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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에 대하여
하느님께 녹아드는 기도를 하자
2018년 03월 12일 (월) 16:29:24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호세아 5:15-6:6, 루가복음 18:9-14 (시편 51:1-2;16-19)

9 예수께서는 자기네만 옳은 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세리였다. 11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12 저는 일 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
13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14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루가 18:9-14)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14절)

기도하는 이의 마음자세를 가르치는 말씀을 대합니다.
기도하는 이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무한히 비워나가지요.
기도의 자리는 자기 의(義)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나아가 그 알량한 의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자리도 아닙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는
강도짓이나 간음을 하지 않았고,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며 십일조를 바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자기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셔야 한다고 윽박지르듯 기도합니다.
​꼿꼿이 서 있는 바리사이의 태도는 마치 하느님께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듯합니다.

기도는 대화이니 기도는 응답된다, 그래서 열심히 간구해야 한다는 말, 일견 올바른 신앙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기도는 자기 욕구를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나가는 자리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거룩한 영을 선물받기 위함이지(루가 11:13) 떼를 써서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이만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신성한 기도의 자리는 추잡한 거래의 자리로 타락하고 말지요.

나아가 그런 기도에는
하느님 자비가 들어갈 틈도, 하느님의 자유도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늘과의 거리감을 확인할 따름입니다.
자신을 진솔히 성찰하기보다 관행적으로 기도의 자리에 앉아 내가 늘 이렇게 기도시간을 내고 있으니 감사드리노라 짐짓 거룩한 척을 일삼는 이는 하느님의 진면목을 도무지 만날 수가 없습니다.
허상만 대할 뿐입니다.

반면 하느님을 뵐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한 세리는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에 부끄러이 의탁함으로써,
세상안목과는 반대로 하느님을 만나 의인으로 인정받고 돌아갔습니다.
호세아 예언서의 표현처럼
그에게는 내세울 번제물이 없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신의와 하느님을 아는 예지가 있었습니다(호세 6:6).

오늘 기도하는 나의 자세가 어떤지 새삼 살펴볼 일입니다.
자신은 어지간히 잘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목을 뻣뻣이 세우고 무언가를 얻으려고만 하는지
아니면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만 바라보는지, 하여 하느님께 녹아드는 기도를 하는지 말입니다.
부디 후자의 태도로 하느님을 만나는 신앙이길 바랍니다.
평화가 성큼 다가온 오늘 말입니다.

오늘 나의 기도가 그분께 온전히 녹아드는 일이 되길... 사진은 강화도 글라라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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