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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다른 길을 묻는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에세이
2018년 05월 08일 (화) 09:18:46 조희선 heesun821@hanmail.net

<모두를 위한 다른 길을 묻는다>/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보편복지에 대해 쓴 영화(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세이 입니다.

한여름 뜨거운 볓을 피해 모텔 벽에 두 아이 무니와 친구 스쿠티가 앉아 있다. 지루해 보이지만 잠시다. 아이들은 어느새 놀잇감을 찾아냈다. 근처모텔에 사는 글로디아의 새 차에 침 뱉기다. 깔깔거리며 웃다가 급기야 글로디아의 눈에 띠고말았다. 무니집으로 달려가 숨는다. 글로디아와 무니의 엄마 핼리의 거친 설전이 시작된다. 어린아이 어른 할 것없이 싸구려 모텔에 사는 밑바닥 인생들의 말과 행동들 모두가 보기에 거북하다. 불온하다. 그러나 교양없고 세련되지 않은, 투박한 그들의 언어가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냈다. 헬리와 무니, 스쿠티에 글로디아의 손녀 글로디아까지 합세해 룰루랄라~ 침으로 더렵혀진 차를 닦는다. 그야말로 버젓이 할 수 있는 진짜 놀이가 되었다. 뿐만 아니다. 핼리와 글로디아는 이웃이 되고, 무니에게 새친구 하나가 더 생겼다. 무니, 스쿠티, 젠시, 세 악동들이 탄생했다. 둘보다 셋이 보기 좋다. 모텔 관리인 바니의 말대로 보통때는 좋은 아이들이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초반 줄거리다.

   

나는 악동들에게서 '불온'이란 딱지를 떼기로 했다. 대신 그들과 작은 모험을 즐기기로 했다. 악동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을 살 돈이 없으면 아이스크림을 사는 어른들에게 잔돈을 부탁한다. 나는 '얼쑤' 마음 속으로 추임새를 놓는다. 한개의 아이스크림이면 족하다. 셋이서 돌려가며 빨아먹는다. 얻어먹는 주제라면 마땅히(?)가져야 할 비굴함'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 '가버려'라고 소리치면, '우리들도 손님이예요' 하고 답한다.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분명 값을 치렀으니 당연하다.

세 악동들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몸으로살아내고 있다. 구지 말하자면 분배정의와 차별없는 인권의 삶이랄까!

자신들이 묵고 있는 싸구려 모텔의 구석구석을 놀이터로 만들어버린다. 풀밭에 소 몇마리만 있어도 아이들에게는 사파리가 된다. 무니와 스쿠티 젠시가 함께 있으면 얼마든지 신나게 놀 수있다. 쓰러져 .있는 고목나무조차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선생이 된다.

'쓰러져서도 계속 자라'기에 멋지다. 쓰러져서도 자라는 고목나무는 자신들이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엄마와 할머니일 것이다. 동시에 무지개와 같은 희망이다. 착한 천사가 그 희망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잘 차려진 식탁을 맛보며 인생다운 인생을 기대해보기도 한다.

무엇이 아이들에게 이런 지혜를 주었을까! 가난이다. 가난은 때로 기회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하다. 그래서 반드시 끝나야 한다. 무니와 핼리는 이미 충분히 위험하다.  

그저 불장난을 했을 뿐인데 큰 불을 내었다. 방화범이 되었다. 그 일을 알아버린 애슐리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핼리와 의논하는 대신, 아들 스쿠티만을 보호하기 위해 핼리와 무니를 버리기로 했다. 핼리와 무니는 애슐리와 스쿠티를 잃었고 애슐리와 스쿠티 역시 친구를 잃었다. 그들 모두가 웃음을 잃었다. 핼리와 무니에게는 애슐리가 제공하던 저녁식사, 와플마저도 끊어졌다. 고립되었다. 딸과의 생존을 위해 핼리가 몸을 팔기 시작했다.

딸 무니와 화장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성매매를 했다. 곧 무니에게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누구나 알 수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 무니 앞에서 만큼은 웃음을 잃지 않는 핼리가 눈물겹게 대견할 정도다. 그러나 그런 핼리와 무니 앞에 가혹한 결정이 내려졌다. 이웃의 성매매 신고에서 아동국의 신속한 출현과 무니의 위탁가정 입양결정까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수혜자인 주제(?)라서, 게다가 성매매나 하는 매우 불온한(?) 여자라서 선택권이 없는 핼리는 분노하지만 할 수있는 일이 없다. 강제집행이다. 무니는 강하게 거부하며 친구 손을 붙잡고 디즈니랜드로 달아난다.

핼리가 그토록 도움을 청할 때 거절하던 당국은 마치 신고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어째서 이리도 일사천리로 움직이는가? 핼리와 무니를 철저히 배제한 결정은 타당한가?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이으며 수많은 핼리들와 무니들을 떠올린다.

가난이 없던 역사도 사회도 없다. 성, 피부색깔, 인종과 소유, 출신성분 등 다양한 차별 기준에 따라 늘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더 착취를 당하곤 했다. 우리 중 누구도 그 가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언제라도 우리 자신이 곧 핼리와 무니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갑작스런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으로는

1987년 IMF 로 많은 중산층이 몰락했다. 잘 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었던 시절이다
그 이전, 더 가난했던 시절, 서울로 상경한 수많은 시골 누나, 순이들은 공장으로 술집으로 전전하며 가족들을 책임져야했다. 난장이들이 된 그들이 공을 쏘아올려봤자, 돌아오는 것은 더 가혹한 노동과 폭력 등이었다.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태움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은 난장이들의 피눈물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지금도 2016년 기준으로 32퍼센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특히 10ㆍ 20 대, 50ㆍ60 대에서는 45퍼센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해하며, 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의 54퍼센트 정도의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앞으로도 기술발전으로 고용없는 성장만이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될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실직으로부터 안전할 수없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정책들을 내어놓지만 자동화된 시스템이 우리 일자리를 대신하는 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이대로라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재적으로 핼리와 무니다. 우리가 핼리 혹은 무니가 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조금더 가진 이들의 욕구와 필요를 채워주며 성이나 장기를 팔아야 한다면, 그때 그 책임을 몸밖에 가진 것 없어 몸을 판 핼리들에게만 책임을 지게 할 것인가? 불공평하고 불의하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다만 핼리와 무니를 위해서 뿐 아니라 수많은, 잠재적인 핼리와 무니인 우리 모두를 위해 다른 길을 묻게 한다.

고용이 축소되는 어쩔 수없는 현실에서, 노동시간 축소로 일자리를 나누는 것, 생존권을 위한 기본소득 등... 머리 속을 뱅뱅 도는 생각들이다.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보편복지! 어떤 이들이 붙인 '불온'이란 딱지를 떼어내면 어떻게 될까!
어렵게 힘든 삶을 이어가는 이들을 보면 미안하고 불편하다. 잘못된 분배구조 안에서 내가 부당하게 많은 것을 가짐으로써 그들의 것을 본의 아니게 이미 착취한 자로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마음이다. 만일 기본소득, 청년수당이나 시민배당 제도가 현실화될 수 있다면, 그런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두 딸과 사랑스런 손주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마음이 놓일 것같다. 선택복지를 한다면서 새어나가는 눈먼 돈들과, 어마어마한 방산비리로 사라져버리는 비용으로 족하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감격스럽게도 역사적인 4월 27일 남북 두 정상간의 만남은 남북간 평화에 대한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남북간의 군사적 정치적 평화가 이루어질 때, 이제까지의 전쟁비용이  평화비용으로 전환된다면 그로 인해 절약되는 비용은 기대할 수 있는 예산일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보다 모든 국민 개개인의 동등한 인격과 살아갈 권리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다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물며 일을 하고 싶어도 불러주는 데가 없어 본의 아니게 놀 수밖에 없는 일군들을 포도원으로 불러들여 하루를 살 수 있도록 한 데나리온씩을 골고루 나눠준 포도원 주인의 뜻을 전하고 있는 성경을 소유한 교회가 이리도 많은 우리나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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