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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기다리게만 할 것인가
이제 나는 뒷날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
2017년 11월 29일 (수) 15:00:17 박석무 dasanforum@naver.com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유행가의 노랫가락은 이미자라는 국민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만인들이 ‘가슴 도려내는 아픔’으로 언제나 슬픔을 안고서 견디기 힘든 비애의 무드에 젖어들게 해줍니다. ‘기다림’이란 그렇게 애태우는 일이요, ‘멍’이 드는 일이며, ‘외로움’을 참아내기 어렵게 해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기다려야만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어,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참으며 살아갈 때가 많기도 합니다.

오랜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57세의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온 다산 정약용은 인생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일의 하나로 61세의 회갑을 맞아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일대기를 저술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의 후손이자 누구의 아들로 태어나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았으며, 얼마나 많은 책을 저술하였으며, 그 책들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를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 정약용이 어떤 인물인가를 알아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자료를 남겼습니다.

순 한문으로 된 길고 긴 장문의 글입니다. 1980년 여름 5·18 때문에 은신 중이던 필자가 최초로 한글로 번역했던 글인데, 그 글의 첫 대목은 이렇습니다. “이 무덤은 열수 정약용의 묘이다. 본 이름은 약용(若鏞)이요, 자(字)는 미용(美庸), 또 다른 자는 용보(頌甫)라고도 했으며, 호는 사암(俟菴)이고,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 (此洌水 丁鏞之墓也 本名曰若鏞 字曰美庸 又曰頌甫 號曰俟菴 堂號曰與猶)”라고 말하여 자신의 호가 ‘사암’이라고 정식으로 밝혔습니다.

우리 모두는 정약용의 호는 다산(茶山)인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정작 자신의 공식적인 글에는 ‘다산’이라는 말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1808년 강진읍에서 귀양 살던 다산은 해남 윤씨들의 집성촌인 귤동(橘洞)이라는 마을의 뒷산인 다산(茶山)에 있는 「다산초당(茶山艸堂)」이라는 산정(山亭)으로 옮겨가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세상 사람들이 다산이라는 산에서 살고 있는 정약용의 호칭으로 사는 곳인 ‘다산’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뜻이나 생각과는 관계없이 ‘다산’이 다산의 호로 알려져, 200년이 지난 지금에는 다른 호는 모르고 유일하게 다산으로만 온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부르고 싶고, 남들이 불러주기를 바라는 호는 분명 ‘사암’이었습니다. 오랜 귀양살이로 다시는 세상에 나와 나라와 백성을 위한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이제 나는 뒷날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라는 뜻으로 ‘기다릴 사(俟)’라는 글자를 호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새로운 나라로 다시 재구성하자는 뜻으로 『경세유표』를 저술하고, 모든 공직자들이 공렴(公廉)의 정신으로 돌아와 청렴하고 정직한 나라를 만들자고 『목민심서』도 저술해놓고 뒷날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겠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런 책을 저술한 때가 200년이 넘었는데, 그렇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만 할까요.

두 눈이 ‘빨갛게 멍이’ 들었던 동백아가씨의 한과 기다림은 언제 풀릴까요. 우리 국민 모두는 이제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가다듬고, 동백아가씨의 기다림도 해결해주고, 다산 선생의 그 긴긴 기다림도 해결해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이제 일어섭시다.

글쓴이 / 박석무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 전 성균관대 석좌교수
· 고산서원 원장
·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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