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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목회지에서
교회통해 한국기독교 옛 모습 배워
2018년 01월 30일 (화) 18:00:29 김홍한 khhyhy@hanmail.net

1987년 8월, 충남 논산 은진면에 있는 출석교인 약 20명 정도 되는 농촌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비록 작은 교회이나 역사는 꽤 깊어서 당시 80년이 넘었으니 지금은 10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남은 자료가 하나도 없다. 교회역사를 살필만한 자료가 없는 것은 물론이요 모아놓은 주보도 없다. 쓰레기통에서 지난주 주보를 한 장 건졌을 뿐이었다.

   

그 교회는 역사가 깊은 만큼 쌓인 이야기도 꽤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들은 캐내야 한다. 그냥은 드러나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는 대부분 허물로 남기 때문이다. - 過去의 過자는 허물과자이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는다.

어느 날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무덤을 보았다. 비문을 보니 牧師 아무개의 무덤이다. 필시 교회와 관련이 있는 인물일 것이라 생각하고 교인들에게 물으니 대답이 어렵다. 집요하게 캐물었더니 조금씩 말문을 연다.

그 교회는 광산김씨 문중의 몇 사람이 주축이 되어 시작했다. 그 집안의 한사람이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 해방이 되어 돌아와서는 좌익 활동을 했다. 학력이 높다보니 책임 있는 지위에 있었다. 여기까지는 객관적인 정황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이야기가 복잡하다. 그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그가 돌아와서는 일정한 직업도 없이 떠돌았고 가정이 복잡했다는 것이다. 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회지 여인과 살림을 차리고 본부인을 구박했다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으니 좌익에 빠진 것이고 6·25전쟁 중 인민군 치하에서 많은 이들이 그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그는 후퇴했던 국군이 올라오자 예배당 마루 밑에서 숨어 지내다 붙들렸다.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둘러 싸여 죽창에 찔려 죽었다.

그를 옹호하는 말을 해줄만한 사람이 있긴 있었는데 말이 횡설수설이다. 자기에 관한 말만 하지 그 목사에 대한 말은 도통 하질 않는다. 당연히 그를 옹호해야 하는 가까운 친척이건만 그것 외에 다른 감정이 더 큰 것 같았다. 아마도 그에 대한 시기와 질투, 열등감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러한가 보다. 그의 말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전쟁 통에 그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전쟁의 상처라기보다는 좌우 이념대립의 상처가 그 교회에는 남아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패가 갈라져 있었다. 좌익 쪽에 섰던 이들은 감옥살이도 했고 기를 펴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았다. 그러던 것이 내가 그 교회에 부임하면서 그 사람들이 조금씩 기를 펴기 시작했다. 당시 30세도되지 않은 젊은 목회자가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편들어 주니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은 듯하다.

내가 그 교회에 부임한지 2년째인 1989년 여름, 대학생농촌봉사활동(농활)을 받아들였다. 당시 농활은 운동권학생들의 농촌봉사와 계몽을 겸한 활동이었다. 그들이 오면서 온 동네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면직원들이 총동원되어 감시체제에 들어갔다. 경찰들은 멀찍이서 감시했다. 동네에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빨갱이 전도사가 간첩들을 데리고 왔다.”라는 소문이다.

학생들이 봉사활동 하는 곳을 둘러보다가 거동이 불편한 老권사님 댁을 잠깐 들렀는데 나를 본 그가 울먹이며 말하기를 “전도사님, 붙들려 간줄 알았다”고 한다. 면직원이 와서 흉측한 이야기를 하고 갔기 때문이다. 그 노권사님 께는 옛 좌우익 대립의 악몽이 되살아 났음직 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간 면직원이 너무도 괘씸했다. 분기탱천하여 그길로 면사무소를 찾아갔다. 면사무소는 근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텅텅비어 있었다. 면직원들이 교회주변에 감시 차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난 모습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나의 모습에 면사무소에 남아있던 몇 안 되는 면직원들이 몹시 긴장을 한다. 면장은 자리에 없고 부면장과 대화를 나누는데 머리가 반백인 중늙은이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내가 오히려 민망하여 항의도 하지 못 하고 “잘 부탁한다.”는 말만 하고 나왔다.

그 교회를 통해서 생생한 한국기독교의 옛 모습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다양한 모습의 목회자들 이야기를 들었다. 두 달 만에 쫓겨난 욕쟁이 50대 여전도사님, 동네 총각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19세 어여쁜 처녀 전도사님, 아는 것은 무척 많은데(?)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듣는 이들을 몹시 안타깝게 했던 목사님, 목사님 내외분의 부부싸움 소리에 밤마다 잠을 설쳐야 했던 이야기, 예배당 건축을 위하여 선교비를 무이자로 대출해 준다고 하고는 떼어먹은 교단 어른 목사님의 선교비 횡령사건, 떠돌이 부흥사 소집사이야기, 생활비가 모자라서 성미도 모두 팔아 거의 모든 끼니를 국수와 수제비로 때운 목사님 이야기, 예배당 건축 부지를 헌납했는데 막상 건축을 하려 터를 닦는데 “누구 맘대로 이 땅에 예배당을 짓느냐”고 시침이 떼더라는 이야기 등등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 교회를 떠나기 전, 얄팍한 분량이지만 그 교회 역사를 나름대로 정리하여 먹지를 대고 타이핑하여 두 부를 만들었다. 한부는 한국교회사를 전공한 어느 교수님께 주고 하나는 교회에 남겨두고 나왔다. 지금 내 손에는 그것이 없다. 그것이 조금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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