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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으로 가자
성탄의 평화 온 세상에 퍼뜨리십시오
2017년 12월 29일 (금) 09:51:44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성탄절(17. 12. 25)
누가 2:8-20 “베들레헴으로 가자”

성탄절하면 낭만과 여유, 즐거움을 연상합니다. 젊은 남녀에게는 마음이 설레는 날입니다. 그러나 첫 성탄절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태에 나오는 성탄절은 큰 비극의 날입니다. 헤롯이 베들레헴 부근에 있는 두 살 아래 아기들을 모두 학살하여 그 지경에 큰 통곡이 있었습니다. 아기를 잃은 엄마에게는 인생에서 최고로 비탄한 날입니다.

   

누가에 나오는 성탄절은 요셉부부가 크게 당황하고 바쁜 날입니다. 베들레헴에서 방을 구하지 못해서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해산을 해야 했습니다. 방을 구하느라고 동동거리며 헤매다가 결국 방을 구하지 못해서 급하게 마구간을 청소하고 해산자리를 만드느라 정신없는 요셉이 떠오릅니다. 요셉부부는 하루 종일 동동거리며, 울적했을 것입니다.

이런 모양 저런 형편으로 민중은 언제나 고달프고 하루하루 사는 게 고단합니다. 특히 권력자의 결정은 그 지배아래 있는 민중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줍니다. 오늘 말씀 2장 1절에서 보듯이,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온 세계에 호적령을 내리므로 요셉도 해산이 임박한 마리아를 데리고 먼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실제 역사상 이런 일이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여하튼 복음말씀을 사실 그대로 읽으면, 지배자는 결정하고 민중은 꼼짝없이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말씀은 권력세계의 생리와 전혀 다른 진실을 전합니다. 성탄소식에 담겨 있는 두 가지 진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진실은 누가 이 땅의 진정한 그리스도 주님이냐 입니다. 11절 말씀은 역모성으로 가득합니다. 실제 구주가 있는 동네는 로마입니다. 그리스도 주님은 아우구스투스로 불리는 황제입니다. 황제는 주님 중의 주님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전혀 다른 주님을 말합니다. 다윗의 동네에서 구주가 나셨다고 합니다. 로마황제에게는 비상사태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그리스도 주님의 표징입니다.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표징이라고 합니다. 로마는 무력으로 세계를 평정했습니다. 제국이 됐습니다. 황제는 무력의 표징입니다. 로마의 평화는 무력정복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목자들에게 완전히 다른 평화를 전합니다. 천사가 말하는 평화는 팍스로마나에 대응하는 마구간의 평화입니다. 평화라는 말의 원래 뜻은 지배체제가 구축해 놓은 질서를 뒤엎겠다는 뜻입니다. 즉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이 말은 “이제 제국에 눌린 당신은 새로운 구세주 덕분에 해방되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로마 황제와 그 체제에는 엄청난 반역선언입니다.

또 갓난아기는 힘이 없어서 전적으로 타자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천사가 전하는 구세주의 표징은 무력함 그 자체입니다. 그 소식이 주류 세상의 주목에서 완전히 비켜나서 가장 낮은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이것이 예수 탄생의 진실입니다.

두 번째 진실은 목자들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일의 내막에 대해 권력자는 완전히 소외됩니다. 권력자는 모든 정보를 독점합니다. 그래서 권력자입니다. 그런데 다른 그리스도 주님이 태어났다는 소식에서 완전 배제됩니다. 오히려 가장 소외된 민중이 그 소식을 접합니다. 목자들의 계급은 어느 위치인가요? 로마 시대 권력구조를 형상화한다면 피라미드형태입니다. 가장 꼭대기 정점에는 로마황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 하부에 목자가 있습니다. 황제와 목자의 간격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가장 하부 계급이라 어디서든지 존재감 없고, 누구에게도 대상화되기 쉬운 사람입니다. 한 번도 중심에 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 설교준비를 하면서, 목자들에 대해서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봤습니다. 그동안 이 말씀을 전할 때는 목자들을 소식을 전달받은 수동적인 사람으로만 보았습니다. 나 자신도 목자들을 대상화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목자들은 매우 주체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새삼 민중의 저력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목자들의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에 주목하십시오.

첫째는 15절입니다. 목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자고” 베들레헴이라는 장소는 어떻게 나왔나요? 천사는 베들레헴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동네에서 구주가 나셨다고만 말했습니다.(11절) 그런데 목자들은 단숨에 베들레헴으로 가자고 한 목소리로 결정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목자들이 율법선생은 아니지만, 다윗의 동네가 베들레헴인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가자고 곧장 결정한 건 무엇을 뜻할까요? 메시아를 기다리는 간절한 열망이 민중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퍼져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그렇기에 천사가 다윗의 동네에서 구주가 나셨다고 말했을 때, 지체없이 베들레헴으로 가자고 한 것입니다.

목자들의 능동성 두 번째는 16절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급히 달려갔다”
급히 달려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목자들이 평소에 아무 생각없이 양떼만 친 게 아니라, 목자들도 그리스도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에 대해 늘 마음에 품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기다림이 천사의 소식과 스파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그 일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 모든 마음의 표시가 ‘급히 달려갔다’로 나타났습니다. 마음의 간절함이 없으면 뛸 이유가 없습니다. 천사가 전해 준 소식이 자신의 마음과 부합하는 소식이 아니면 얼마든지 흘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가지 않을 수도 있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천천히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급히 달려갔습니다. 늘 학수고대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오는 행동입니다.

세 번째 능동성은 무엇인가요?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이 말씀에 목자들의 움직임을 말하는 동사가 있습니다. ‘찾아냈다’입니다. 이 단어는 목자들이 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베들레헴 성내를 뒤지고 다녔다는 암시입니다. 찾아냈다는 단어는 찾는 행위를 계속 하다가 마침내 찾았다는 뜻입니다. 이것 역시 목자들의 적극성, 능동성을 말해주는 단어입니다.

네 번째 능동성은 무엇인가요? “목자들은 자기들이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들에 있는데 천사가 나타난 이야기부터, 자기들이 하늘의 영광을 본 것, 그리고 천사의 말대로 지금 세 사람을 만난 것을 차근차근 아기 예수의 부모,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알려주었습니다. 이야기했다와 알려주었다는 어감이 다릅니다. 알려주었다는 어떤 사람이 알고 있는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준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능동성 다섯 번째는 무엇인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찬미하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사람이 자신의 소원,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바치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아무 소원도 없고 바램도 없고 간절함도 없으면 소원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설령 이루어졌다 해도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습니다. 간절히 원한 게 아니므로 마음의 감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우연히 천사들의 소식을 접하기 보다는 간절히 사모했고, 그것을 알아본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서 기쁜 소식을 전하였고, 목자들은 그 소식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말만 들은 것과 직접 본 것은 경험과 확신과 지속성에서 천지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여 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주체로 능동으로 행동했습니다.

우리의 성탄절도 기쁘고 반갑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제천의 화재로 죽은 생명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무슨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은 이유를 살펴보면, 너무도 허술합니다. 안전관리에 무감각합니다. 그저 돈만 벌면 최고라는 세태가 낳은 병폐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누가 만들어줄까요? 촛불정권은 우리 기대를 시원히 채워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요? 약속한 것도 없던 일이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엊그제 대법원 판결을 보면 적폐정치인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노동자를 대변하는 민중당 의원은 의원직을 잃었습니다. 사법부를 이대로 둬야 하나 하는 민심이 부글부글 끊고 있습니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몫은 누가 해 주는 게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달렸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보여준 목자들의 능동성, 주체성을 배우십시오. 그들이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듯이, 여러분도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십시오. 성탄의 평화를 온 세상에 퍼뜨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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