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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과 존중 담아 이름 불러야
진밭교 기도회(18. 4. 3)
2018년 04월 03일 (화) 09:48:59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요한 20:11-16 “마리아야, 라부니”

오늘은 4.3 70주년 되는 날이다. 70년 전 오늘 제주는 비극의 새벽이 열렸다. 국가공권력이 무장대를 토벌한다는 구실로 죄없는 양민 3만여 명을 학살한 사건이 시작한 날이다. <한겨레 21>이나 <시사인>이 70주년 특집으로 4.3 이야기를 했다. 거기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날 군경토벌대의 학살에 자기 부모, 남편, 형제가 어떻게 죽임 당했는지를 증언했다. 국가폭력이 횡행한 어느 시대든 불문하고 가장 아픈 생존자는 여성이다. 4.3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들은 말 그대로 시대의 비극을 온 몸으로 겪었다.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중산간 마을에 살았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4.3 광란의 바람에 휩쓸렸다. 그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일이지.” “자식들도 몰라야 할 일이지.” 4.3의 여성들은 자기 몸에 가해졌던 몸의 기억, 가족의 안위를 위해 받아들여야 했던 강제결혼 등, 누구에게 호소할 수 없는 성적유린을 당한 상처를 내면에 겹겹이 포갠 채 살아야 했다.

이들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 이들에게 희망은 무엇인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건 섣부를 뿐이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다만 70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전향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생존자들이 4.3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현상이 4.3이 무엇이냐는 정명작업을 본격적으로 하는 것이다. 정명을 통해 4.3이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공인받으면 그나마 4.3영령들과 생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면목이 서지 않을까.

오늘 복음말씀은 요한복음의 부활증언이다. 다른 복음서와 달리 요한복음에서 부활증언자는 단 한 사람, 막달라 마리아이다. 제국이 폭력으로 지배하는 어둠의 새벽을 뚫고 무덤에 오른 사람도 마리아 단독이고, 오늘 말씀처럼 부활주님 현현을 직접 대면한 사람도 마리아 홀로이다. 요한복음에서 부활목격자가 마리아라는 대목은 요한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를 푸는 한 시발점이다. 신학적으로 마리아라는 여성이 남성중심의 기존질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대안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어둠의 새벽을 동터오는 새벽으로 변화시킨 마리아의 가치는 부활의 전복성과 맞물려서 여러 가지 교훈을 시사한다.

특히 부활을 4.3의 여성과 연관지어 보자. 부활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사건이다. 그래야만 한다. 예수에게만 해당하는 사건이 아니다. 요한공동체도 예수 부활사건을 반추함으로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를 풀고자 했다. 그렇다면 이 땅에도 부활은 비극을 승화시키는 사건이어야 한다. 남녘땅은 일제 식민지살이가 겨우 끝났는데, 되레 민족이 분단된 채, 일제 식민지 36년보다 갑절이 넘는 세월동안 미국의 식민지살이를 하고 있다. 그 지배자 미국이 사주하여 참혹한 살상을 당한 제주의 4.3 희생자들에게는 부활이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는 일이다. 예수교인들이 예수의 부활에서 신앙의 정당성을 갖듯이 4.3 희생자들에게, 이름없는 백비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는 일이다.

제대로 이름붙이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부활사건도 제대로 이름을 붙임으로 결정적으로 실질적 사건이 됐다. 오늘 복음말씀을 보면, 마리아는 끝까지 무덤가에 머문다. 별 볼일 없다고 판단하고 자기들 처소로 돌아가버린 남성제자들과 대조된다. 그 덕에 마리아는 무덤 안에서 좀 전까지 보이지 않던 천사도 보고, 바로 이어서 부활예수의 현현을 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리아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동산지기인줄 착각한다. 그 때 예수는 “마리아야” 하고 부른다. 예수의 다정한 부름은 마리아의 지각을 깨웠다. 제국의 폭력과 가까운 이들의 배신에 가눌 길이 없던 마리아도 부활했다. 그리고 화답했다. “라부니여” 라고. 이렇게 그들은 평소 부르던 말투를 주고받음으로 제대로 알아보았다. 진정한 관계에 들어갔다. 마리아가 인지함으로 이제 부활은 공식화되었다. 이렇게 부활이 실효성을 얻은 직접 계기는 제대로 이름을 부른 데 있다.

우리도 참 사람관계를 원한다면, 애정과 존중을 담아 이름을 불러야 한다. 무엇보다 제주 4.3이 7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생존자들의 열망대로 희생자들이 역사에서 되살아나는 정명이 돼야 한다. 사드철회투쟁을 하는 우리도 우리가 수없이 외치는 구호들이 정명이 되고 현실이 되도록 오늘 하루도 역사의 증언자 심정으로 임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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