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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여인의 믿음
지금 세상 교회를 조롱하고 있어
2018년 09월 11일 (화) 09:41:03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그리스 여인의 믿음
마가복음 7장 24~30절,

■ 장애우 특수학교
서울시교육청은 2015년 장애학생들의 원거리통학과 과밀학급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교인 강서구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특수학교를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서을 후보로 출마한 김성태 의원이 공약으로 ‘국립 한방병원설립’을 내세우면서, 지역 주민들은 특수학교 대신 한방병원 설립을 요구해 갈등을 빚어 왔습니다. 장애인 학부모 수십 명이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를 세울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 지 1년 만에 교육당국과 지역주민들이 특수학교 설립에 합의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특수학교 설립으로 인한 주민갈등을 극복해낸 이번 합의가 지역사회와 특수학교 설립의 사회적 상생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장애우 학부모들은 조건적 합의에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무릎을 꿇고 호소한 결과가 겨우 조건적 합의였냐며 장애우 특수학교를 세우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교육청에 항의하였습니다. 장애우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주민들, 그것을 악용하여 자신의 국회의원 당선만 노린 김성태 의원, 탐욕에 눈이 먼 자들입니다. 구역질이 납니다. 하지만 무릎을 꿇고서라도 장애우 특수학교 설립을 관철시키려는 장애우 부모님들의 그 간절한 마음이 세상을 따뜻하게 합니다.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는 붕괴되고 정신을 잃어버린 종교도 소멸하듯이 마음을 잃어버린 삶도 망합니다.

   
▲ 글쓴이 양재성님(사진의 오른쪽)은 가재울녹색교호 담임목사, 예수살기 총무, 기독교 환경운동연대 공동대표로 섬기고 있다

■ 명성교회와 세습
“한국교회는 무엇을 믿는가? 특히 초대형교회들은 무엇을 믿는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가? 그렇다면 그들의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내가 믿는 하나님과 같은 분인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맞는가? 예수가 믿은 아빠 하나님이 맞는가?” 깊이 성찰하고 성찰해보아야 할 일입니다. 실로 명성교회 사태 뿐 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여러 정황들이 우리를 이 의문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촛불기도회는 청계광장 입구에서 명성교회 세습 규탄 촛불집회로 열렸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들도 계셨고,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도 계셨습니다. 진보적인 기독교인과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200여명이 모여 명성교회 사태의 심각성을 토로하고 한국교회의 각성을 촉구하며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한국교회의 현실을 개탄하는 분도 계셨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참고 참으며 기다렸는데 이젠 더 이상의 기다림은 직무유기라 생각되어 나섰다는 이도 계셨습니다. 어떤 이는 물신을 섬기는 한국교회의 단면이라며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은 자본우상과의 싸우려면 기독교 결사 공동체를 구성해야한다고 말하는 이도 계셨습니다. 사회자는 “명성교회 세습을 막는 일은 한국교회로서는 마지막 자존심과 마지노선을 지키는 일”이라며 힘을 모아 꼭 막아내자고 호소하였습니다.

명성교회 세습 사태가 한 교회의 단순 세습을 넘어 노회, 총회를 우롱하고 한국교회를 기만하는 사태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습한 교회는 300여 교회가 됩니다. 그 중에 감리교회가 가장 많습니다. 압구정동 배나무 밭을 사서 강남으로 간 광림교회 김선도목사는 초대형교회로서는 제일 먼저 세습을 단행하였습니다. 그의 동생 김홍도목사도 그의 동생 김국도목사도 세습을 단행하였습니다. 베다니 교회, 만나교회, 계산중앙교회, 숭의교회, 주안교회 등, 대부분의 초대형 감리교회들은 세습을 하였습니다. 세습도 가지가지입니다. 직접세습, 교차세습, 삼자세습, 외가세습 등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세습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자 교단들은 서둘러 세습방지법을 만들어 공포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습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여 변칙으로 세습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명성교회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김삼환 목사는 재임 중 절대로 세습하지 않겠다고 누차 강조해서 말했고 그의 아들 김하나 목사도 공적인 자리에서 절대로 세습하지 않겠다고 공언한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습은 강행되었고 아주 비열하고 졸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돈으로 매수하여 노회를 제압하였고 총회 재판국도 장악하였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세습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김목사 부자가 갑자기 세습으로 바뀐 대는 사연이 있을 겁니다. 명성교회는 한 해 결산이 1000억원이 넘고 200억원씩 남는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돈은 김목사가 결제할 수 있으며 재정은 투명하게 보고되지 않고 있습니다. 상당액의 비자금이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습을 반대하는 일부 교인들이 김삼환목사를 경찰에 고소하였고 조만간 이에 대한 경찰 조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김삼환목사 부자야 그렇다 치고 “명성교회 성도들은 무엇을 믿는가? 정말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가? 예수를 믿는가? 아니면 김삼환 목사 부자를 믿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장신대생이 명성교회 세습은 “일제의 신사참배보다 더 교활한 하나님에 대한 배신”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예수가 있는가? 아니 한국교회는 예수를 믿고 있는가?” 이 질문에 봉착하면 갑갑해진다. 한국교회는 예수를 몰라서 못 믿기도 하지만 알면서도 안 믿는 것입니다. 가난의 길을 가고 이웃의 아픔을 대신 짊어진 예수를 믿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냥 부요와 편리, 풍요를 가져다주는 번영의 하나님, 무슨 잘못이든 용서하는 십자가의 예수를 그냥 믿을 뿐입니다. 부동산 투기로 돈 버는 일을 당연시하고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서 이룬 성공을 축복이라고 여기는 교회는 진정한 기독교회가 아닙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자정 능력도 상실했고 변화에 대한 일말의 희망도 버린 듯합니다.

■ 예수교회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 종교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종교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인류사회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일명 하나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랑이며 그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주와 인류를 창조하시고 돌보십니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지극히 작은 자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인권을 지켜주십니다. 당신을 믿는 이들이 고난 받는 이들의 이웃으로 섬기고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을 배우고 예수가 걸어가신 길을 걷는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식구들이 작은 예수가 되어 지극히 작은이들을 섬겨 눈먼 자들의 눈을 띄우고 귀먹은 자들의 귀를 열어주고 옥에 갇힌 자들을 해방하고 억눌려 사는 자들을 자유하게 하는 공동체입니다. 더 이상 전쟁과 폭력은 안 된다며 인권을 보호하고 평등한 세상을 지어가는 공동체입니다. 이웃 종교의 가르침도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하지 않는 공동체입니다. 불의한 권력엔 저항하고 정의를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는 공동체입니다. 억압받는 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공동체요, 불의한 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 예수 없는 교회
지금 세상은 교회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시효가 다 되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교회는 소멸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것은 교회가 예수를 버리고 맘몬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바알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명성교회 세습은 그 점을 주목하게 합니다.

오늘 성서일과 야고보서의 지적처럼 교회는 고난 받는 이들에게서 관심을 접고 오로지 부자들의 시녀로 전락하여 그들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어서 먹는 재미에 취하여 살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 없는 교회는 바알을 숭배하게 된다는 자명한 진리를 한국교회가 사회에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희송은 다시 프로테스탄트란 책에서 성직주의, 성공주의, 성장주의가 한국교회를 붕괴시키는 주범이라고 지적합니다. 개신교회는 평신도 사제란 말을 사용함으로 모든 신도가 성직자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성직자로 살아가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제 역할을 달리 할 뿐 성직자로 약자를 보호하고 고난 받는 이들을 섬기며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공주의는 종교랑 어울리지 않습니다. 목회 성공, 교회 성공이란 말은 더욱 맞지 않습니다. 또한 살아 있는 생물은 모두 성장합니다. 성장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성장합니다. 성장 조급증에 걸리면 조장하게 됩니다. 결국 성장과 성공주의가 교회를 기업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였던 리처드 핼버슨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대형교회의 세습을 비판한 영화 '쿼바디스'의 김재환 감독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교회는 한국으로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

이 말은 아마도 우리교회처럼 작은 교회를 두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참 씁쓸합니다. 이제 정론보도를 하는 뉴스에서까지 탐욕스런 교회 모습이 가십거리가 되었으니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뼈를 깎는 성찰과 개혁을 하지 않고서는 안 되는데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으니 더 절망스럽습니다. 하지만 명성교회 세습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개혁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어 다행입니다. 작은 촛불이 횃불을 만들고 들불을 만들어 농단 세력을 심판하였던 것처럼 자각된 평신도들이 일어나 다시 한 번 교회를 개혁할 때입니다. 개혁되지 않는 교회는 사회변혁의 걸림돌로 작동하여 개혁당하고 말 것입니다.

■ 예수와 그리스 여인
오늘 성서일과는 마가가 전하는 복음서 7장의 말씀입니다. 성경본분에 나오는 그리스 여인에겐 귀신이 들린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용한 의사도 찾아가보았고 효용이 좋다는 약도 먹어보았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아마도 해볼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지만 딸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고단한 여인의 삶에 희망을 주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신비한 힘을 가졌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예수라는 갈릴리 청년은 상당한 치유의 능력을 가졌으며 어떤 귀신이 들어왔든 어떤 병에 걸렸든 그에게 가면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여인은 진가 민가 하는 주변 사람들과는 달리 그 소문을 믿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를 찾아 두로까지 왔습니다. 예수는 마치 순례 중에 두로에 와 계셨습니다. 첫 번째 이방인 지역 순례입니다. 예수는 그녀를 만나러 오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예수가 머무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다짜고짜 청하였습니다. 당신의 딸이 귀신이 들었는데 백방으로 노력하였지만 고칠 수 없었고 이제 더 이상 길이 없어 할 때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고 그래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 딸을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보였습니다. 예수가 고쳐주지 않으면 이젠 죽을 판입니다.

그런데도 평소와는 달리 예수님은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평소 같았으면 예수님은 그 여인을 환대하였을 것이고 네 믿음이 네 딸을 고쳤다고 선포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은 유대인에게로 보내졌다며 여인의 청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여인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주인의 밥상에 있는 것을 개에게 주진 않는다며 여인을 모욕하고 인격살인을 해도 오히려 여인은 개도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어서 먹는다고 응수합니다. 그러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시고 제 딸을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그 때서야 예수님은 정신을 차리시고 그 여인에게 말합니다. 이제 돌아가십시오, 당신의 딸이 나았습니다. 여인이 집으로 돌아오니 딸이 귀신은 나가고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 그리스 여인의 믿음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은 뜯어보면 이해가 갑니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생존해야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특별히 자신들을 사랑하고 돌보신다는 신앙은 특별한 힘으로 작동하였습니다. 하지만 선민사상이 이방인들을 업신여기며 하대하는 등 차별의 도구로 전락되었을 땐 강력한 폭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돌파하시고자 하였습니다. 마침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리스 여인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따라나선 제자들과 모여든 유대인 청중들이었습니다. 삐뚤어진 선민사상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그 때 그리스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당연히 환대하고 고쳐주어야 할 예수님으로써 여인을 거절하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유대인들의 삐뚤어진 시선을 드러내기 위해 개로 취급합니다. 그런데도 다행스럽게 그리스 여인은 예수를 끝까지 믿고 따르는군요.

이 이야기는 배타적이고 냉정한 전형적 유대인의 태도와 상반되게 놀랍도록 겸손한 이방여인의 태도를 주목하게 합니다. 차가운 시선과 자존심을 짓밟는 모욕에도 불구하고 여인이 보여주는 태도는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여인은 개 취급하는 유대인의 시선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태도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음을 진실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인은 부스러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상 위에 있는 것을 구하지, 상 아래 부스러기를 청하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설사 부스러기일지라도 그것으로 자신의 딸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속에 사랑으로 충만해진 믿음은 그 여인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데 충분했습니다.

■ 행함이 있는 믿음
촛불교회가 있습니다. 고난의 현장을 찾는 교회입니다. 아픔이 있고 억울함이 있는 곳이라면 찾아가 손을 잡고 함께 울고 고통을 나누는 교회입니다. 지극히 작은이들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믿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구하는 교회입니다. 촛불교회는 쌍차 분향소를 찾아 예배하고 파인텍 굴뚝 농성장을 찾아 기도하고 강남향린교회 성전강탈 규탄 기도회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명성교회 세습 규탄집회에 참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강제로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사람들과 시위도 하고 사드 한반도 배치를 반대하며 투쟁하는 자리에도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아무리 맛난 음식이 있어도 먹지 않으면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고 아무리 멋진 자동차가 있어도 기름이 없으면 달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성경적 지식이 있어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렇듯 교회가 담고 있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그간 교회는 겉모습만 중히 여겨 살아왔다면 이제 내용을, 그 정신을 다시 발현하여 속살을 드러내고 살아가야 합니다. 입으로만 전도할 것이 아니고 그 행함으로 본을 보여야합니다.

예수 없는 예수교회를 예수가 있는 예수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구차한 설명이 아닌 그냥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보면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예수를 보고 예수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예수는 그리스 여인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청을 듣고 그의 딸을 치유해주었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내 삶 전부를 걸고 같이 걷고 싶어지고, 이 사람과 함께 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리스 여인이 두로로 오시는 것을 보고 먼저 두로에 와서 기다리신 분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우리보다 먼저 걸어와 우리의 길이 되어 우리를 기다리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십시오. 모든 여정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여정 아닙니까?

이제 우리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딸의 치유와 구원을 위한 이방 여인의 절실한 사랑이 우리에게도 요구됩니다. 그저 낫는다고 한 마디만 하시면 낫을 것으로 믿었던 그녀의 믿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예수라면 자신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믿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보이지 않는 미래도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보다도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예수를 믿고 그분께 우리의 모든 문제를 내려놓으십시다. 지구적 과제도 한반도의 평화적 과제도 예수님께 내려놓고 예수님과 손발 맞추어 걸어갑시다. 이 일은 내 생 전체를 걸고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믿음은 그저 여가를 선용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 여인의 절실함, 예수가 아니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믿음이 운명처럼 예수를 만나게 하였고 딸이 구원을 받은 것은 물론 그녀 또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어본 사람이 큰 사랑을 베풀 수 있듯이 예수를 만나 길을 걸어본 자들이 그들의 삶에서 예수를 드러낼 수 있다는 진리를 믿고 믿음의 길로 나아갑시다. 오늘을 살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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