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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지프스를 떠올리며
「양준호의 모던시 읽기」중간 점검
2018년 05월 12일 (토) 10:25:32 양준호 shpt3023@daum.net

2017년 9월에 새마갈노에 연재된 「양준호의 모던시 읽기가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격려로 그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처음엔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 필자는 올해 고희를 맞았고 문단에 데뷔한지도 1980.6(초회), 1981.3(천료)로「시문학」지로 데뷔한 중견이라면 중견 시인이다. 이에 중간 점검을 하는 의미로 간단한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아시다시피 이 연재는 「詩人」이라는 제목으로 詩人의 삶[양준호의]과 詩를 본질적으로 탐색해 가는 작업이었다. 시단의 일각에서는 무슨[뜻,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난리였다. 허나 류기봉 시인과도 얘기를 나누었지만 詩人[일부 수필가도 포함] 중 한국 시인의 80~90%는 고정관념에 빠져 현대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차라리 詩를 쓰지 않는 고급독자[인텔리]들이 [새마갈노의 독자는 이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 반응이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더 詩를 아끼고[애정을 가지고] 이해, 사랑해 주지 않은가. 문득 눈물이 난다. \

에피소드·1

가령 양준호의 이름 앞에 天才라는 말을 붙여 보자. 일부 詩人들은 그렇게 부른다.
이는 내 어머니가 고교시절에[어머니는 장민희張玟姬여사였고 20代때부터 65세 정년까지 주로 경남 지방에서 교사로 나중 교장으로 정년을 맞았다. 어머니는 2007년 11월에 돌아가셨다] 나를 보고 ‘너는 천재다’라고 말씀하셨다.

에피소드·2

무척 조심스럽지만 나는 1981년 어느 날 아마도 가을이었다. 미당 선생 댁을 오진현 시인[필명 남구]과 찾게 된다. 그 자리에서 무슨 인연에서인지 詩의 엑기스를 전수 받았고 [오진현(남구)의 말→자기는 명절마다 사과박스를 들고 선생 댁을 찾았으나 어쩌다 간 양준호에게 다 가르쳐주고 갔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것은 약 2시간 반의 집중 설파였다. 내 詩에서 미당 풍을 엿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오직 詩로서만 보라.

에피소드·3

무척 조심스럽지만 동아대 국문과엔 1970년도 조향 선생의 제자[조향 선생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구연식 교수가 있었고 나는 그로부터 현대시[문학]의 이론을 수혈받았다. 그는 무척 나를 아꼈고 그가 하는 강의는 늘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72년 상경하여 누군가가 ‘양형 우리 조향 선생을 만나러 가지 않을래요’[누군가는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했으나 내가 ‘다음에 보자’해서 만날 기회를 잃었다. 조향 선생을 떠올리면 그의 제자들 소한진, 송상욱, 김석, 최휘웅 시인이 생각난다.

에피소드·4

류기봉 시인과 만난 지는 그의 군 입대 시절을 제외하고 80년대초였다. 그는 그때부터 남양주에서 포도농사를 지었고 왕복 4시간 거리를 줄기차게 왕래했다. 지금까지도 만남은 이어진다. 당시 봉천동엔 지근거리에 오진현 시인도 있었다. 그와 나는 개인적 스터디를 많이 했는데 詩가 쌓여가자 그는 春洙 선생 댁도 왕래했다. 그는 참 소박하고 흙같은 소탈한 시인이었다.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그가 농부시인이 아닌 시인 류기봉으로 우뚝 설 날도 머지 않았다. 그를 얘기하다보니 심언주시인이 생각난다. 그녀가 두 번째 시집과 더불어 보낸 편지 문구에 ‘자기가 시인이 된 것도 시집을 내게 된 것도 다 선생님 덕분’이라고 했던가.
모두 시에 열중했던 한 시절의 편린이다.

글이 너무 길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새마갈노에 연재하고 있는 「詩人」연작은 바다가 주무대이다.
그 바다도 색깔을 달리하고 [분홍빛에 유념하라] 페이소스에 젖은 바다를 어머니와의 추억과 아마릴리스 등의 꽃과 분홍으로 치장한 흰긴수염고래 등 물고기와 자주호반새 등의 새와 노루 등 짐승들의 환상이 어우러진 현대적인 상황시라고 볼 수 있다.

이상「양준호의 모던시 읽기」중간 점검에 붙여 몇 자 적어 보았다. 이 글이 사견에 치우친 감도 있으나 강호제현의 기탄없는 절정을 구하며 이만 줄인다.

2018년 5월 11일
관악산 기슭의 청와재에서

   
▲ 글쓴이 양준호님은 1981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기지촌의 수족관」 「강물속의 해바라기」 「정오의 詩」 「이제사 나는 푸른잠자리의 눈빛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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