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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되새겨야 할 신앙진실
성탄절 후 첫번째 주일, “비방받는 표징”
2018년 01월 01일 (월) 22:46:24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7. 12. 31) 성탄절 후 첫 번째 주일

누가 2:22-40 “비방받는 표징”

한 해의 끝 날입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면서 여러 풍파를 겪다가 무사히 항구로 돌아오는 기분입니다. 오늘까지 무탈하게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합시다.

   
▲ 대구 새민족교회 백창욱님

지난 주 목요일, NCCK 대구인권위원회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날 아사히 비정규직 지회가 제 9회 인권상을 수상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식사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한 사람이 타락하는 게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냐 아니면 나중에 바뀌는 것인가요?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 이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 있습니다. 전에 다른 자리에서 한 목사님과 사드이야기를 하다가 김항곤 성주군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목사님이 김항곤씨와 고교동창이고 같은 동아리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성주에 사드배치가 처음 결정나서 김항곤이 사드반대한다며 삭발단식했을 때,(지금 생각하면 다 쇼였다)인사, 위로차 방문했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인적네트워크의 부질없음이란!)

저는 바로 그 사람이 사드 제 3부지로 소성리 롯데골프장을 제안했고 정권은 옳다구나 하면서 잽싸게 그 제안을 받았다면서 김군수의 배신과 변절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소성리주민들, 김천시민들은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겼다고. 김항곤은 사태의 원인제공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 왈, 김항곤이 젊었을 때는 안 그랬는데 권력자리에 앉으면서 변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람 마음바탕이 원래 그랬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처음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처음에는 순수했는데 나중에 변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면, 사실은 처음부터 마음바탕이 원래 안 좋은데, 환경이 안 돼서 숨겨져 있다가 점점 환경과 조건이 만들어지면서 마음본색이 드러난다고 봅니다.

이런 사례는 매우 많습니다. 김진홍목사는 <새벽을 깨우리로다>로 갑자기 유명해졌는데, 가까이에서 그를 아는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 왜 저렇게 됐냐고 물으면,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가 이명박 때 뉴라이트 대표가 돼서 경호원을 거느리고 설치고 다닐 때 변한 게 아니라, 환경과 조건을 만나면서 원래 있던 마음바탕이 활짝 드러난 것입니다.

이 진단에는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원래 죄성을 안고 있습니다. 다행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령의 성화로 나의 죄성을 깨닫고 경계하면서 예수의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주님의 은총을 잊어버리고 나의 죄성을 경계하지 않는 채, 죄짓기 좋은 환경과 조건을 만나면(성공주의, 번영주의) 나도 별 수 없이 죄된 인간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리면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나도 그런 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가슴에 품고 경계하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전하겠습니다. 본문의 교훈을 전하기 앞서 탄생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신학문제를 우선 살피겠습니다.

신학문제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탄생이야기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말씀은 예수의 부모가 모세의 법대로 아기를 주님께 드리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근거는 23,24절에 있다) 성전에서 예수부모는 여느 부모처럼 율법에 규정된 절차를 하나하나 수행합니다. 또 예상에 없던 시므온과 안나를 만나고 그들로부터 예언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아기 부모는 성전 일을 다 마친 뒤에,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부모의 모습은 성전에서 늘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입니다. 그 어떤 긴박하고 긴장된 분위기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 사진은 예수살기 김영동님 작품

그런데 마태복음의 탄생이야기는 어떤가요? 매우 살벌합니다. 긴박합니다.
“박사들이 돌아간 뒤에, 주님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해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요셉이 일어나서, 밤 사이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헤롯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마태 2:13-15)

이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 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마태 2:16) 베들레헴과 인근 지역은 유아학살이 벌어집니다.

마태복음 상황에 누가복음 이야기를 대입하면 어떻게 되나요? 예수 부모가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애굽으로 피신하는 중에 급하게 성전에 들러 갔다고 하는데, 행로상 불가능합니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은 애굽 가는 길에 있지 않고 정반대로 위쪽에 있습니다.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또 군사가 삼엄하게 감시하는 상황에서 길을 거슬러 성전에 올라간다는 건 ‘나 잡아가슈’ 하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탄생이야기는 서로 충돌합니다. 어느 복음서의 탄생이야기가 사실인가요? 마태인가요? 누가인가요? 역사상으로도 마태에 나오는 말씀인, 헤롯이 그 때 대규모 유아학살을 자행한 기록은 없습니다. 또 누가에 나오는 말씀인,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천하에 호적령을 내린 근거도 없습니다.
그럼, 두 복음저자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말한 것인가요? 정확한 답은 ‘알 수 없다’ 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성경은 역사책이 아닙니다. 육하원칙에 근거한 기록이 아닙니다. 근본주의자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에 나온 사건들을 실제 역사로 철썩같이 믿는 것입니다.

실제 역사였던 사건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멸망,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멸망 등) 성경저자는 그 사건을 완전 재해석, 재창조했습니다. 없는 사건을 있는 사건처럼 새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실제 역사면 믿을 수 있고 실제 역사가 아니면 믿을 수 없나요? 실제 있던 일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상식입니다. 상식과 믿음은 다릅니다. 믿음은 다른 차원입니다.

예수의 탄생이야기도 이런 경우입니다. 탄생이야기는 복음서 저자의 창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저자의 이야기가 서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마태보다 후에 나온 누가는 마태의 탄생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그냥 자기 공동체의 관점에서 탄생이야기를 새로 썼습니다. 그럼, 탄생이야기를 쓴 저자의 관점은 무엇인가요?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데 모든 초점이 있습니다. 그 초점에 맞추기 위해 그 시대 재료들을 동원하였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동원한 게 아닙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로마제국과 어떻게 다른가를 끊임없이 암시합니다. 그리고 누가 진짜 그리스도 주님인가를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탄생이야기를 접하는 우리도 두 복음서가 왜 이렇게 다른지에 대해 헷갈려서 시험에 들거나, 내 믿음이 오리무중이나 불가지론에 빠질 이유는 없습니다. 각각의 복음저자가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가에만 집중하고 신앙진실을 얻으면 됩니다. 이상이 복음서 탄생이야기에 대한 신학문제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이들은 한평생을 성전 붙박이로 살았습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누구보다도 갈망했습니다. 시므온은 한평생 변절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그가 평소에 그리스도 주님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에 나옵니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누가 2:29,30,32) 이 노래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자신이 사는 이유가 오직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에 있습니다. 개인의 사심은 한 톨도 없는, 오직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인류가 예수로 인해 복되기만을 비는 한 노인의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안나입니다. 이 사람 소개말을 보십시오. 특히 안나를 소개하면서 지파를 밝힙니다. 왜? 안나는 이스라엘에서 완전 비주류 출신이라는 암시입니다. 이스라엘의 주류지파는 유다지파입니다. 이 두 예언자가 아기 예수를 보자마자 즉각 하는 예언내용이 무엇인가요? 시므온은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노래합니다. 안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아기에 대해 말합니다.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서로 협잡해서 성전을 강도굴로 만들어 민중을 빨아먹는 와중에도 다행히 시므온과 안나같은 진실한 성전사람이 있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구원과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구하는 사람 덕분에 아기 예수의 성전 정결례가 더욱 빛날 수 있었습니다.

시므온의 예언 중, 비장한 말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아기가 장차 받는 비방 때문에 칼이 모친 마리아의 마음을 찌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표징이 우리 상식을 사정없이 깨뜨립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할 때는,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기가 그리스도 표징이라고 하더니, 오늘 말씀에서는 비방받는 일이 그리스도 되심의 표징입니다. 갓난아기 표징은 힘으로 세계를 평정하는 메시아를 기대하는 사람을 깨게 만들고, 또 비방받는 표징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떠올리는 사람의 선입견을 깨뜨립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탄생이야기에서 얻을 신앙진실은 무엇인가요? 예루살렘 권력과는 하등 관련없는, 주변인 시므온과 안나의 찬양을 받는 그리스도, 비방 받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시므온과 안나가 보여준 품성이 참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하나님을 향한 인내와 기다림, 또 성실과 공경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오늘 되새겨야 할 신앙진실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시므온, 안나의 신앙품성이 절실합니다. 여러분께도 같은 은총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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