쓴이 유미호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부설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입니다.

.

유미호의 다른기사 보기  
ⓒ 새마갈노(http://www.eswn.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아벨아 아벨아 아벨아
겨울새 또 천년을 울고 간다
마을이 희망이다 !
‘아직’과 ‘이미’ 사이의 하나님
지극히 작은이들의 기적
형제인가, 사람인가
다시 일어나 길 떠나야 한다
한번 잘 죽어서 하늘 얻는다면
고 이민호 군 죽음 애도하며
우주의 꽃은 기침 하다 갔다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김련희의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를 읽었다.
두 번째 종교개혁과 작은교회 운동
르네 지라르와 현대 사상가들의 대...
신재생에너지로 90% 전력공급 가...
신재생에너지로 2050년 전력의 최소 90%까지 공급 가능하다...
독자 설계 잠수함 건조
서울전역을 3D로 본다
포천 평화나무농장 생명역동농업 산...
온생명살림 기행팀과 함께 평화나무 농장을 방문한 내용을 정리하...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
'호국대성사 서산대제'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384-19, 성도빌딩 5층 | 전화 : 02-747-3191 | 편집인 010-8413-1415 | 제호 : 새마갈노
등록번호 : 서울 아03061 | 등록일 2014.03.24 | 발행인 : 양재성 | 편집인 : 류기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류기석
Copyright 2009 새마갈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