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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요 스승으로 고백하는 교회란
2018년 07월 07일 (토) 10:05:04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아모스 8:4-6;9-12, 마태오복음 9:9-13 (시편 119:1-8)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 나섰다.
10 예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세리와 죄인들도 많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되었다. 11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1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 9:9-13)

"예수께서 마태오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에 세리와 죄인들도 많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되었다."(10절)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은 매우 급진적이셨습니다.
당신은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세상과 다른 생각을 품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늘 아버지가 삶의 진정한 주인 되신다는 하느님 나라를 살고 계셨던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안목, 하느님의 질서로 세상을 보시니
자기중심, 사람이 만든 체제 중심의 세계관에 사로잡힌 이들 눈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투성이입니다.

매국노인 세리를 제자로 삼으신 놀라운 일이 있은 때
예수님은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 모두 당대의 기피인물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죄인'들이 우글거리는 축제였습니다.
율법을 모르는 땅의 사람들(암 하 아레츠)이 제 세상 만난 듯 떠들썩하니 노는 모습은 바리사이가 아니더라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일 것입니다.
요즘 상황으로 치자면 성소수자들, 난민들, 이슬람인들은 물론이요 바닥생활을 탈피하지 못하는 생계형 범죄자들을 광장에 모아놓고 한바탕 축제마당을 펼친 격입니다.
주류 기독인들이라면 펄쩍 뛰며 난리법석을 떨 풍경이요
태극기부대 정도 되면 쌍용차 서른 번째 희생자를 분향한 표창원 의원에게 하듯 예수 목덜미를 잡아 비틀며 온갖 쌍소리를 퍼부을 상황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 거리낌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질서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세계에서 삼라만상은 인드라망처럼 서로를 지탱하며 사는 존재들입니다.
돌멩이 하나도 허투루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의 질서 안에서 배제되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러니 사회에서 내쫓겨난 이들이 하느님 보시기엔 더 눈에 밟히는 법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를 따르겠다는 우리이고 교회라면
오늘 우리의 눈에 밟히는 이웃이 어떤 사람들이어야 하는지가 자명해집니다.
교회의 방으로 초대되어 함께 아픔을 나누고 하늘 이야기로 축제를 열 사람들이 누구인지 분명해집니다.
자본권력의 횡포에 속울음을 삼키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들, 이 모양 저 모양 쫓기고 내몰린 이들, 마침내 조국을 떠나 망망대해를 떠도는 이들이 바로 교회의 방에 초대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거리낌이 없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일에 오히려 열정적이셨습니다.
그 열정은 사람들의 흥분과는 사뭇 다른 차원의 열정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연민과 자비에서 터져 나오는 열정.
아파하고 울고 있는 이들을 향한 지극한 연민에서 터져 나오는 열정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요 스승으로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오늘 교회가 예수님의 그런 모습을 닮으려 애쓰고 있는지 질문해봅니다.
세상눈에는 급진적으로만 보이는 예수님의 진면목을 따르려 하는 교회인지,
껍데기만 예수뿐인 교회인지 말입니다.

사회적 고문을 못 견디고 세상을 떠난 이의 영정 앞에서 쌍욕을 하고 군가를 틀어대는 인간말종들.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타종교인이라 해서 난민을 쫓아내려하고, 세계적인 연례행사인 성소수자들의 축제를 해코지하려 온갖 정력을 쏟아붓는 주류 교회가 바로 저런 모습 아니겠는가? 하느님 보시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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