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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뜻
활자 절대화하면 성서는 죽은 문자
2018년 07월 20일 (금) 09:32:05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이사야 38:1-6;21-22;7-8, 마태오복음 12:1-8 (시편 32:1-8)

   
▲ 활자를 절대화하면 성서는 죽은 문자로 있을 뿐이다. 성서는 악보와 같아 혼을 담아 연주할 때 비로소 경(經)이 된다.

1 그 무렵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는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먹었다. 2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저것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3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4 그는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그 일행과 함께 제단에 차려놓은 빵을 먹지 않았느냐? 그것은 사제들밖에는 다윗도 그 일행도 먹을 수 없는 빵이었다. 5 또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는 사제들이 안식일의 규정을 어겨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책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6 잘 들어라.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는 무죄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태 12:1-8)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7절)

​마태오복음 12장은 소위 논쟁 이야기입니다.
왈가왈부 시비 붙는 일이 잦아지면서 예수께서는 변론하시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셔야 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궁지에 몰린 이의 변명 같은 수준이 아닌, 권위있는 가르침으로 선포되는 것이었지요.
오늘은 안식일 논쟁 중의 한 부분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정체성이 매우 강한 민족입니다.
그것을 유지하는 데는 모든 백성이 하늘처럼 떠받들고 실천하는 몇 가지 독특한 규범들이 단단한 몫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을 치자면 안식일을 지키는 일일 것입니다.
안식일을 제대로 ‘안식’하기 위해 별의별 규정들이 다 생겼지요.
오늘날에도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 버튼조차 누르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런 문화 속에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으니 엄격주의자인 바리사이들이 예수 일행에게 발끈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겠습니다.
밀 이삭을 훑는 행위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추수’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식의 근본주의적 생각들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 것인지를 통쾌하게 설파하셨지요.
본디 안식일 규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노동의 혹사를 방지하고, 최소한 일 주일 한 번은 온전히 하느님께로 마음을 모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영혼의 건강도 유지하게 하고자 한 율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취지는 어디로 갔는지 실종되고 ‘규정’들이 절대화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율법에는 추수할 때도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들의 양식이 될 만한 것은 남겨두도록 했지요.
그러므로 허기진 나그네들인 예수님 일행이 그것을 선취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안식일 규정, 곧 안식일에 노동을 하지 말라는 규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본말이 전도된 답답한 생각입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어 보이지요.
그런데 오늘의 그리스도 신앙인들 가운데도 이런 답답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으니 이를 어쩔까요.
성경은 악보와 같습니다.
성서가 경(經)이 되는 것은 혼을 담아 연주할 때입니다.
활자를 절대화하면 성서는 죽은 문자로 있을 뿐입니다.
성서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성서 가르침을 왜곡하여 잘못 실천하는 것은 더 위험한 일입니다.

​제사보다 젯밥에 더 마음을 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랑과 희생, 자비와 정의가 하느님 말씀인 성경의 근간을 이루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그 근본적인 뜻을 거스르는 성서 문자주의가 난무하는 모습을 봅니다.
개혁교회는 교황 중심의 경직된 로마가톨릭 체제에 반기를 들고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교회가 성서의 문자를 절대화하여 이런 아름다운 시작을 면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허긴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중세교황보다 더 절대적 권력을 가졌다는 비판이 일기도 하지만, 문자에 얽매이는 근본주의자들의 모습은 마치 종이(paper) 교황을 섬기고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누구나 이런 오류에 빠질 개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성찰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 나의 신앙이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큰 틀 안에 제대로 머물고 있는가,
그래서 희생하면서 사랑하려 하고, 정의를 추구하되 큰 자비심을 근거로 하고 있는가,
제물보다는 자비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부합한 신앙으로 다듬어져 있는가,
혹여 혼이 빠진 신앙으로 믿음을 박제화하지는 않는가,
곰곰이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젯밥보다는 제사에, 제사보다 제사드리는 뜻에 마음을 쓰는 오늘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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