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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의 친교와 교회
'마을과 환경선교'에 관한 글 두번째
2017년 12월 27일 (수) 23:47:58 유미호 ecomiho@hanmail.net

마을 공동체는 생활의 기본 공간입니다. 이러한 마을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마을 공동체를 세운다는 것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어도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와, 어떤 방법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마을 공동체가 보지 못하는 문제를 보거나 할 수 없는 일을 찾아 해결하는 데 이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눅 17:20-21)는 말씀에 따라 마을 공동체 안에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실현하는 것을 교회의 사명으로 삼고 있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마을 공동체 안에서 중심이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마을 주민들을 주체로 세워 의제를 찾게 하고 또 해결해 가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교회가 앞장서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마을 공동체가 참여하는 주민이 중심이 되다 보면 마을 공동체에 참여할 시간적 물적 여유가 없는 사회 생태적 약자를 배제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그들의 입장에서 의제를 찾아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5)고 하신 말씀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잃어버렸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마을 공동체 속에서 교회는 작아지고 대신 주님이 커지게 하는 실천일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마을 공동체 안에서 요청되는 교회의 역할이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마을 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중에 적절히 자기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이미 농촌과 도시 마을에서 공동체를 만드는 중에 좋은 사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도시 마을에 있는 교회들의 경우는 공간을 마을 이웃들의 친교의 공간으로 오픈하고 서로 간에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카페, 도서관, 재활용가게, 쉼터 등의 운영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마을 공동체 활동이 외부지원 사업으로 진행하다보니 이행에 쫓기어 가치와 삶(신앙과 삶)을 통합시키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교제와 만남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교회가 이 지점에서 역할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본질을 실현하려면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과 충분히 사귀며 나누는 만남의 장이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 만남 속에서 친밀해질수록 우리의 삶의 질은 더 좋아질 것입니다. 자연, 즉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니, 풍성한 삶을 살아가려면, 지구와 그 안에 거주하는 수많은 생명들과 친밀하게 친교를 해야 합니다.

사실 처음 창조 때부터 친교는 우리 삶의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었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은 지구 동산에서 하나님과 거닐면서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을 해결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필요를 채웠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은데, 우리는 지금 주시는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 멀리 떨어져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교회조차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교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물의 화해자’로 오신 그리스도가 머리라고 하기에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친교 가운데 하나 될 줄 모르거나, 알고 있더라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드뭅니다. 때론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이유로 세상 곧 신음하는 이웃을 등지거나, 세상과 친교 한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등지곤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지식을 채우는데 그칠 뿐 생명력 있는 친교로 잇지 못했습니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교인들의 삶의 공간이 멀어지면서 삶의 나눔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게다가 세상을 배타적으로 대하면서 이기적 종교 집단으로 내비쳐 신뢰를 잃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에겐 상황적 위기 이전에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위기를 느끼는 감수성이 무뎌지고만 것입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먼저 창조세계와의 친교가 우선 회복되어야 합니다. 마을 내 사람들은 물론 자연 환경과의 친교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해야 대안 또한 스스로 찾아 적극적으로 실행하게 될 것입니다.

친교는 창조세계가 ‘참 좋고’, 사람 아닌 그들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이 허락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창조세계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의식주만 채워주는 곳’이 아닌 ‘하나님의 현존을 비춰주는 거울이자 하나님께 가 닿게 해주는 사다리’로 보인다면 그 관계성은 더 친밀해지고 깊어지게 될 것입니다.

친교의 시작은 우선 교회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 단위가 좋습니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마을에서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과 온전히 친교 한다면, 교회는 온갖 동식물과 지역주민들이 공존하며 친교 하는 공간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모든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한 생명을 누림은 물론 공존(共存) 공생(共生) 공빈(共貧)의 삶을 사는 생명공동체로 자연스럽게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 글쓴이 유미호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부설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연구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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