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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정치
권력 기득권 돼서 민주주의 독단과 억압 안돼
2018년 07월 04일 (수) 11:38:01 고세훈 dasanforum@naver.com

추리소설의 매력은 삶의 잔혹함 앞과 뒤에 버티고 있는 인간에 먼저 주목하여, 그(녀)의 탐욕, 위선, 어리석음 등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한때는 코난 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를 좋아했고, 존 그리셤의 다음 작품을 고대하는 열성 독자이기도 했다. 법정소설이 지루해질 즈음은 북유럽작가들을 접하면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3부작과 요 네스뵈의 길고 긴 소설들에 밤새워 빠져들었다. 그러나 장르소설이 대체로 그렇듯이, 장편으로 갈수록 왕왕 플롯이 스토리를 촘촘히 받쳐주지 못해, 저자가 겪었을 법한 고충이 독자인 내게도 고스란히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리하여 언제부턴가는 G.K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Father Brown)나 크리스티의 마플 할머니(Miss Marple)가 해결사로 나서는 짤막한 소설들에 더 마음이 쏠린다.

실제로 탐정 프와로로 우리에게 친숙한 크리스티는, “자신의 재능을 보이기 위해 책 한 권을 필요로 하는 프와로”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안목으로 단시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마플을 더 사랑하노라 고백한다. 그녀는 미스 마플에 대한 기대와 애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놀라거나 흥분하는 일이 없는 선량한 독신노인 마플은 평생을 시골마을에 살며 인간 사악함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배웠고, 그런 지식을 활용해 사건을 해결한다. 그녀는 작은 마을의 일상이란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보지만, 그 마을을 완전히 파악함으로써 세상 전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문제

마플은 인간의 속성을 훤히 알고 집요하게 달려들어 기어이 파멸을 보고야 마는 사탄의 계략을 남보다 먼저 간파한 인물일지 모른다. 인간실존의 정곡을 짚는-때론 사람의 입을 빌려-사탄의 ‘명언’들은 넘쳐난다. 가령 구약의 욥기에서 “네 시작은 미약하되 끝은 창대하다”고 속삭이거나 “불꽃이 위로 치솟듯 인생은 고난을 위해 태어난다”고 명쾌하게 삶의 실상을 정리해 준 이는 의인 욥이 아니라 신의 질책을 받은 그의 친구들이었고,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푸르른 것은 오직 인생의 황금나무뿐”이라며 너스레를 떨거나, “교회의 위장은 튼튼해서 온 나라를 집어삼켜도 결코 탈 나는 법이 없다”며 정색하던 이는, 세상 학문을 통달했다는 파우스트를 농락하던 메피스토텔레스였다. 욥을 의인으로 추켜세우는 신에게 “그가 아무런 유익도 없는데 당신을 경외하던가요?”라는 촌철살인의 반문으로 인간의 욕망을 꿰뚫던 이 또한 사탄이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신의 가장 큰 형벌은 인간을 저마다의 욕망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라 했거니와, 뉴욕의 칼럼니스트 신시아 하이멜이, 신이 고약한 취미가 있어 인간을 골려주려 한다면, 인간의 가장 간절한 욕망이 실현되게 한 후 마침내 그가 허무함을 못 이겨 스스로 파멸해 가는 모습을 보며 고소해 하리라,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대부분 불행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 악이 인간성에 본래적이라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 영국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이유 없이 촉발되는(uncaused) 악행은 없거나, 없다고 간주하는 것이 인류발전을 위해 유익하다고 말한다. 그는 상대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순간 상대는 발본해야 할 추상적 대상이 되고, 이는 배후에 있는 원인의 규명은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결국 더 큰 악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9·11 참사가 아무리 잔인할지라도 그로 인해 이라크 국민들이 치렀던 어마어마한 희생과는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견제 없는 정치의 위험

그 기원이 본성이든 환경이든, 물질과 인정(認定)의 욕망 혹은 이해관계에 갇힌 인간은 인식과 도덕적 판단을 자의로 중지 또는 왜곡하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거나 정당화하느라 분주하다. 그리하여 신학자 팀 켈러는, 인간이란 자신의 허물을 은폐하고 선함을 증명하고 승인받기 위해 “끝없는 소송(endless litigation)” 중에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자신의 과오에 몸서리치며 선한 삶을 살리라 다짐을 거듭해도 그 즉시 다시 넘어지는 것이 인간이다. 민주주의는 인간과 삶의 실상에 관한 이런 인식에 조응하는 정치체제다. 가령 그것은 정의를 추구하되, 도덕적 사명감에 불타는 권력자가 깃발을 앞세우고 홀로 돌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내용에 앞서 “견제와 균형” 혹은 “상쇄력의 제도화” 등 절차로 먼저 규정되는 이유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대통령이 지방선거 직후 청와대 한 회의에서 했다는 이 말의 진정성을 믿는다. 보수진영이 위기의 원인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빈사상태에 있다면, 논리적으로도, 한국정치가 걸어야 할 험로는 집권당의 책임 아래 펼쳐질 수밖에 없다. 야권의 현재와 미래가 암담할수록, 집권세력을 걱정해야 하는 심사가 고약해서 편치 않거니와, 권력이 기득권이 돼서 민주주의가 독단과 억압으로 퇴행하지 않으려면, 온전한 하나를 얻기 위해 아홉을 내주는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는, 비장함이 그래서 절실하다.

글쓴이 / 고세훈
· 고려대 명예교수

· 저서
〈조지 오웰: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한길사, 2012)
〈영국정치와 국가복지〉 (집문당, 2011)
〈복지국가의 이해:이론과 사례〉(고려대 출판, 2000)
〈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 (후마니타스, 2009)
〈국가와 복지〉 (아연출판사, 2003)
〈영국노동당사〉 (나남, 1999)

· 역서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한길사, 2015)
〈존 메이너드 케인스〉 (후마니타스, 2009)
〈페이비언 사회주의〉 (아카넷,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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