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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대속 신앙의 함정(1)
2018년 03월 12일 (월) 16:23:50 조헌정 choshalom@gmail.com

3월 11일 하늘뜻펴기를 네 단락으로 나누었습니다.

- 첫째 단락 -

[대속 신앙의 함정]
민 21, 4-9; 엡 2:1-10; 요 3:14-21

오늘은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저는 매우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는 목사입니다. 이는 제가 예수의 말씀과 그 뜻을 따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진보가 무조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도 할아버지의 할머니께서 첫 신앙을 받아들인 이후 그러니까 따지면 5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매우 보수적인 신앙을 배우며 자라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 안에 소위 요즘 말하는 진보적인 신앙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제게 오늘 하늘뜻펴기 본문 말씀 선택권이 있었다면 오늘의 본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들은 개인 구원에 관련한 교리적인 말씀들로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보수 성향의 목사님들이 즐겨하는 성서구절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구절은 에베소서 2장의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입니다. 이를 보안하는 말씀으로 민수기와 요한복음의 두 본문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 예수살기 상임대표, 예수살기는 목사(교회목회자)와 평신도(생활목회자)가 함께 하는 전국 조직이다. 명칭 그대로 예수의 삶을 오늘의 현실에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모세의 영도아래 애굽을 탈출한 히브리 노예들은 광야 40년 생활로 들어갑니다. 곧장 걸어가면 며칠이면 통과할 시나이반도를 그 안에서 계속 돌고 돌아 40년을 머문다는 것을 문자로 이해하여서는 안됩니다. 히브리어로 ‘므드바르’(광야)라는 단어가 ‘신의 말씀 능력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뜻에서 말해주듯이 히브리 노예들이 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말씀으로 훈련받고 양육받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는 영적으로는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장소이지만, 육적으로는 문명의 혜택이 전연 없는 고난의 땅입니다. 그래 히브린인들은 광야에서 계속 불평을 합니다. 마실 물이 없다. 고기가 먹고 싶다. 야채가 먹고 싶다. 그러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반항을 합니다. 자유인으로서의 누리는 미래보다는 지금 당장의 육신의 1차적인 욕망 충족을 위해 노예생활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뱀과 성서 이야기]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태도는 매우 어리석게 보이지만, 어찌 보면 우리 또한 비슷한 태도를 가질 때가 많이 있지요? 미래가 새로움을 향한 희망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래는 보장되어 있지 않기에 불안합니다. 그래 불안한 미래를 향해 지금 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 보다는 현재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불평하는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하느님은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 심판을 합니다. 노예생활이 힘들고 괴로워 구해달라고 아우성을 쳐서 기껏 구원해 주었더니 먹는게 좀 부실하다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내가 신이라고 해도 화가 날 것입니다. 불뱀에 물려 죽음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자, 이제는 잘못했다고 빕니다. 모세가 야훼 하느님께 기도하자 하느님은 모세로 하여금 불뱀이 새겨진 지팡이를 만들어 이를 들어 올려 쳐다보는 사람은 모두 고침을 받게 합니다.

이 구절은 그냥 ‘아멘’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저는 답이 잘 나오지 않는 질문이 생깁니다. 우선 지팡이에 새기는 형상이 왜 뱀이냐 하는 것이지요? 창세기 2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에덴동산의 선악과 열매를 따먹도록 유혹한 동물이 바로 뱀입니다. 곧 사탄의 상징입니다. 불뱀으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이를 치유하게 하는 형상이 또 뱀이냐는 것입니다. 병주고 약주기인가요? 뱀이 아닌 다른 동물, 예를 들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의 형상을 만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십계명에서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해 놓고 뱀의 형상을 만들도록 했느냐는 것입니다. 차라리 열 번 절을 하면 낫게 한다든지 혹은 십계명의 말씀을 암송하게 한다든지 하는 치료법을 주는 것이 십계명에 어긋나지 않는 방식이지 않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꼭 형상을 만들어야만 치유가 가능했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18장을 보면 히즈기야왕 시절 나라 안에 우상 신들을 제거하는 신앙정화운동이 일어나는데, 이때 산당들과 아세라를 비롯한 신의 형상들을 없애는데, 이때 모세의 구리뱀을 부수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고 보면 이 광야 사건 이후 수백년동안 이 구리뱀이 유대인들에게 일종의 치료 우상이 되어 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군의관의 군장에 보면 한쪽에는 계급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지팡이를 휘감고 올라가는 두 마리의 뱀 형상이 새긴 견장을 달고 있습니다. 이는 미군들의 견장을 본딴 것인데, 신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우상숭배의 냄새가 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형상은 고대 그리스 신전을 비롯한 여러 민족의 신전에서 자주 발견되는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뱀은 고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바 인간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동시에 치유를 상징하는 일종의 우상 신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들었다는 이 구절은 종교사학적으로 말하면 유대교가 주위의 우상숭배 사상을 도입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른 것이었다면 히즈기야 왕 때 이를 제거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뱀의 지혜를 에덴동산에서의 뱀의 간교함으로 이해할 수는 없으니 저는 뱀의 중요한 특성인 허물벗기에 빗된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곧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는 진취성으로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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