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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시와 이야기가 있는 노트 3편
2018년 01월 08일 (월) 09:56:08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시와 이야기가 있는 노트 하나, 새해 새날은

오세영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눈송이를 털고
침묵으로 일어나 햇빛 앞에 선 나무,
나무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긴 동면의 부리를 털고
그 완전한 정지 속에서 날개를 펴는 새
새들은 비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해 새날이 오는 길목에서
아득히 들리는 함성
그것은 빛과 빛이 부딪혀 내는 소리,
고요가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소리,
가슴에 얼음장 깨지는 소리.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

얼어붙은 계곡에
실낱같은 물이 흐르고
숲은 일제히 빛을 향해
나뭇잎을 곧추세운다.

[시와 이야기가 있는 노트]

새해 첫 날에 산에 올랐다
얼굴 찡그리고 온 사람은 없다
힘든 길 오르면서 웃음가득하다
잡아주고 끌어주고 친절하다
가져온 먹을거리 아낌없이 준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사진도 찍어준다
어린아이처럼 맑은 마음으로 밝다

새해 새날은
산으로부터 온다는 시인의 말을 알겠다
새해 새날은
산꼭대기에서 채화되어 아래로 내려온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만나 물들이고
그들과 함께 산 밑으로 내려간다
그 맑음으로 새해를 시작하란다
그 친절함으로 새해를 시작하자

(0108, 가재울에서 지리산)

   

시와 이야기가 있는 노트 둘, 마음의 창살

송경동

잡범 징역 두 번 살며 배운 거라곤

내 밥그릇 두 개면
누구 하난 밥그릇 없다는 것

내가 떡잠이면
누구 하난 새우잠이라는 것

낙하산 타고 들어온 놈 있어
세월 간다고 왈왈이 되지 않는다는 것

싸우려면 끝까지 싸워야지
도중에 그만두면 영원히 찌그러진다는 것


[시와 이야기가 있는 노트]

새해 처음 빼든 시집이 <꿀잠>이다

골프장 케이불카 토지강재수용 반대
“우리는 이긴다. 이길 때까지 싸우니까.”
박성율의 외침엔 연민과 분노가 있다

신영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감옥에서의 지옥은 여름밤이란다
좁은 감옥 칼잠을 자야하는 상황
더워 동료를 밀쳐 내야하는 것이
가장 아프고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추운 겨울엔 부둥켜안는다고

세상을 감옥으로 치환하는 시인
누군가 배부르면 누군가는 배고프다
명심하고 또 명심할 일이다

(0106, 가재울에서 지리산)

   

 1월1일에 (새해에)

이채경

아침에 눈을 뜨니
흰 서리 내린 겨울 창문으로
성큼 새해가 와 있습니다.
나는 가슴이 덜컹합니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지난해와 달라진 게 없는데
그냥 새해가 와 버리면 어쩌나요.
나를 슬프게 하던 일들은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합니다.
나는 잠시 지난 시간 속
슬프고 아름다웠던 기억들 안에
머무를 수는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기억들은 꿈과 눈물과 소망으로 가득 찬 것이며
웃음과 한숨으로 빚어진 것이기에
내게는 마치 마음의 뼈와 같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짐을 지고는
오늘의 삶을 살 수 없듯이
하나가 끝나야 비로소 하나가 시작됩니다.
비록 준비가 없어도 떠나야 할 때는 떠나는 겁니다.
슬픔의 속살을 똑바로 보고
끊어지는 현기증 나는 아픔을 견딜 때
나는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시와 이야기가 있는 노트]

익숙한 것들과의 단절,
그 아픈 단절이 없이는 새것을 얻을 수 없군요.
대나무는 마디가 있어
가늘고 길게 뻗어 자라도 부러지지 않습니다.
날과 달, 해를 정한 것은 마디와 같지요.
길게 펼쳐진 인생이 부러지지 말라고
실패하고 힘들어도, 아파하지 말라고
새로 시작해보라고 기회를 주는 거지요.
준비 없이 새해를 맞았어도
새해와 함께 새로운 길을 떠나보세요.

(0105, 가재울에서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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