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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의 임무
주일설교문(17. 12. 3) 대림절 첫 번째 주일
2017년 12월 04일 (월) 09:55:58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7. 12. 3) 대림절 첫 번째 주일

마가 13:24-37 “문지기의 임무”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였습니다. 첫째 초가 켜졌습니다. 촛 네 개가 켜지면 주님이 오시는 날입니다.
소성리 평화활동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 대구 새민족교회 백창욱님
소성리는 그동안 사드침탈을 세 번 당했습니다. 세 번 모두 정권의 폭력집행이었습니다. 4월 26일, 박근혜가 탄핵돼서 구속 중임에도 불구하고 김관진을 비롯한 안보마피아들의 농간으로, 사드 2기가 들어갔습니다. 두 번째 침탈은 문재인대통령이 돌연 말을 바꿔서 9월 7일, 사드 나머지 4기가 들어갔습니다. 이때 기독교현장기도소도 모두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지지난주 11월 21일에는 시설공사를 한다는 이유로, 역시 경찰 오천 명을 동원해서 주민과 지킴이들을 해산 고착시킨 후, 장비를 진입했습니다. 장비 중에는 지름이 이미터는 족히 되는 배수관 수십 개도 들어갔습니다. 골프장에 거주하는 미군 놈들의 오물과 폐수를 배출하기 위해서입니다. 백해무익 사드로 한반도 긴장을 격화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오폐수로 이 나라 강토를 더럽힙니다. 세 번 침탈당했고, 사드는 이미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끝난 것 아니냐고 발을 빼지만, 어제 소성리에서는 6차 범국민 평화행동 집회를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사드가 물러갈 때까지는 투쟁을 멈출 수 없다고 다짐했습니다.

소성리 사드반대투쟁 최전선은 진밭교입니다. 전에는 마을회관 입구였는데, 진밭교로 이동했습니다. 진밭교 활동이유는 소성리 통과차량뿐만 아니라 월명리로 출입하는 차량들도 감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진밭교에는 원불교 교무님과 교도들이 24시간 감시활동을 합니다. 진밭교 평화활동은 아침 7시에 개신교기도회로 시작합니다. 진밭교 기도회의 특징은 신자 비신자가 같이 참여합니다. 소성리 마을회관 입구에서도 기도회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그 방식이 그대로 진밭교로 이동했습니다. 투쟁현장에서 신자, 비신자가 같이 기도회를 하는 경우는 예배학 전공 실천신학자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일 것입니다. 저는 보통 월에 들어가서 일박이일 일정으로 소성리에 머뭅니다. 그래서 화요일 아침 기도회를 인도합니다. 말씀을 전한 후에는 참석자들이 함께 골프장 경찰저지선까지 이동합니다. 거기서 외침기도(구호)를 하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기도회 때 했던 말씀을 요약해서 말합니다. 경찰들 들으라고. 그리고는 다시 진밭교 입구로 돌아옵니다. 사드가 물러갈 때까지 현장을 지킨다는 각오로 매일 그렇게 평화활동을 합니다. 겉보기에는 느슨해 보이지만, 한 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공사차량과 미군차량을 단 한 대도 그냥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결의가 있기에, 또 언제 비상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깨어 있습니다.

기도회에 비신자도 같이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모두가 같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드를 물리치고 평화를 지키자는 목적입니다. 그 목적 하에 종교간 구별 없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평화활동을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평화가 공통의 종교입니다. 평화라는 공통의 종교 덕분에 소성리에서는 종교간 구별없이, 또 신자비신자 구별없이, 같은 정서를 공유합니다.

   
▲ 2017. 12. 2일 소성리 사드반대 집회현장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님의 입을 빌어서 종말의 징조를 예언하고 그 징조 앞에서 제자들은 어떤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가를 말씀합니다. 오늘 복음말씀 마가 13장에 나오는 내용은 사후예언형식입니다. 이미 예루살렘 멸망을 경험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입을 빌어서 예언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근거가 무엇인가요? 예언의 내용이 매우 상세합니다. 사람들 구체 행동까지 말합니다. 이것은 현장을 목격하거나 체험한 사람의 증언에 가깝습니다. 또 예수님은 앞날을 시시콜콜 미리 점치는 점쟁이가 아닙니다. 점쟁이도 꼭 집어 말하지 않습니다. 틀리면 안 되니까 달리 해석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예수님 사후 한참 지나고 나서 제자들이 만든 고백입니다. 2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는 다른 메시야입니다. 요세푸스가 쓴 『유대전쟁사』를 보면, 로마에 봉기할 당시, 수시로 메시야가 출몰해서 유다민중들을 선동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중사제들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역사경험을 신명기역사서를 통해 신앙으로 재정립했듯이, 제자들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을 해석하는 게 큰 과제였습니다. 이 엄청난 비극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해야 하는지,(제자들도 뼛속까지 유대인이다. 예루살렘성과 성전의 멸망은 정신 대공황이다.) 또 예수를 통해 새로 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70년의 사건을 어떻게 복음의 조명 아래 해석해야 하는지 하는 임무입니다. 그 고민과 해석을 담아서 복음서 종말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멸망사건을 역사의 종말(세상 끝)과 연관지었습니다. 세상이 망하면 이렇게 망할 것이라고 유추했습니다. “그 날에 환난이 닥칠 것인데, 그런 환난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래로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막 13:19) 예루살렘 멸망이 얼마나 잔인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역사였는지 이 한 말씀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은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13장 1-23절까지와 오늘 말씀인 24-37절까지입니다. 이야기 계기는 예루살렘 성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깜짝 놀란 제자들은 이 일이 언제 일어나며, 일어날 때 무슨 징조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4절) 이에 대해 예수님은 징조부터 말씀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언제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런데 앞부분에서 반복해 나오는 핵심단어가 있습니다. “조심하여라”입니다. 5절, 9절, 23절이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5절)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9절) “그러므로 너희는 조심하여라."(23절)
역사종말 때, 뒤따라 일어나는 환난과 수난 앞에서 말씀마다 조심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핵심단어는 “깨어 있어라”입니다. ‘조심하여라’에서 ‘깨어있어라’로 발전했습니다. 조심에 대한 실행지침입니다. 왜 깨어 있으라는 것인가요? 그 때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조심하고, 깨어 있어라. 그 때가 언제인지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32,33절) 그 때는 역사종말, 대환난이 휘몰아치는 때입니다. 이 때를 대비해 우리 일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게 어떤 뜻인지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34절을 보시면, 집주인이 집을 떠날 때, 종들에게 임무를 맡깁니다. 그런데 특별히 문지기에게는 다른 임무를 줍니다. ‘깨어 있으라’는 명령입니다. 왜 깨어 있으라는 것인가요?

집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혀 모르는 건 아닙니다.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녘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무렵일지, 이른 아침녘일지”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표는 로마인들이 밤을 네 등분한 시간표입니다. 즉 집주인이 한 밤중에 옵니다.

처음에 이 비유를 보고는 엉뚱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문지기는 잠도 자지 않고 늘 깨어 있으라는 말인가? 잠 안 자고 어떻게 사나? 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문지기는 밤에만 깨어 있으면 됩니다. 낮에는 문지기가 필요없습니다. 문은 열려 있고 다른 일꾼도 많으므로. 문지기는 다들 잠들어 있는 밤에만 깨어 있으면 됩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어째서 깨어 있으라는 예로 문지기를 설정했을까요? 문지기의 고유역할 때문입니다. 고유역할이 무엇인가요? 문간수를 잘 하는 것입니다. 문간수를 잘하려면, 말짱한 정신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문지기는 절대 자리를 이탈하면 안 됩니다. 잠들어도 안 됩니다. 이런 우스개 말이 있습니다. ‘전투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아도 배식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지 못한다.’ 원래 이 말 출처는 ‘전투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아도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지 못한다’ 입니다. 경계는 그렇게 중요합니다. 문지기 역할이 그렇습니다. 자리를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저기 나타났다고, 여기 나타났다고 해서 문지기가 소문을 따라 간답시고 자리를 비우면 그 집은 망조입니다. 도둑이 거짓소문을 낼 수도 있습니다. 문지기를 따돌리고 문지기 없는 틈을 타서, 집에 침입하려고. 그러므로 ‘깨어 있는 것’은 ‘자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어제 소성리 평화행동 마무리집회에서 개신교를 대표해서 강형구장로님이 발언했습니다. 강형구장로님은 매일 아침 진밭교 기도회를 인도합니다. 발언 중에 오늘 설교와 꼭 맞는 말을 했습니다. “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돼서 사드를 물리치는 하나님의 역사가 앞당겨질 것을 믿는다”라고. 진밭교 투쟁의미에 대해 잘 말했습니다. 문지기가 문을 떠나면 안 되듯이, 평화지킴이는 평화투쟁의 전선을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깨어 있는 겁니다.

   
▲ 예수살기 사무국장 강형구님

우리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즉 깨어 있기 위해서 무엇으로 무장해야 하나요?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나의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31절)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주님말씀은 역사종말(하늘과 땅이 없어질지라도)을 뛰어넘는 영속성이 있습니다. 사람이 주님말씀을 믿으면, 선포와 가르침에 맞추어서 방향을 정하고 자신을 투신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주님이 언제 올는지, 그 날을 예측하려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궁금증을 갖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든 모르든, 자신의 실존은 주님 현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운동선수는 경기일정에 맞추어서 몸관리를 하고 컨디션을 조절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나를 관리합니까? 깨어 있으면 됩니다. 깨어 있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주님과 함께 있으며, 그 안에서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 때와 그 시각이 언제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인자가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올 때,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은다고 했습니다.(27절) 이 말씀의 출처는 렘 12:12입니다. “내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칼로 휩쓸어, 어느 누구도 평온하게 살 수 없게 하였다.” 하나님이 백성을 심판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심판이 은총으로 바뀌었습니다. 심판하여 흩어 보낸 사람들을 다시 모읍니다. 언제? 인자가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올 때에. 구름은 1세기 하늘권세를 상징하는 신화언어입니다. 지금 우리의 구름이해와 다릅니다. 그런데 큰 권능으로 구름 타고 오실 분이 지금 이미 내 안에 현존하고 계십니다. 즉 인자오심은 두려움과 심판이 아니라 기쁨과 은총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경험하나요? 나를 열어 주님이 지금여기 나와 함께 계심을 인정하면 됩니다. 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 할렐루야. 야웨의 이름이 호흡이라는 사실만큼이나 놀라운 은총입니다. 이미 가까이 와 있는 은총을 몸으로 느끼고 그 기운 아래 머무르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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