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논평 환경/기술 지역/농업 전통/문화 미디어/사람 정보/게시판
  편집: 2018.9.21 금 16:21
> 뉴스 > 시사/논평 > 칼럼 | 양재성의 예수살기
     
평화를 부르는 예언자
편리한 삶 보다 하나님 뜻 구하는 자
2018년 06월 10일 (일) 21:23:30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평화를 부르는 예언자
고린도후서 4장 13~18절, 마가복음 3장 20~35

▪ 6.15 남북공동선언
오늘은 18년 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이 만나 합의한 6.15 공동선언 기념 주일입니다. 예수살기는 매년 6월 15일 직전 주일을 6.15 공동선언 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올 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와 흥분 속에서 기념 주일을 맞았습니다. 통일을 염원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거룩한 뜻이 모아져서 만들어가는 평화이기에 더욱 소중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정의로운 평화가 함께 하고 계십니다. 바라기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종전이 선언되고 상호 북가침조약이 체결되어 평화협정으로 나아가고 북미수교까지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오늘은 아울러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폭발된 6.10항쟁 31주년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연세대에서 시작된 이한열 열사의 장례는 시청 광장에 이르러 100만 인파를 거리로 불러냈고 모든 건물에서 응원을 보냈고 택시와 버스의 경적이 울렸습니다. 결국 6월 29일 노태우는 항복 선언을 함으로 대통령 간선제를 다시 직선제로 바꾼다고 약속했습니다.

▪ 겉사람과 속사람
오늘 성서일과 중 고린도후서의 말씀은 겉사람과 속사람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육신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구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영의 사람, 속사람은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줌을 알기에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며 존재의 신비를 알아보기에 자본과 세상 권력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힘과 자본의 논리가 아닌 생명의 논리로 진실의 논리로 판단하고 살아가기에 그들의 삶에선 하늘 냄새가 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바보라고 어리석은 자라고도 말합니다.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가느냐고 한마디 합니다. 열심히 일하여 번 돈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기꺼이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고 자신의 편리한 삶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후대하시고 당신의 예언자로 세우십니다.

▪ 철조망 위를 걸어오신 예수
시인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문익환 목사 10주기 추모식에서 <철조망 위를 걸어오신 예수>를 지어 낭독하였습니다.

새벽 네 시에 물 위를 걸어오시던 그분처럼
캄캄한 한 시대의 새벽 철조망 위를 걸어오신 분
모두들 놀라 소리치며 불안과 두려움과 낡은 인습의
돌멩이를 던지고 의심하며 돌아설 때
겁낼 것 없다 두려워 말라 하시던 분
분단의 철조망을 넘으며 찢기고 피 흘린 채
다섯 번 열 번 감옥에 갇히기를 주저하지 않던 분
남북을 가로막은 거대한 성곽의 돌 하나를 빼내고
그리로 걸어갔다 오신 분 그 돌 하나가
성 전체를 무너지게 할 것임을 예언하시던 분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가시철조망을 면류관처럼 쓰고 냉전의 채찍에 맞아
피 철철 흘리며 참혹한 시대의 언덕을 넘어가신 분
그분은 지금 어느 땅 어느 하늘 아래 계시는가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던
쩌렁쩌렁한 그 목소리 지금 어느 광야를 떠돌고 있는가
개마고원 원산 앞 바다 재령 벌판에도 된바람 부는 밤
나는 따뜻한 아랫목만 찾고 있지는 않는가
그분이 차이와 차별을 넘어 하나되는 인간애 동포애로
형제들을 감싸안았던 것처럼 우리도 옷을 벗어
추운 그들의 어깨를 덮어 주고 있는가
낮아지고 낮아져 더불어 평등하게 살려하고 있는가

그간 우린 통일을 참으로 원했던가요? 우린 이 시에서 통일을 위해 온 몸을 바치며 이 땅을 살아간 거룩한 인간을 만나게 됩니다. 문익환 목사입니다. 그는 1918년 6월 1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납니다. 올 해로 그의 탄신 100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분과 한 시절 같은 공간에서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문 목사가 감옥에서 지었다는 히브리 민중사는 저에게도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문 목사는 한 인간이 얼마나 거룩하게 살 수 있는 지를 보여준 예언자요 시인입니다.

1989년 1월 첫날, 문익환 목사는 정말 잠꼬대 같은 시를 하나 지어 발표합니다.

잠꼬대 아닌 잠꼬대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 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마음이었거든
한마음
그래 그 한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사십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 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 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이 시를 발표한 지 석 달이 지난 1989년 3월 25일, 문익환 목사는 북한을 방문하여 분단 후 처음으로 김일성주석과 감동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둘이 만나자마다 뜨겁게 포옹하는 장면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둘은 두 차례에 걸쳐 회담을 가졌습니다. 아울러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허담 위원장과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자주적 평화통일과 관련된 원칙적 문제 9개 항'에 대한 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것이 훗날 김대중과 김정일 간에 맺어진 '6.15선언'의 토대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 1989년 4.2남북공동선언
1. 쌍방은 상치되는 이해와 주장을 넘어 7.4남북공동성명에서 확인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하여 통일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확인한다.
2. 쌍방은 어떠한 경우에도 분열의 지속을 목적으로 하는 두개 한국 정책을 반대하고 끊임없이 하나의 민족 그리고 통일된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3. 쌍방은 정치군사회담을 추진시켜 남북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동시에 이산가족문제와 다방면에 걸친 교류와 접촉을 실현하도록 적극 노력한다.
4. 쌍방은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연방제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 할 통일방도임을 확인한다.
5. 쌍방은 합동군사연습은 남북대화와 평화 및 통일의 성취와는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6. 문익환 목사는 교차승인 , 교차접촉에 대한 북의 거부적 입장과 통일의지를 확인하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문익환 목사가 주장하는 남북교류와 점진적 연방제 통일제안이 두개 한국 을 지향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7. 쌍방은 우리 민족이 굳게 단결해야 할 필요성과 그 절박성을 통감하면서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 있는 사람은 힘을 내며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어 나라의 통일위업 실현에 적극 이바지할 데 대한 공동의 염원을 표시하였다.
8. 조국평화통일위원회측은 전민련의 범민족대회소집제안을 지지하고 문익환 목사는 제13차 세계청년학생 평양축전에 참가하려는 남한청년학생들을 지지하며 쌍방은 그 실현을 위하여 계속 인내성 있게 노력한다.
9. 쌍방은 이상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합의가 금후 남북사이의 다각적인 공식대화에서 협의의 기초가 될 수 있고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 실천대책을 남북당국과 제 정당, 단체들에 건의한다.

문 목사가 방북한 89년은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개방정책을 추진하였고 독일이 통독을 위해 길을 내딛는 시기였으며 세계적인 냉전체제에 균열이 일어난 시기였고, 통일운동의 대중적 지평을 넓혀 ‘민民 주도’의 실질적 통일을 추구해야 할 시기였습니다. 문 목사는 실제로 범민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민의 운동을 광범위하게 실천하고 이를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새로운 통일운동 단체를 제안했고, 감옥에서 나와 ‘통일맞이 7천만겨레운동’을 제창했습니다.

▪ 꿈을 비는 마음
문익환 목사는 그의 시 '꿈을 비는 마음'에서 그의 삶이 이미 목숨을 바친 자들을 대신하여 사는 대속적 삶임을 천명하고 그 삶의 목표가 통일임을 선언합니다. 그는 시인이었습니다.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중략)

이런 꿈은 어떻겠오?
철들고 셈들었다는 것들은 다 죽고
동남동녀들만 남았다가
쌍쌍이 그 앞에 가서 화촉을 올리고
그 박달나무 아래서 뜨겁게들 사랑하는 꿈,
그리고는 동해바다에서 치솟는 용이 품에 와서 안기는 태몽을 얻어
딸을 낳고
아침 햇살을 타고 날아오는
황금빛 수리에 덮치는 꿈을 꾸고
아들을 낳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그도 아니면
이런 꿈은 어떻겠오?
그 무덤 앞에서 샘이 솟아
서해 바다로 서해 바다로 흐르면서
휴전선 원시림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
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
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노는 꿈,
새가 되어 신나게 하늘을 나는 꿈,
물고기가 되어 펄떡펄떡 뛰며 강과 바다를 누비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 문익환 목사
문익환 목사는 북간도에서 태어나서 초․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21세 때 일본신학교에 유학합니다. 동경 시절 알게 된 전도사 박용길과 1944년에 결혼하고, 만주 신경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1946년에 월남하여 이듬해에 30세의 나이로 한신대를 졸업하면서 목사 안수를 받습니다. 그리고 1949년에 다시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 유학했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33세의 나이로 유엔군에 지원해 통역자로서 정전 회담에 참여합니다. 그의 신분적 정체성이 최종 확정되는 것은 1955년, 미국에서 돌아와 한신대․ 연세대에서 구약학을 강의하면서, 그리고 한빛교회 목사가 되면서였습니다. 그 후 1968년부터 신․구교 공동 성서번역의 책임위원으로 매진하고, 1976년에 ‘3․1 민주구국선언’에 연루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집니다. 이때가 바로 59세. 그는 원로의 나이였지만 재야운동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내어 77세에 별세하기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12년간의 옥살이를 하는 수난의 삶을 삽니다. 그 기념비의 하나로서 ‘방북’은 통일운동의 최고 업적이 되어 후에 남북 양측의 극적인 공감대로 사용되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는 그의 시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에서 거대한 벽 앞에 선 노동자들의 위태한 삶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분단은 이렇게 독재를 살찌우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유린하고 착취하였고 자유를 짓밟았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야금야금 갈아 먹었습니다.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나는 어제 저녁 정말 무서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어려서 할아버지에게서 이야기를 듣던
에비 장군보다도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을사년 흉년 때 어머니의 외할머니를 물어간
백두산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눈물 많은 여자였습니다
어린애가 둘이나 딸린 젊은 여자였습니다
남편은 유리조각에 다리가 찢겨 기부스라는 걸 한 채
병원에서 까막소라는 데 끌려가 있답니다
날마다 공장이라는 데 나가 일을 해야 하는 몸이라서
아이 하나는 친정에 보냈고 하나는 시댁에 맡겨 놓았답니다
이 여인은 돌아갈 집마저 박살나 버린 셈입니다
밤이면 돌아가서 썰렁한 방에서
쿨쩍쿨쩍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잠드는 곳을 집이라고 할 수야 없지요
난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어요
그 여자는 별로 악을 쓰지도 않고 이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호소하는 투도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껌껌한 동굴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같았습니다
약간 몸서리가 쳐지는 소리였습니다
그 여자는 오늘도 내일도 공장에 가서
백안시당하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시댁에 맡겨 둔 두살박이 생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친정에 갖다 둔 다섯 살짜리 장난꾸러기 생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기부스가 얼어들어오면 얼마나 추울까
혼자선 변소 출입도 못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는 눈 깜빡할 사이에
손이 짤려나갈지도 모르니까요
이렇게 그 여자는 반 발자욱도 뒤로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아니 반의 반 발자욱도 뒤로 물러설 자리도 틈도
세상은 그 여자에게 주지 않습니다
반의 반의 반의 반 발자욱이라도 물러서는 순간
그 여자의 앞에 맞서 있는 열 키도 넘는 절벽이 무너지겠기 때문입니다
그리되면 순이도 진이도 애기 아빠도 무너지는 절벽에 묻히고 맙니다
그 절벽이 가슴에 섬찟 와 닿는
칼날이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칼 끝이 가슴을 파고 들어도
한 걸음이나마 앞으로 내디딜 수 있을 테니까요
앞으로 꼬꾸라지며 피를 쏟고 죽을 수라도 있을 테니까요
그 절벽이 한 백리쯤 뻗어 있는
가시밭이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온 몸이 찢겨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여나문 자쯤이야 헤치고 나가다가
쓰러질 수라도 있을 테니까요
그 절벽이 불길이라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그 불길에 몸을 던져 순이를 부르며 진이를 부르며
훨훨 타오를 수라도 있을 테니까요
그 여자는 반 발자욱도 내디딜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뒤로 물러설 자리가 없다고 했을 뿐입니다

문익환 목사는 죽마고우인 윤동주 시인을 존중하였습니다. 둘의 관계는 각별하였습니다. 그들은 한 교회를 다니며 신앙과 문학으로 우정을 맺었습니다. 문 목사는 친구이지만 윤동주 시인을 존경하였습니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이 규슈 감옥에서 일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고 몇 날을 슬픔과 분노 속에 살았습니다. 문익환 목사는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란 시를 유독 좋아했습니다. 문 목사는 예수의 삶에서 대속적 죽음을 보았고 윤동주의 삶을 자신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과 74년 인혁당 사건은 그로 하여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 다음해 박정희 독재 정권에 의한 장준하 선생의 죽음은 그를 시대의 예언자로 현장으로 거리로 끌어냈습니다. 그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가신 예수를 따라 윤동주, 전태일, 장준하, 박종철, 이한열, 김세진... 민주노동통일열사들의 삶을 대신하여 현장에 투입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십자가 /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십자가(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鐘)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幸福)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초대하기
마가가 전하는 복음서가 증언합니다. 거룩한 공동체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내부 분열을 책동하여 세속에 무릎을 꿇게 하는 거짓 세력이 있습니다. 이를 찾아 박멸하고 단결하지 않고서는 평화는 불가능합니다.

한반도의 분단을 책동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미국입니까? 맞습니다. 일본입니까? 맞습니다. 소련입니까? 맞습니다. 중국입니까? 맞습니다. 또 한 그룹이 우리 내부에 깊숙이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외신들 앞에서 북미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수구보수집단입니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수구보수집단의 중심부에 수구 개신교회가 있습니다. 그 배후에서 분단을 고착화하는 어두움의 세력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적인 방식으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성령은 혈육의 울타리를 넘어서게 합니다. 진정한 신도 공동체를 구성하게 합니다. “누가 어머니요 형제자매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어머니”라고 선언한 예수의 말씀은 놀랍습니다. 이미 예수는 혈연을 넘어 새로운 신앙공동체로 들어갔습니다.

70년이 넘도록 한 왕조를 이어온 북한의 세습 독제정권 김정은 위원장, 당선되자마 미국의 민주주의는 끝났다며 한탄의 대상인 트럼프 대통령, 자국의 이익을 위해 나서는 길이지만 이 두 사람의 어깨에 한반도의 평화도 인류의 미래도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들을 사용하여 당신의 평화를 세워가고 계십니다. 그 역사적인 변곡점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놀라운 일입니다. 시간이 흘러 역사를 뒤 집어 볼 때 지금 이 시대가 얼마나 은총의 때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적인 상황에서 우리를 평화의 예언자로 부르십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길을 나섭시다. 아멘.

양재성의 다른기사 보기  
ⓒ 새마갈노(http://www.eswn.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교회 꿈꾼다
아버지의 마중
울어라 꽃아
풍요를 너머 쓰고 버리는 시대
잠깐 가실까요
경건, 행동하는 신앙
환경문제는 곧 평화의 문제 !
민주주의 한 걸음 나아갔다
아버지와 기독교의 인연
다 네가 먹은 것이다
인류, '호모 데우스'를 꿈꾸다
<유전자 정치와 호모 데우스>는 1부 맞춤아기와 유전자 편집 ...
로컬미식라이프, '배려의 식탁' ...
노동자의 이름으로
한국교회 지붕 햇빛발전소 설치를 ...
9월 3일(월) 오후2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교...
신재생에너지로 90% 전력공급 가...
독자 설계 잠수함 건조
포천 평화나무농장 생명역동농업 산...
온생명살림 기행팀과 함께 평화나무 농장을 방문한 내용을 정리하...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
'호국대성사 서산대제'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384-19, 성도빌딩 5층 | 전화 : 02-747-3191 | 편집인 010-8413-1415 | 제호 : 새마갈노
등록번호 : 서울 아03061 | 등록일 2014.03.24 | 발행인 : 양재성 | 편집인 : 류기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류기석
Copyright 2009 새마갈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