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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랑스 바람
선한 자들의 나약함과 수수방관 이겨내야
2018년 07월 25일 (수) 09:50:56 유지나 dasanforum@naver.com

일 년 중 가장 더운 날을 뜻하는 절기 '대서(大暑)'인 7월 23일, 111년 만에(1907년 이래) 최고치 아침 더위를 전하는 기상 정보로 하루를 시작한다. 폭염 경보가 익숙해져버린 일상에, 정부가 폭염도 태풍이나 지진처럼 '자연재난'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재난영화가 다루는 환경재난메뉴에 폭염도 추가된 셈이다. 지구온난화 파장이 몰고 온 기상 변화를 범지구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나날들이다. 그 와중에 이 사회에 불어 닥친 변화의 열풍도 강하게 다가온다.

   

난민으로 국경을 넘으며 초능력을 얻은 청년

12년간 투쟁해 온 KTX 해고 승무원의 복직 합의 소식이 뜨거운 태양 빛 아래 날아든다. 서울역에서 투쟁 해단식을 하며 흘리는 그들의 뜨거운 눈물은 일의 소중함을 전해준다. 또 다른 열풍은 제주도에 불어닥친 예멘을 탈출한 난민 논쟁이다. 난민들이 출구로 삼는 국가는 떠나온 곳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헬조선’이라고도 불리우는 한국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도피처로 분류되어 서유럽권이 오랫동안 겪어온 문제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마침 곧 개봉하는 〈주피터스 문〉(Jupiter's Moon, 2017, 코르넬 문드럭초)도 초능력을 가진 청년을 통해 범지구적 문제이기도 한 난민문제를 성찰하게 해준다.

아리안이 아버지와 함께 내전 중인 시리아를 떠나 헝가리 국경을 넘는 숨 막히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막막한 탈출 여정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아리안은 총을 맞는다. 생사를 넘나들다 살아난 아리안은 중력을 벗어나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 아리안의 초능력을 우연히 발견한 의사인 스턴은 돈벌이 파트너십을 제안한다. 스턴은 만취한 상태로 위급상황에 불려나가 아이를 수술하다가 사망시킨 후 의사면허 취소란 난국에 처해있다. 면허 취하소송을 뇌물로 피해갈 생각에 빠진 스턴은 뒷돈을 받고 난민캠프 사람들을 탈출시키는 불법행위도 일삼는다. 아리안도 아버지를 찾고, 신분증 복원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 한 팀이 된 두 사람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환자들을 찾아 나선다. 아리안의 공중부양을 천사의 재림으로 보는 환자들은 헌금하듯이 거금을 받친다.

사지를 유연하게 움직이며 날아오르는 아리안의 모습은 이 영화의 볼거리이기도 하다. 저기 멀리 비행기가 날아가는 부다페스트 노을 속을 아리안이 날아가는 풍경은 아름다우면서도 허망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살길을 찾아 나선 시리아 난민에게 헝가리는 과연 구원의 공간일까, 라는 상념과 함께.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듯 돈독 오른 이들이 일상에서 벌이는 불법적 행태는 침략과 지배로 점철된 헝가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집단무의식의 흔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헝가리가 몽골, 터키, 오스트리아의 침략과 지배를 받으며 겪었을 고난, 소련의 위성국이기도 했던 아픈 과거는 외세 침략과 지배로 얼룩진 우리 역사에 공명의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홍세화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불가능했던 1979년, 유럽 출장길에서 중앙정보부 기획 '남민전 사건'에 걸려든다. 20년에 걸쳐 프랑스 망명 생활을 보낸 후 써낸 홍세화의 자전에세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통해 잘 알려진 ‘똘레랑스’(tolérance, 관용)가 떠오른다.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의 바람이 한국에 불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랜 분쟁지역인 시리아에 이어, 우리처럼 분단을 겪은 예멘에서 탈출해 온 난민 문제는 우리에게 세계시민으로서의 관용을 보여줄 기회로 다가온 셈이다.

난민과 망명객으로 혜택을 받았던 역사

돌이켜 보면 우리도 난민과 망명으로 세계시민 사회의 관용적 혜택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만주벌판과 상하이 등지를 떠돌았던 독립운동가들은 〈암살〉(2015, 최동훈)의 바탕이 된 실존 인물들이다. 〈지슬〉(2012, 오멸)에서 보듯이, 해방 직후 미 군정기에 발생한 제주 4·3 사건 대학살로부터 도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제주 난민들은 오사카에 이쿠노 코리아타운을 형성하며 재일동포가 되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발생한 (피)난민은 미국과 일본, 그보다 더 머나먼 제3국으로 떠나 해외동포가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0월 유신을 피해 두 차례 미국으로 망명한 난민이기도 하다.

때론 미디어에서 난민과 망명객을 혼용하기도 하지만, (국제협약에 따르면) 난민은 비정치적 존재로 관용의 대상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TV영화 〈히틀러〉에서 “(히틀러 당신은)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총통각하” 라는 대사로 그 차이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 나오는 또 다른 대사, “악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자들의 나약함과 수수방관이다”가 유독 다가오는 나날이다.

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2005 동국대 명강의상〉수상

· 저서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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