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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행적, 역사속으로 묻히는가?
러시아를 변화시킬 고려인 인재양성 시급!
2010년 12월 01일 (수) 18:44:10 류기석 yoogiseo@yonsei.ac.kr

녹색의 땅 볼고그라드 고려인 삶 조명 

지난 봄, 머나먼 러시아 서남쪽 거대한 녹색의 땅에 대한 소개를 받고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다 어렵게 연세대 CT연구단 설용건 단장, 궁노루 이상명 대표, 허브다섯메 조강희 대표와 함께 시간을 쪼개고 자비를 들여 고려인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러시아 볼고그라드(옛 지명 스탈린그라드)를 찾았다. 

그곳에는 연해주에서 우여곡절 끝에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또 다시 구 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아 살길을 찾아 재정착한 고려인들이 제법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웬만해선 교회건립만을 위한 선교지는 찾지 않았던 필자가 때마침 만난이는 19년 전 러시아의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멸시와 천대를 받는 자들을 일일이 돌보고 섬긴 조익현(78세)선교사다.

노년에 그가 마지막으로 역점을 두고 시작하는 선교사업은 자연농업이 밑바탕이 되는 기독청소년 농군학교를 설립하여 운영을 하고 있는 터라 겸사겸사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그가 하는 사업 위에는 고려인들의 지속가능한 자급 자족을 위하는 일과 민족 공동체로서 정서를 담고, 마을공동체를 다시 살려내려는 의식이 있어 필자를 그곳으로 불러 들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 러시아 볼고그라드 조익현선교사께서 오이를 돌보는 모습

조익현선교사의 자택은 볼고그라드 시내에서 불과 30분이내 교외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우리의 전원주택단지를 연상시키는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어 놀랐다. 집집마다 마당과 텃밭이 있고, 들꽃과 각종 유실수들을 가꾸는 정성하며 우리보다도 더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아 이곳이 바로 녹색의 도시구나 생각했다.

아직까지 이곳에는 버스와 전차가 공존하여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특별히 일정중 하루를 택해 고려인 동포의 집으로 초대되어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여느 집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초라한 대문을 들어섰는데 집안은 딴 세상인 것에 놀랐다. 각종 야채들은 물론 안성맞춤인 비닐하우스에는 오이들이 주렁주렁 열렸고, 포도밭을 연상시키는 포도들이 집안 마당에 파란 떡잎을 달고는 자그마한 포도 알을 애지중지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 러시아 볼고그라드 고려인가정 방문, 비닐하우스

고려인 주택은 잘 정돈된 텃밭과 과수원이 적절하게 혼합된 농장이 딸린 집으로 주인은 과거 수십만 평의 농장을 경영했다고 하는데 주인장의 얼굴엔 온갖 역경을 이겨낸 주름살이 고단한 세월을 말해주는 듯 했다. 표정이 굳은 주인장과는 달리 안주인의 표정은 매우 밝고 명랑했다.

그곳에서 러시아 특유의 음식들을 맛보는 호사를 누리는 등 환대를 받았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음식 피로츠키(?)를 맛나게 먹었는데, 양고기나 소고기(이날은 닭 또는 오리로 추정), 감자, 양파, 후추, 소금으로 속을 채우고 밀가루 반죽을 약간 두껍게 감싼 다음 기름에 튀긴 이색별미와 천연의 체리음료를 마음껏 맛본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 러시아 볼고그라드 고려인가정 방문, 좌로부터 조강희 대표, 조익현 션교사, 설용건 단장, 이상명 대표

후식으로 딸기밭의 달콤한 딸기를 마음껏 먹고는 포도수형을 잡아주는 작업을 자신있게 주도했다. 그러나 시범으로 가지를 여러 나무 쳐주었는데 그곳에서는 포도송이의 수량만을 중시하는지 두 양반의 표정이 밝지를 못했다. 이내 포도순 자르기로 여러 송이를 튼실하게 키우기 보다는 여러 송이를 달아내는 것에 관심이 있음을 눈치 채고는 다음을 기약했다.

봄인데도 집밖의 태양은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애써 작별을 고하면서 고려인들의 알콩달콩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나날이 있었음을 느낀다. 앞으로 조익현선교사의 생명과 평화의 본성을 살려내려는 지구촌자연농업센터와 기독청소년 농군학교가 고려인들로 하여금 러시아의 농촌과 농업의 주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러시아 고려인 인재양성 시급하다

조익현선교사가 바라고 원하는 비전은 러시아 볼고그라드의 고려인들이 러시아의 농업정책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전문가로 교육시키는 것으로서 구체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지난 봄, 러시아 볼고그라드 방문시 고려인 기독교청소년농군학교 학생들과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사랑, 나라사랑(자기민족, 이웃사랑), 자연 사랑을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며, 그들 중 농사를 천직으로 알아 평생을 농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청소년들을 모아(98년도 1차 40-50명의 청년들이 지원. 이 학교는 3년 과정. 당시에는 볼고그라드에서 큰 공장에서 50%를 부담하기로 약속을 받았지만 저희 쪽에서 재정적인 준비가 되지 않아서 추진하지 못했음)기독농군으로 훈련시켜 생활 속에서 주님을 증거하며, 농업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러시아에 보여 주므로 농업정책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자하는 것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이곳의 고려인들이 몸담고 있는 러시아에 큰 도움을 주는 삶을 살도록 방향을 제시해주고 이끄는 것이다. 이일을 통해 고려인들의 위치가 향상되고 러시아에 도움을 주며 보이는 것을 통해 믿으려 하는 러시아인들에게 복을 전하는 좋은 길을 열고, 조국의 앞길도 여는 일석 삼조의 일을 해 보자는 것이다.

2000년 7월에 한국을 다녀 올 때 비행기 안에서 “주님이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지만 주님이 40년 내지 50년 아니 그 후에 오시면 우리나라는 설 땅이 없어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돈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 좋은 곳에 찾아간다지만 서민들은 어디로 갈까? 중국은 자기나라 인구도 수용하기가 바쁘고, 그렇다면 러시아 밖에 가서 살 땅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때에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영적인 눈이 어두워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고 있을 때에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바로 설수 있도록 러시아의 농업정책을 바로 잡아 주는 일을 우리나라가 고려인들을 통해서 과감하게 해나가자는 것이다. 고려인들의 인력과 기술이 있고, 땅이 좁은 한국보다는 단위 면적당 수확이 두 배 정도 되는 이곳이 적지라는 것이다.

또 그것을 추진할 재정도 있고, 한국이 어렵다 해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러시아보다는 앞서 있는데 기본적인 방향을 틀어 주기 위한 재정은 뜻을 같이 하는 분이 모여 확보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또 농사지을 땅은 얼마든지 있기에 아직 농지가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에게는 땅은 얼마든지 주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땅 값은 1ha당 3-10$이라고 한다. 이런 것들이 다 구비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안 되며, 바른 마음으로 이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부족한 종을 이곳에 보내서 믿음 가지고 기도하는 은혜가족이 3500명 이상이 되도록 인도하셨다며 그분들이 대부분 러시아인이지만 고려인들도 500여명 되며, 이일이 추진 될 때 러시아 성도들도 같이 기도하고 동참하게 될 것으로 안다고 하면서 이일과 함께 고려인에게도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고려인 행적, 역사 속으로 묻히는가?

러시아 및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는 한국인 모습과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미국에서 거주하는 동포를 재미한인이라 하고, 일본에서 거주하는 동포를 재일한국인, 조선인, 그리고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를 조선족이라 부르는 것과 달리 이들에게는 ‘까레이스키’라는 칭호가 있다. 스스로를 ‘꼬레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고려인’이다.

   
▲ 러시아 볼고그라드 고려인가정 방문, 과수농장

 

   
▲ 러시아 볼고그라드 고려인가정 방문, 포도밭

(사)고려인돕기운동본부에 따르면 고려인의 역사는 1863년에 시작된 북방개척이민에서부터 1910년대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을 위한 중심무대로까지 약 1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 불과 13가구였던 고려인은 20만 명을 넘어섰고, 현재 러시아, 만주, 카자흐스탄 등 과거 소비에트연방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은 약 55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3~5세대이며, 현지인들과 어울려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초기 독립운동가로 주를 이뤘던 고려인들은 촌락을 만들어 생계유지와 독립군 후원을 위해 다양한 생산 활동을 펼쳤고, 일부는 노동에 종사했으나 대부분이 콩과 옥수수 등 작물과 벼농사를 지었다. 경작만으로는 수익이 턱없이 부족했으나 고려인 동포사회와 독립운동기지 기반을 다지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 러시아 볼고그라드 시내의 전원풍경

 

   
▲ 러시아 볼고그라드 시내의 텃밭풍경

이들은 농민을 가장한 독립투사들이 대다수였기에 항일운동의병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의병활동에 참가한 고려인들은 7만여 명에 이르게 됐다. 의병들이 조직한 단체로 13도의군 성명회, 권업회 등이 있었다. 고려인 동포 지도자들은 교육과 언론을 통해 민족혼을 키우기 위한 사업으로 문화 활동, 학교설립, 신문발행을 전개했다고 하며, 연해주 고려인 동포학교는 11곳이었으며, 사법학교도 있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도 고려인 동포학교가 3곳이나 있었다.

고려인들의 시련은 1920년 4월 연해주 신한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끔찍하게 죽어갔다. 이뿐만 아니라 프리모르스키 크라이의 남쪽에 위치한 우수리스크에서 76명의 한인들이 참변을 당했다. 이는 일제가 벌인 잔인무도한 소행이었다고 한다. 신한촌 사건과 우수리스크 참변(4월 참변)의 후유증도 가시지 않은 채 1937년 가을, 스탈린 정권은 연해주에서 거주했던 고려인들을 당시 구소련 정권에 반하는 민족으로 구분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들은 기차에 몸을 실고 40일간 중앙아시아로 떠나야만 했다.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지만 당황할 겨를도 없었다. 고려인들은 매일 배고픔과 싸워야 했으며,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슬퍼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강제이주로 고려인들이 뿔뿔이 흩어졌으며 이들은 집도 재산도 전부 잃고 난민처럼 지내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말이 아닌 러시아어를 쓸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고려인 4~5세대들은 우리말을 거의 모른다.

   
▲ 러시아 볼고그라드 시내의 교통

1990년대 구소련의 해체와 신생독립국가들의 탄생으로 고려인들의 삶은 다시 불안정해졌으며 다시 연해주로 돌아온 고려인이 있는가 하면, 강제 이주된 곳에서 정착해 삶의 터전을 일군 이들도 있었다. 다른 구소련 내 소수민족과 달리 모국으로 귀국할 수 있는 지원프로그램이 없을 뿐더러 반겨주는 나라도 없었기에 고려인들은 억척스레 현지에서 살아야만 했다.

중앙아시아 신생독립국가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면서 타민족을 배척했다. 소수민족인 고려인들 역시 차별의 대상이었다. 독립 국가들은 자국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키로 했고, 이민족 차별정책을 심화했다. 외국어라고는 러시아어밖에 할 줄 모르는 고려인들은 그 나라의 말을 모른다는 이유로 취업을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거나 공무원, 교사, 의사, 연구종사자 등 전문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던 터라 사태는 심각했다. 짧은 시간에 그 나라 언어를 습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집과 재산을 버리고 떠나라는 협박편지를 받을 정도였으며, 전문직 종사자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했다. 현재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고려인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 러시아 볼고그라드 시내의 거리풍경

이러한 고려인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된 법안이 ‘고려인 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인데 최근 우리의 국회를 통과했다고 한다. 이로써 무국적 고려인이 거주국에서 국적 등 합법적 체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우리정부가 외교적으로 지원하고 그들의 권익 증진과 생활 안정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하는데 현지 볼고그라드에서 확인한 결과는 구체적으로 뚜렷한 성과가 없어 보였다.

그나마 민간 차원의 교류와 지원이 꾸준히 이어져 온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 한민족 특유의 민족정신을 발휘한 진정한 한민족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든가 아니면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분들과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듯하다.

   
▲ 러시아 볼고그라드 시내의 거리풍경

우리민족서로돕기, (사)고려인돕기운동본부 등의 민간단체들과 종교단체들은 고려인들이 기초적 생활과 현지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농업분야를 지원하고, 한글 및 한국문화를 전파를 통해 그들이 한민족임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는데 이러한 일들이 일회성으로 끝나기 때문에 좀 더 지속가능한 방안들이 마련됐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와 대륙의 고려인 사회가 한민족으로서 1차 산업뿐만 아니라 2차와 3차 그리고 5,6차 산업까지를 아우르는 적정기술농업과 역사와 문화를 통한 지원·협력 사업을 지혜롭게 이룬다면 세계를 향한 평화공동체마을의 단초가 될 수 있지않을까.

기독청소년 농군학교를 세워야할 이유

조익현 선교사는 1991년 10월에 사할린 홈스크에서 선교사역을 역임하다가 1994년 소임 지를 볼고그라드로
   
▲ 최근 러시아 볼고그라드 고려인 기독교청소년 농군학교 교육풍경
옮긴 후, 현지 러시아인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섬기면서 주의 종이 되기 원하는 성도들을 발굴하여 모스크바 은혜신학교에 보내어 교육을 받고 돌아온 후 교회개척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1년 10년 동안 사역을 하고 난후 체력이 약해지고, 현지 목회자를 지도 할 수 있는 한계에 부딪혀 2001년 말 모든 사역을 러시아 현지 선교사인 루징끼 알렉세이목사에게 넘겨주고, 안식을 취하기로 마음먹고 모든 사역을 정리하고 있었다.

2001년 3월 알렉세이 목사에게 하던 사역을 넘겨주고 독일에 가서 아이들과 안식할 준비를 하고, 파송처인 미국 로스앤젤레스 은혜한인교회 김광신 목사에게 허락까지 받았다.

49개의 크고 작은 교회들과 정든 사역자들을 두고 떠난다는 생각을 할 때,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고 한다. 평안을 찾기 위해 기도를 하는데, 이런 감동이 왔다고 한다. “고려인들의 영혼은 어찌하고 쉬려고 하는가?” ”하나님이 쉬지 않으시는데 네가 육신을 위해 쉬려고 하느냐?“ “고려인의 영혼은 어찌하고 육신의 평안함만을 위해 쉬려고 하느냐?”는 감동이 기도 할 때 마다 목사님의 심령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런 연후 자신과 볼고그라드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볼고그라드에는 한국선교사가 조익현 선교사와 UBF 두 가정이었는데 이후 UBF 가정은 사정이 있어 철수하여 조익현 선교사 가정만 남은 상태였다.

첫 번째 떠오르는 것은 1994년도에는 볼고그라드에 고려인들이 5,000여명 이었던 것이 2001년 3월 떠나려 할 당시에는 30,000명으로 늘었다는 사실, 원동에서 37년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 중 이런저런 이유로 그곳에서 정착하지 못해 떠돌다가 볼고그라드까지 온 것이다.

대부분 타지키스탄의 내전으로 인해 1991년 이후 이주한 고려인과 우즈벡에서 근간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로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므로 이주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러시아로 이주하는 고려인의 80%는 볼고그라드로 이주 했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아직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영세민이어서 삶에 쪼들렸다.

역사의 비극 속에 탄생한 고려인, 조익현 선교사는 아직도 정착 못하고 방황하는 그들이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분들은 마음에 한과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고, 3-4대를 거쳐 아직도 살 곳을 찾아 헤매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들은 겉은 고려인이나 속은 러시아 사람이면서 그들의 마음 저 밑에는 보이지 않은 눌림에 대한 반감이 도사리고 있어, 아무리 어려움 가운데 소망을 준다 해도, 러시아목사님이 사역하는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의 심정이 조익현 선교사에게 전달된 것이다.

두 번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1997년 50명 안팎으로 모이던 고려인교회를 러시아 제자에게 맡겼는데 2001년 안식을 떠나려고 보니 3명 남고 모두 러시아 사람으로 교체된 모습을 발견 했다고 한다.

세 째로 많은 외국 선교사가 오고 있지만 그들은 머리 노랗고 눈이 파란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들에게는 정을 주면서 유독 머리 까맣고 눈 꼬리가 살짝 위로 찢어진 험악한 인상의(이곳 사람들의 표현) 우리고려인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자연 고려인의 영혼은 같은 얼굴의 모습을 한 사람이 보살펴야 된다는 강한 책망의 감동을 느끼게 됐다. 이에 육신의 안식을 위해 독일 자녀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접었다.

그리고는 회개하고 다시 헌신하는 마음으로 고려인들의 영혼을 위해 머물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기도하면서 그때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사실 한 가지를 놓고 주님께 물어 보았다고 한다. “왜 중앙아세아에서 러시아로 오는 고려인들이 볼고그라드로 모여 듭니까? 러시아 내에서도 전쟁의 불안 속에 있는 체첸부근의 고려인들은 대개 볼고그라드로 옵니다. 왜 고려인들을 볼고그라드로 모이게 합니까?”였다.

하나님은 두 가지측면에서 깨달음을 주셨다고 한다. 한 가지는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 러시아가 고려인들의 특수성을 활용하여 볼고그라드에서 무엇인가를 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과 또 한 가지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의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 목적은 첫째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넓고 넓은 러시아 땅 중에 볼고그라드에 몰려들게 하는 것은 바로 마지막 때에 선교하는 민족으로 택함 받은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지도록 하여, 고려인들을 통해 러시아 교회를 일으켜 세우라는 것, 그 후 “한국교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선교에 동참하게 해주세요!”라며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러시아 교회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고려인들을 주축으로 해서 볼가강과 돈강에 성령의 불, 사랑의 불, 부흥의 불을 불붙여서, 먼저 청년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그들과 함께 러시아 150여 민족들의 의식을 변화시켜, 러시아가 세계평화를 만들어 나가는데 앞 장 세우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카프카스 지역에 있는 180여 소수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카프카스를 넘어 러시아 언어권인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잔 구르지아에 복음을 전하면(2010년 초에 아르메니아에서 Tres Dias를 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있음), 그곳에는 아랍계 페르샤계 투르크계에 속한 수많은 민족들이 있으므로, 러시아 언어권인 그 세 나라에 성령의 불과 사랑의 불, 부흥의 불을 붙이자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각기 자기 민족이 있는 나라로 돌아갈 때, 이란, 이락, 터키, 레바논, 욜단, 시리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오만, 아랍에미레이트, 나가서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 까지도 복음을 들고 나가게 될 것으로 이 나라들에게 복음이 전파 될 때쯤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은 전파 될 것이고,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며, 그때 주님은 오시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한국교회가 고려인들을 통해 러시아교회의 방향을 바르게 인도할 때라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교회가 이런 일을 하도록 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러시아가 70년간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쳤던 사실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전 국민이 3일 금식기도를 하게 해달라는 것과 러시아가 10,000명의 선교사를 모슬렘 권에 파송, 한국과 중국 쪽에서 올 100만 명의 선교사에게 필요한 물질을 러시아를 통하여 쓰여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와 같이 회교권의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기독청소년 훈련원을 세우도록 감동을 주셨고, 기독청소년 훈련원은 훗날 기독교종합대학을 꿈꾸며 그 첫 단계로 기독청소년 농군학교 설립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많은 선교단체가 세운 신학교가 있으며, 그러기에 신학교는 차고 넘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신학교를 세우기보다는 기독청소년훈련원을 세워서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복음과 삶을 가르쳐 복된 사역에 임하고, 다양한 선교지에 보내는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복음과 떡을 들고 선교지에 가자는 것이다. 먼저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여 삶을 가르친 후, 진실된 복음을 전하자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기독 청소년 농군학교를 세우자는 것.(첫 선교지인 사할린 홈스크에 1992년에 기독교학교를 설립하였던 바 매주 2회 성경을 가르쳐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현재 사할린에서 최우수 사림학교로 자리 잡고 있으며, 졸업생은 러시아 각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는 간접선교로 큰일을 감당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기독교청소년농군학교를 세워 성공하면 어떤 보람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첫째 러시아 농업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러시아는 개혁이후 18년이 지난 지금 집단농장이 모두 해체되고, 농업정책을 어떻게 해서 바르게 세워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고 한다. 이에 한국의 친환경농업기술을 고려인들을 통해 보급시키고 소자본을 투자하여 시범농장을 운영함으로써 실증실험을 통한 친환경농업정책과 기술의 방향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이 일이 성공할 때 고려인들의 위치는 향상되며 한국은 러시아에 간접적으로 덕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계시면 보여 달라고 하는 러시아 관료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작은 나라, 소수의 힘없는 고려인들을 통해, 그들이 해결 하지 못하던 농업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어 복음을 전파할 영역을 넓히자는 것이다.

두 번째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복음의 불모지이면서 아직도 미전도 종족이 가장 많은 이슬람권에 대한 선교사역이다. 이슬람권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는 “믿습니다.”로 마구 부딪힐 것이 아니라 먼저 그들과 삶을 나누는 길을 선택하여 친구가 된 다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독청소년농군학교에서는 말씀과 영성훈련이 이루어지므로, 자연농업을 통해 사막에 농장을 세워 막대한 식량을 사들이는 아랍권에 스스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좋은 관계 속에 복음을 전하여 부딪침을 피하고 효과적인 전도를 하자는 것이다.

기독청소년농군학교의 설립목적과 훈련내용은 “기독청소년농군학교”를 참고하기 바란다. 한 가지 특별히 설명드릴 것은 왜 자연농업을 택했느냐 하는 점이다. 한마디로 자연농업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시키는 구체적인 행위이므로 자연농업은 기독청소년들 중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 농업을 하겠다는 사람들만 제대로 키우는 일이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드리자면 인간의 탐욕은 우리가 육신의 양식을 돈 버는 목적으로 삼고, 나아가 앞으로 무기로 삼는 시대가 돌아온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는 식량증산의 필요성으로 중농정책이 실시되었는데, 고도성장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단위 면적당 수량을 올리는 것만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농업기술이 전 농토를 뒤덮었다. 그로 인해 토양 속에 보물인 흙을 보살피지 못하여 미생물이나 작은 생물들을 죽이는 일을 해 왔다. 그로 인해 땅에는 화학 비료를 날로 더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고 그것은 땅을 더욱 황폐시키는 일이 되었다.

제초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 대량의 제초제를 투입한 것은 물론, 병충해 대책으로 엄청난 농약의 사용은 필연적이었다. 더욱 나쁜 것은 해마다 농약을 사용하는 양을 늘려야 한다는 것과 재배형태도 단작의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변하여 그 토지의 특성을 살려가며 균형잡힌 여러 품목을 기르는 윤작형태를 거슬렀다.

오로지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돈을 벌어들이는 작물의 선택적 재배로, 풍요하기만 했던 전과 답에서 개구리나 잠자리 미꾸라지 지렁이 등의 모습이 사라지고, 농업의 생산형태는 대자연의 순환체계가 단절되고 말았다.

병충해를 박멸하기 위해 대량의 농약이 사용되고 저항력이 점점 강해지는 균들과의 끊임없는 싸움에 말려들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농약은 나쁜 균도 죽이지만 유익한 박테리아도 동시에 죽이므로 토양 미생물의 활동이 둔화되고 토양 내의 양분의 분해가 약화되어 고가의 화학비료의 사용증가가 불가피하다.

지금 식량문제는 양의 족도 문제이지만 인체에 해로운 양식을 양산해서 유통시키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었다. 그래서 기독청소년농군학교에서는 자연농업을 택하게 되었다. 자연농업으로 토양 속에 토착미생물을 배양 살포하여 토양의 체질을 3년에 걸쳐 변화시키고 병충해는 천연녹즙으로 농약을 대신 사용할 때 3년 후에는 화학비료도 필요 없고 화학제품인 제초제와 농약도 필요 없는 농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때 우리들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식량과 채소, 고기를 생산하게 되는 것, 러시아에는 아직 광활한 농토가 있기에 이런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땅이 망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이때 전 세계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비전을 품고 나가야 하는 기독교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며 이런 농업기술로 먼저 자기가 있는 지역사회를 복음화하고 부름 받은 자들은 이스람권의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이다.

이스람권은 대개 석유가 많아 경제적 어려움이 없지만, 어느 나라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일차 산업인 농업이 흔들리면, 그 나라 경제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이슬람권에 이런 자연농업을 경영 할 수 있는 선교사를 파송하여 덕을 세우는 삶을 가르친 후 복음을 전하자는 것이다.

몰라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스람권도 하나님은 사랑하고 계신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눈물 흘리시는 주님의 심정을 안고 우리는 이슬람권으로 가야 한다. 복음과 함께 자연농업을 안고 먼저 좋은 먹거리를 효과적으로 생산하는 것을 가르치고 난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아프카니스탄 사태 같은 충돌은 피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 있다고 본다(그렇다고 아프카니스탄의 사태가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 일진데 그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 나가야 하며, 한번은 있었어야 할 일이라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기독청소년농군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의 정도를 조익현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최근 러시아 볼고그라드 고려인 기독교청소년 농군학교 실습풍경
"우선은 볼고그라드시에서 70km 떨어진 볼가강가 베흐뉘 뽀그롬뉘(많이 파괴되었다는 뜻을 가진 이름임)에 250평방메타의 교회 겸 학교로 사용할 건물을 금년에 건축을 마쳤습니다."

"자연농업에 대한 기술보급은 우리나라 자연농업 창시자요, 권위자인 조한규 장로님이 직접 2008년 5월에 방문하여 자연농업연찬을 진행했습니다. 고려인 중 2명이 2007년 한국괴산에 있는 자연농업생활학교에서 전 과정 실습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 두분이 조한규장로님과 함께 자연농업을 가르칠 교사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체육이나 농업실습교사를 제외하고 다른 과목들은 현지에서 전문분야에 종사했던 은퇴자 분들 중 뜻을 같이하는 분을 모실 예정입니다.(이곳에는 여자는 50세 남자는 60세에 은퇴함)."

"실습할 비닐하우스와 돈사가 필요하고(가격은 산출해 보지 않았음)실습지로 100-200ha를 준비해 놓으라는 조한규 장로님의 부탁이 있었습니다.(물론 처음부터 그 땅 전체를 경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농토가 저렴할 때 구입해 놓으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이에 관개시설이 없는 땅은 1정보에 450-550$, 관개시설이 되어 있는 땅은 1정보에 1500-2000$임)"

"비닐하우스 1ha와 돼지 300두를 사육할 돈사와 실습지 100-200ha를 확보하고 1-2년 분 학교운영비(교사 월급)만 확보되면, 2009년 9월에 교회내의 학교로 출발할 것입니다."

"농업전문학교 졸업장을 주는 학교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 위에 선 자연농업전문가를 키워 내 세상에서 빛과 사명을 감당하고 평화를 만들어 나가며 죽어가는 영혼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살려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군들을 양육하는, 주님의 제자들을 만드는 학교로 운영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적은 땅에 산이 70%이고 경지면적이 얼마 되지 않아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뒤떨어질 뿐 아니라(러시아에 3-5배) 자연농업은 일본을 비롯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배우러 올 정도로 앞장서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 세워지는 기독청소년농군학교는 우리가 뜻을 합하여, 바로 이 시기에 세워 성공하면, 우리민족과 국가는 러시아에 큰 덕을 끼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구 소련이 해체되면서 러시아는 잘못된 농업정책으로 집단농장이 거의 다 와해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그 대안을 찾지 못합니다. 3년 전만 해도 그 넓은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600만 톤의 곡식과 100만 톤의 고기를 수입한다는 신문보도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이제는 곡물은 남아돌고 있으나 고기는 아직도 부족한 상태임)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러시아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에 부자나라가 되는 것은 틀림없지만 기본 산업인 농업이 바로 서지 못하면 러시아 경제는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로 이때 우리가 고려인들과 함께 이런 학교를 세워 러시아에 영농기술과 함께 농업정책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면 우리나라와 고려인들이 러시아에 큰 덕을 끼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20-30년에 안에 오신다면 우리나라는 좁은 땅덩이에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출산율이 떨어지지만 고령화로 인해 인구는 늘게 마련입니다)"

"또 좁은 땅덩이에 많은 사람이 사는 이유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들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그것을 예방하는 것은 세계가 한 촌과 같은 시대에 넓은 땅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해결책입니다.(또 자연농업을 통해 몸에 맞는 좋은 먹 거리를 생산해 내야합니다.)"

"그런데 돈 많은 사람들은 미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등 살기 좋은 나라를 찾아 간다고 하지만 서민들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중국과 인도는 땅은 크지만 사람으로 꽉차있고 러시아는 텅텅 비어 있으니 지금 덕을 쌓아 두는 일이 미래에 우리 국민이 환영받고 이로울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유익은 날로 악해져가는 사단의 세력을 효율적으로 물리치고, 복음을 전하는 길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지금 우리가 힘을 합하여 하는 작은 일이 이렇게 많은 유익을 주게 된다는 사실을 아시고, 이일을 이루기 위해 함께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로 동참 할 수 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분들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현재 저와 동역하는 사역자가 개척한 교회는 69개로 그중 고려인만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곳은 10곳입니다. 우리나라 남북한 합친 면적의 두 배 정도의 지역에 산재해 있으며 4,000여명의 성도들이 함께 주님을 경배하고 러시아에 있는 민족들을 섬기려는 준비가 되여 있습니다."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 조 익현 선교사 드림

도움의 손길을 주실 분들은 아래의 연락처를 참고바랍니다.

Cho Ik Hyeon
400081 Volgograd
str. Stepnaja 14
RUSSIA
Tel. 0017 8442 328916(한국에서)
Fax 0017 8442 329869
H.P 0017 905 482 1948
후원구좌 : 국민은행. 208601 - 04 - 037142

옮긴 후, 현지 러시아인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섬기면서 주의 종이 되기 원하는 성도들을 발굴하여 모스크바 은혜신학교에 보내어 교육을 받고 돌아온 후 교회개척을 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1년 10년 동안 사역을 하고 난후 체력이 약해지고, 현지 목회자를 지도 할 수 있는 한계에 부딪혀 2001년 말 모든 사역을 러시아 현지 선교사인 루징끼 알렉세이목사에게 넘겨주고, 안식을 취하기로 마음먹고 모든 사역을 정리하고 있었다. 2001년 3월 알렉세이 목사에게 하던 사역을 넘겨주고 독일에 가서 아이들과 안식할 준비를 하고, 파송처인 미국 로스앤젤레스 은혜한인교회 김광신 목사에게 허락까지 받았다. 49개의 크고 작은 교회들과 정든 사역자들을 두고 떠난다는 생각을 할 때,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고 한다. 평안을 찾기 위해 기도를 하는데, 이런 감동이 왔다고 한다. “고려인들의 영혼은 어찌하고 쉬려고 하는가?” ”하나님이 쉬지 않으시는데 네가 육신을 위해 쉬려고 하느냐?“ “고려인의 영혼은 어찌하고 육신의 평안함만을 위해 쉬려고 하느냐?”는 감동이 기도 할 때 마다 목사님의 심령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런 연후 자신과 볼고그라드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볼고그라드에는 한국선교사가 조익현 선교사와 UBF 두 가정이었는데 이후 UBF 가정은 사정이 있어 철수하여 조익현 선교사 가정만 남은 상태였다. 첫 번째 떠오르는 것은 1994년도에는 볼고그라드에 고려인들이 5,000여명 이었던 것이 2001년 3월 떠나려 할 당시에는 30,000명으로 늘었다는 사실, 원동에서 37년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 중 이런저런 이유로 그곳에서 정착하지 못해 떠돌다가 볼고그라드까지 온 것이다. 대부분 타지키스탄의 내전으로 인해 1991년 이후 이주한 고려인과 우즈벡에서 근간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로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므로 이주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러시아로 이주하는 고려인의 80%는 볼고그라드로 이주 했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아직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영세민이어서 삶에 쪼들렸다. 역사의 비극 속에 탄생한 고려인, 조익현 선교사는 아직도 정착 못하고 방황하는 그들이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분들은 마음에 한과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고, 3-4대를 거쳐 아직도 살 곳을 찾아 헤매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들은 겉은 고려인이나 속은 러시아 사람이면서 그들의 마음 저 밑에는 보이지 않은 눌림에 대한 반감이 도사리고 있어, 아무리 어려움 가운데 소망을 준다 해도, 러시아목사님이 사역하는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의 심정이 조익현 선교사에게 전달된 것이다. 두 번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1997년 50명 안팎으로 모이던 고려인교회를 러시아 제자에게 맡겼는데 2001년 안식을 떠나려고 보니 3명 남고 모두 러시아 사람으로 교체된 모습을 발견 했다고 한다. 세 째로 많은 외국 선교사가 오고 있지만 그들은 머리 노랗고 눈이 파란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들에게는 정을 주면서 유독 머리 까맣고 눈 꼬리가 살짝 위로 찢어진 험악한 인상의(이곳 사람들의 표현) 우리고려인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자연 고려인의 영혼은 같은 얼굴의 모습을 한 사람이 보살펴야 된다는 강한 책망의 감동을 느끼게 됐다. 이에 육신의 안식을 위해 독일 자녀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접었다. 그리고는 회개하고 다시 헌신하는 마음으로 고려인들의 영혼을 위해 머물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기도하면서 그때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사실 한 가지를 놓고 주님께 물어 보았다고 한다. “왜 중앙아세아에서 러시아로 오는 고려인들이 볼고그라드로 모여 듭니까? 러시아 내에서도 전쟁의 불안 속에 있는 체첸부근의 고려인들은 대개 볼고그라드로 옵니다. 왜 고려인들을 볼고그라드로 모이게 합니까?”였다. 하나님은 두 가지측면에서 깨달음을 주셨다고 한다. 한 가지는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때 러시아가 고려인들의 특수성을 활용하여 볼고그라드에서 무엇인가를 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과 또 한 가지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의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 목적은 첫째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넓고 넓은 러시아 땅 중에 볼고그라드에 몰려들게 하는 것은 바로 마지막 때에 선교하는 민족으로 택함 받은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지도록 하여, 고려인들을 통해 러시아 교회를 일으켜 세우라는 것, 그 후 “한국교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선교에 동참하게 해주세요!”라며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러시아 교회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고려인들을 주축으로 해서 볼가강과 돈강에 성령의 불, 사랑의 불, 부흥의 불을 불붙여서, 먼저 청년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그들과 함께 러시아 150여 민족들의 의식을 변화시켜, 러시아가 세계평화를 만들어 나가는데 앞 장 세우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카프카스 지역에 있는 180여 소수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카프카스를 넘어 러시아 언어권인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잔 구르지아에 복음을 전하면(2010년 초에 아르메니아에서 Tres Dias를 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있음), 그곳에는 아랍계 페르샤계 투르크계에 속한 수많은 민족들이 있으므로, 러시아 언어권인 그 세 나라에 성령의 불과 사랑의 불, 부흥의 불을 붙이자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각기 자기 민족이 있는 나라로 돌아갈 때, 이란, 이락, 터키, 레바논, 욜단, 시리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오만, 아랍에미레이트, 나가서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 까지도 복음을 들고 나가게 될 것으로 이 나라들에게 복음이 전파 될 때쯤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은 전파 될 것이고,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며, 그때 주님은 오시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한국교회가 고려인들을 통해 러시아교회의 방향을 바르게 인도할 때라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교회가 이런 일을 하도록 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러시아가 70년간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쳤던 사실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전 국민이 3일 금식기도를 하게 해달라는 것과 러시아가 10,000명의 선교사를 모슬렘 권에 파송, 한국과 중국 쪽에서 올 100만 명의 선교사에게 필요한 물질을 러시아를 통하여 쓰여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와 같이 회교권의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기독청소년 훈련원을 세우도록 감동을 주셨고, 기독청소년 훈련원은 훗날 기독교종합대학을 꿈꾸며 그 첫 단계로 기독청소년 농군학교 설립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많은 선교단체가 세운 신학교가 있으며, 그러기에 신학교는 차고 넘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신학교를 세우기보다는 기독청소년훈련원을 세워서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복음과 삶을 가르쳐 복된 사역에 임하고, 다양한 선교지에 보내는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복음과 떡을 들고 선교지에 가자는 것이다. 먼저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여 삶을 가르친 후, 진실된 복음을 전하자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기독 청소년 농군학교를 세우자는 것.(첫 선교지인 사할린 홈스크에 1992년에 기독교학교를 설립하였던 바 매주 2회 성경을 가르쳐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현재 사할린에서 최우수 사림학교로 자리 잡고 있으며, 졸업생은 러시아 각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는 간접선교로 큰일을 감당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기독교청소년농군학교를 세워 성공하면 어떤 보람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첫째 러시아 농업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러시아는 개혁이후 18년이 지난 지금 집단농장이 모두 해체되고, 농업정책을 어떻게 해서 바르게 세워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고 한다. 이에 한국의 친환경농업기술을 고려인들을 통해 보급시키고 소자본을 투자하여 시범농장을 운영함으로써 실증실험을 통한 친환경농업정책과 기술의 방향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이 일이 성공할 때 고려인들의 위치는 향상되며 한국은 러시아에 간접적으로 덕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계시면 보여 달라고 하는 러시아 관료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작은 나라, 소수의 힘없는 고려인들을 통해, 그들이 해결 하지 못하던 농업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어 복음을 전파할 영역을 넓히자는 것이다. 두 번째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복음의 불모지이면서 아직도 미전도 종족이 가장 많은 이슬람권에 대한 선교사역이다. 이슬람권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는 “믿습니다.”로 마구 부딪힐 것이 아니라 먼저 그들과 삶을 나누는 길을 선택하여 친구가 된 다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독청소년농군학교에서는 말씀과 영성훈련이 이루어지므로, 자연농업을 통해 사막에 농장을 세워 막대한 식량을 사들이는 아랍권에 스스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좋은 관계 속에 복음을 전하여 부딪침을 피하고 효과적인 전도를 하자는 것이다. 기독청소년농군학교의 설립목적과 훈련내용은 “기독청소년농군학교”를 참고하기 바란다. 한 가지 특별히 설명드릴 것은 왜 자연농업을 택했느냐 하는 점이다. 한마디로 자연농업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시키는 구체적인 행위이므로 자연농업은 기독청소년들 중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 농업을 하겠다는 사람들만 제대로 키우는 일이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드리자면 인간의 탐욕은 우리가 육신의 양식을 돈 버는 목적으로 삼고, 나아가 앞으로 무기로 삼는 시대가 돌아온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는 식량증산의 필요성으로 중농정책이 실시되었는데, 고도성장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단위 면적당 수량을 올리는 것만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농업기술이 전 농토를 뒤덮었다. 그로 인해 토양 속에 보물인 흙을 보살피지 못하여 미생물이나 작은 생물들을 죽이는 일을 해 왔다. 그로 인해 땅에는 화학 비료를 날로 더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고 그것은 땅을 더욱 황폐시키는 일이 되었다. 제초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 대량의 제초제를 투입한 것은 물론, 병충해 대책으로 엄청난 농약의 사용은 필연적이었다. 더욱 나쁜 것은 해마다 농약을 사용하는 양을 늘려야 한다는 것과 재배형태도 단작의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변하여 그 토지의 특성을 살려가며 균형잡힌 여러 품목을 기르는 윤작형태를 거슬렀다. 오로지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돈을 벌어들이는 작물의 선택적 재배로, 풍요하기만 했던 전과 답에서 개구리나 잠자리 미꾸라지 지렁이 등의 모습이 사라지고, 농업의 생산형태는 대자연의 순환체계가 단절되고 말았다. 병충해를 박멸하기 위해 대량의 농약이 사용되고 저항력이 점점 강해지는 균들과의 끊임없는 싸움에 말려들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농약은 나쁜 균도 죽이지만 유익한 박테리아도 동시에 죽이므로 토양 미생물의 활동이 둔화되고 토양 내의 양분의 분해가 약화되어 고가의 화학비료의 사용증가가 불가피하다. 지금 식량문제는 양의 족도 문제이지만 인체에 해로운 양식을 양산해서 유통시키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었다. 그래서 기독청소년농군학교에서는 자연농업을 택하게 되었다. 자연농업으로 토양 속에 토착미생물을 배양 살포하여 토양의 체질을 3년에 걸쳐 변화시키고 병충해는 천연녹즙으로 농약을 대신 사용할 때 3년 후에는 화학비료도 필요 없고 화학제품인 제초제와 농약도 필요 없는 농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때 우리들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식량과 채소, 고기를 생산하게 되는 것, 러시아에는 아직 광활한 농토가 있기에 이런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땅이 망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이때 전 세계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비전을 품고 나가야 하는 기독교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며 이런 농업기술로 먼저 자기가 있는 지역사회를 복음화하고 부름 받은 자들은 이스람권의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이다. 이스람권은 대개 석유가 많아 경제적 어려움이 없지만, 어느 나라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일차 산업인 농업이 흔들리면, 그 나라 경제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이슬람권에 이런 자연농업을 경영 할 수 있는 선교사를 파송하여 덕을 세우는 삶을 가르친 후 복음을 전하자는 것이다. 몰라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스람권도 하나님은 사랑하고 계신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눈물 흘리시는 주님의 심정을 안고 우리는 이슬람권으로 가야 한다. 복음과 함께 자연농업을 안고 먼저 좋은 먹거리를 효과적으로 생산하는 것을 가르치고 난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아프카니스탄 사태 같은 충돌은 피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 있다고 본다(그렇다고 아프카니스탄의 사태가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 일진데 그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 나가야 하며, 한번은 있었어야 할 일이라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우선은 볼고그라드시에서 70km 떨어진 볼가강가 베흐뉘 뽀그롬뉘(많이 파괴되었다는 뜻을 가진 이름임)에 250평방메타의 교회 겸 학교로 사용할 건물을 금년에 건축을 마쳤습니다.""자연농업에 대한 기술보급은 우리나라 자연농업 창시자요, 권위자인 조한규 장로님이 직접 2008년 5월에 방문하여 자연농업연찬을 진행했습니다. 고려인 중 2명이 2007년 한국괴산에 있는 자연농업생활학교에서 전 과정 실습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이 두분이 조한규장로님과 함께 자연농업을 가르칠 교사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체육이나 농업실습교사를 제외하고 다른 과목들은 현지에서 전문분야에 종사했던 은퇴자 분들 중 뜻을 같이하는 분을 모실 예정입니다.(이곳에는 여자는 50세 남자는 60세에 은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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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대성사 서산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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