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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예수를 찾습니까?
2018년 08월 07일 (화) 11:02:04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8. 8. 5) 성령강림 후 열한 번째 주일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요한 6:24-35

요즘 선출받지 않은 권력기관들이 연이어서 대형악재들을 쏟아냅니다. 양승태의 대법원 시절 문건은 우리를 놀래 자빠뜨립니다. 아예 노골적으로 정권과 재판거래를 했습니다. 그 재판에 목을 매고 있는 사람들은 허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정도를 넘어서 고양이가 생선주인까지 잡아먹을 지경입니다. 일제징용자들이 신청한 손해배상소송은 대법원과 외교부의 거래 때문에 신청자 9명 중 7명이 숨진 지금까지도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래 내용이 뭔지 아세요? 법원행정처 해외근무 자리 확보를 위해서 입니다. 사법부가 재판을 미루는 속사정을 모르고 일제징용자들은 기약없이 기다리다 세상을 떠났고 판사는 해외로 나갔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양승태는 제주해군기지 소송, 밀양송전탑 소송,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KTX 여승무원 사건 등 정권에 부담되는 재판들을 자기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또는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하자고 음모를 꾸민 문서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해당 사건 당사자들은 사법부가 진실을 밝히고 올바른 결정을 내려서 명예를 회복하고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는데, 사법부는 사람들의 갈망을 간단하게 무시하고 자기들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법부의 재판거래 실상을 조사하려 하니, 번번이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해서 제 식구 감싸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민들은 폭염에 지쳐 있는데 대법원의 재판거래와 영작기각 소식에 분노가 임계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기무사의 과거 행적을 밝히는 문건들이 연이어 폭로되고 있습니다. 군인권센터로 여러 내부자들이 제보를 합니다. 제보내용은 우리 귀를 의심하게 합니다. 기무사가 국방장관과 대통령의 통화를 감청했습니다. 또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박수치며 환호했다고 합니다. 부대에 면회 온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해서 경찰망으로 전과조회하고 수백 만 명을 무차별 사찰했습니다. 기무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가지고 온 <노무현자서전>을 보고 이런 불온서적을 보냐고 했습니다. 모두 제 정신이 아닙니다. 기무사가 해방 후 지금까지 70년 세월을 독점적인 권력과 특권에 빠져서, 적폐 중의 적폐가 됐습니다.

이런 권력기관의 행태, 국민을 우습게 보고 오직 자기 기득권 지키기에만 광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시민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촛불은 끝난 게 아니고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는 촛불로 정권을 바꿨기 때문에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지만, 대통령만 바꿨을 뿐, 이 사회를 유지하던 어둠의 세력들은 여전히 자기 영역에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촛불의 완성을 위해 더욱 눈에 불을 켜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만족한다면서 물러서면, 죽도 밥도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를 지지하는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 정치인이 말하는 세상이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과 일치할 때 지지하는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목적인 지지는 안 좋습니다. 맹목적인 지지는 비판의 눈을 가려서 시시비비를 잘 못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예수와 군중이 만납니다. 둘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가는 길에 길잡이를 삼겠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를 열심히 찾습니다. 갈릴리 바다가 꽤 넓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23,24절을 보면, 무리들은 디베랴바다를 왕복하는 큰 수고 끝에 가버나움에서 예수를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넵니다.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나를 보러 일부러 여기까지 오다니. 뭘 그렇게까지...” 이렇게 말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태도는 뜻밖입니다. 애써서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직설을 날립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예수가 사람대하는 태도를 보면, 원만한 인간관계는 포기한 사람 같습니다. 어째서 예수는 이렇게 날카로운 반응을 하는 건가요? 군중이 자기에게 달려오는 모습에서 너무나 뻔한 맹목성이 보여서 그렇지 않았을까. 예수는 무리들의 본심을 쓴 소리로 지적합니다. 무리들 입장에서는 사실이 그렇더라도 그것을 곧이곧대로 말하는 예수가 기분 나쁠 것은 뻔합니다. 그래서인가, 그 뒤 이어지는 대화는 서로 엇나갑니다. 접합점이 없습니다. 세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첫째는 예수가 볼 때, 무리들은 헛된 일에 힘을 씁니다.
예수는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27절) 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이 말씀을 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무리들이 자기를 찾는 이유가 빵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라고 말했듯이, 사람들이 열심을 내는 이유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기 위해서 라는 겁니다. 이 말을 확대하면, 사람들은 음식이 풍족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습니다. 즉 자기들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결정하고 마련해 주는 정치 지도자를 열망합니다. 그 결과 급식사건을 베푼 예수가 자기들의 욕망을 채워 줄 지도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 <내부자>에서 이병헌이 말했듯이, “세상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겠는가” 입니다. 백마 탄 메시아도 없을뿐더러, 자기들의 욕망을 채워줄 그런 지도자도 단연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명박, 박근혜가 자기들의 욕망을 채워줄 사람으로 기대하고 그들을 대통령으로 세웠지만 알고 보니 그들은 자신의 욕망만 채우느라 국민들의 바람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자기 욕망에 빠져 있느라, 용산참사가 일어났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대거 희생이 발생했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한국사회 민주주주와 공공성은 훨씬 후진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일은 정권이 바뀐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점입니다. 자본가를 배불리는 토지강제수용과 철거민 배제는 여전하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는 돌아갈 일이 까마득합니다. 세월호 진상조사위는 세월호가 가라앉은 원인을 속 시원히 밝히지 못합니다. 내력설(선체결함)과 외력설(외부충돌) 두 가지 설을 같이 채택했습니다. 너무 세월이 지난 뒤에 조사하기 때문입니다. 숨긴 놈이 이미 증거를 다 없애버렸다. 때를 놓친 것입니다. 오래된 현안이 도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정치인도 그 놈이 그 놈인 까닭인가요? 제도와 정치의 문제인가요? 자본주의 자체 문제인가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아무리 현실이 정치지도자로 인해 낭패를 겪더라도 사람들의 정치지지 성향은 쉽게 안 바뀐다는 점입니다. 박근혜가 감옥에 가 있지만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여전히 그를 골수 지지합니다. 그건 노무현지지자도, 문재인 지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재인지지자들은 사드 강제배치 이야기만 나오면 침묵하든지, 두둔합니다. 대안이 있냐는 둥,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충성도 면에서는 정치가 종교보다 더 깊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구하는 게 썩어 없어질 양식인지, 영생에 이르는 양식인지에 대해 성찰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의 에고를 무의식으로 따릅니다.

예수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는 대신에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라”고 했습니다. 영생에 이르는 양식은 무엇인가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릴 것이다.”(6:50-51, 54)

이 말씀에 따르면, 영생에 이르는 양식은 예수의 몸입니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라고 했습니다. 빵을 먹듯이 예수의 몸을 먹으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식인을 하라는 말인가요? 아무리 문자대로 를 사랑해도 그런 뜻이 아닌 건 다 압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는 대목은 성만찬에서 떡과 잔을 받을 때 고백입니다. 누구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말의 본래 뜻은 무엇인가요? 그 사람과 자신을 일체화하겠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의 살과 피에 영혼, 정신, 마음, 신념, 뜻, 육체의 흔적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말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이어받겠다는 결의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에 이르는 양식을 위해 일한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아서 나도 그 길을 똑같이 살겠다는 고백의 표시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일차독자들에게 주는 복음이고 도전이며,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방법의 차이입니다. 무리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28절) 그러자 예수는 답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29절)
무리가 일에 대해 물었고 예수는 그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의 물음이 금새 바뀝니다.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30절) 자기들이 할 일이 무엇이냐를 물었다가 표징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을 바꿉니다, 행동의 주체를 예수께 떠넘깁니다.

군중들은 내가 해야 할 일을 찾는 노력 대신에 정치지도자에 대한 열망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사건을 거론합니다. 그들이 광야 만나사건을 말한 의도는, 예수 당신도 모세같은 능력을 행하라는 요구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읽은 예수는 광야만나 사건은 모세에게서 나온 게 아니고 하늘 아버지라고 말씀합니다. 군중은 모세의 지도자 신화를 추종하지만, 예수는 만나를 통해 참 빵을 주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알아보라고 말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깨달으면 지도자가 필요없습니다. 예수는 우리더러 자기보다 더 큰 일도 한다고 했습니다.(요 14:12) 변화의 주체는 각성한 나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가 만나의 참 뜻을 말씀하지만 군중들은 여전히 그들의 세속적 욕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말합니다. "주님,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34절) 그 빵을 먹는 것은 아버지가 보낸 사람, 예수를 영접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 예수가 사는 방식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군중은 그 빵을 끝까지 자기들을 배불리는 빵으로만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엇나가는 대화는 결별로 끝납니다. 군중은 떠나고 예수는 홀로 남습니다. “이 때문에 제자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떠나갔고, 더 이상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66절) 무리들은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해했어도 그 말씀을 따를 용기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모습의 예수를 대면하나요? 우리에게 군중들의 욕망과 욕구는 없나요? 우리는 어떤 예수를 찾습니까? 예수가 우리의 배를 불려 주기를 바라나요? 예수가 걸어간 길, 십자가의 길을 충실히 따를 마음이 있습니까? 예수가 내 살을 먹으라는 말씀은 내가 내 몸을 바칠 테니 내 살을 먹은 너도 그렇게 살라는 암시입니다. 그 길이 영생의 길이다. 나의 에고와 욕망을 비우고 영생을 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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