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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은 더 달라붙었다
성령강림 후 스물네 번째 주일
2018년 11월 05일 (월) 16:36:01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8. 11. 5) 성령강림 후 스물네 번째 주일
룻 1:1-18 “룻은 더 달라붙었다”

몇일 전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 가슴아픈 이야기를 봤습니다. 제주초등교사 김지현씨 사망사건입니이다. 사망원인은 췌장 파열과 과다 출혈입니다. 췌장 파열은 배를 계속 세게 맞으면 일어나는 증상이다. 사건을 조사해보니 범인은 처음 신고자인 손아무개씨입니다. 손씨는 김지현씨의 종교멘토였습니다. 그러나 손씨는 김지현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해서 살해했습니다.

   
글쓴이 백창욱님은 대구새민족교회를 섬기고 있다

취재결과 확인한 사실은 지현씨는 손씨를 만나기 전과 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동료교사 증언에 따르면, 교사 일에도 매우 열정적이었던 지현씨가 언제부터인지 수업시간에도 어디와 한참 전화통화를 하고, 조퇴를 하고 그랬습니다. 앞뒤를 맞춰보니 손씨를 알게 된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손씨는 지현씨에게 끊임없이 무엇을 지시했고, 그 지시이행이 늦으면 가차없이 폭행했습니다. 잡히는 물건은 흉기가 됐습니다. 지현씨는 상처를 가리느라 늘 마스크와 선그라스를 쓰고 다녀야 했습니다. 죽은 지현씨의 폰은 손씨의 억압 아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취재진이 김지현씨 친구들에게 최근 사진을 보여주니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친구들은 “우리가 아는 지현이는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 같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봐도 그 전 얼굴과 사망할 즈음 얼굴은 너무 달랐습니다. 그런 피해자가 김지현씨만이 아니었습니다. 손씨에게 지현씨를 소개한 장은주씨도 손씨의 지배아래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야 하고, 알바를 몇 개씩 하면서 헌금 명목으로 갈취당한 돈이 무려 6천 만원입니다. 또 손씨의 고등학교 동창인 강철구씨도 희생양이 됐습니다. 손씨집 일을 하면서 수시로 얻어맞고, 이혼을 해야 했고 손씨에게 매일 6백 만원의 헌금을 바치느라 집을 팔았습니다.

이쯤 되면 자연히 의문이 생깁니다. 멀쩡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통제당하고 노예로 살 수 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매우 힘들었을 때, 손씨가 친절한 위로자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교회에서 손씨를 알게 된 장은주씨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힘들어할 때, 손씨가 이런저런 좋은 말로 위로해 주면서 관계가 친밀해졌고 그러다가, 경건에 이르는 길을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손씨의 제안을 받아들면서 본격적으로 악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학교동창 강철구씨도 아이 셋을 키우면서 삶이 고단할 때, 손씨가 자기 심정을 공감해 줘서 의지하게 됐다고 합니다. 살해당한 김지현씨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양육했는데, 외할아버지의 죽음으로 크게 힘들어 했고 그때 손씨를 만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가장 힘들던 그 순간 손을 내밀어준 손씨에게 기댄 게 비극의 시작입니다. 그 의존도가 너무 깊어지다 보니, 손씨에게 통제당하는 것이 만성이 됐습니다. 강철구씨는 말하기를 “이거라도 의지해야 한다. 여기서 벗어나면 어떻게 살지?’ 하는 마음이 컸던 거 같다. 어떤 희망 때문에 놓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또 장은주씨는 “그에게 완전 제압당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해외로 가도 그가 날 찾아낼 것이고 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내가 아무리 빠져나가려고 해도 빠져 나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그냥 여기 머무는 것이 낫다 라고 판단해 버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전문가는 "이런 사건이 무서운 것은 우리 주변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심신미약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누가 자기 심정을 공감하고 조금만 위로해줘도 거기에 흠뻑 취해서 자기의 영혼까지 통째로 맡기는 이런 모습은, 현대인이 고단하고 외로운 자기 내면을 다스리는 데 얼마나 취약한가를 말해줍니다. 교회도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서 값싼 위로를 얻은 데에 만족하여 자기 영혼을 통째로 맡깁니다. 그리고 교회욕망에 수단화됩니다. 주체적으로 사는 것은 한 나라만이 아니라 개개인에게도 너무도 소중합니다.

지난주에 『죽지 않는 혼』이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충정공 민영환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을 쓴 사람은 민명기, 민영환의 4대손, 증손녀입니다. 민영환은 1905년 을사조약에 항거하여 자결한 대한제국의 신하입니다. 충정공은 민영환이 죽자 고종이 지어준 시호입니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소설로 옮기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설이지만 거의 역사서에 가깝습니다. 민영환 개인과 가족사뿐만 아니라 대한제국이 어떻게 기울어 가는지 속사정도 잘 보여줍니다. 민영환은 고종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특명전권공사(대통령 특사)로 외국을 많이 갔습니다. (러시아황제 대관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가는데, 50일이 걸렸다.) 고종은 일본의 조선침탈을 유럽에 호소하고 도움을 구하고자 특사를 보냈지만, 조선을 돕겠다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유럽이 조선의 독립을 쉽게 보장해 줄 것이라는 고종의 희망은 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항만 사용권, 금 채굴권은 물론 철도 건설과 전선 설치, 지폐 제조, 왕실의 중요자리 등 알짜배기 빼먹기에만 바빴습니다. 외국의 속셈을 뼈저리게 겪은 민영환은 독립신문 사장 서재필과의 인터뷰에서 그 심정을 절절히 말합니다. “앞으로 조선이 힘써야 할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오. 나는 그것을 자강(自强)이라 하겠소. 국력이 약하면 외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유럽 사행을 통해 뼈아프게 느꼈소. 강대국의 선한 의지에 기대면 결국 또 다른 상전을 만나게 될 수밖에 없소. 청국도, 러시아도, 미국도 다 마찬가지요. 정치나 외교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실리의 문제이기 때문이오.” 고종의 특명을 받고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이 나라 저 나라에 백방으로 호소하지만, 다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토로하는 말입니다.

민영환은 자결로 나라를 빼앗긴 슬픔을 표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친일매국노로 유명한 송병준은 처음에 민영환 부친의 도움으로 군관이 됩니다. 친일매국으로 출세한 뒤에는, 은혜를 배신하고, 민영환이 죽은 틈을 타서 민영환의 모친을 속이고, 목양사라는 부평 땅(지금 부평의 1/2)을 가로챕니다. 민영환의 동생 민영찬은 형님의 순국정신을 따르기는커녕 외국여자와 사랑에 빠져서, 가족과 조강지처를 버리고 일본의 자작작위를 받습니다.

또 하나 지난주, 우리를 분노케 한 일은 양진호라는 사람입니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왔는지! 그의 폭력, 불법, 엽기행각이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직원 폭행 영상을 보고 슬펐던 것은 넓은 사무실에 직원들이 많이 있는데 사장의 폭행에 대해 모두 모르는 척 하는 모습입니다. 아, 저게 현대판 노예의 모습이구나! 정말 저렇게 해야 먹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슬펐습니다. 최소한 노조만 있더라도 저렇게 굴종하지는 않을텐데...

그런데 보도를 보니 그 회사가 하는 일 자체가 떳떳하지 못합니다. 웹하드가 불법영상을 퍼뜨리는 본거지이고 직원들은 그 일을 하는 실무자입니다. 불법영상물 피해여성이 극단 선택을 하면 ‘유작마케팅’이라고 합니다. 모두 돈벌이에만 미쳐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개별화되어서 저 살 궁리만 하고 도덕이나 공공선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감합니다. 강자들이 엮어놓은 카르텔, 비인간화, 비도덕 세계에서 민중이 사람답게 살 길은 정녕 없나요?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하나님말씀을 대면하겠습니다. 오늘 룻기가 말하려고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룻기는 언제 이야기인가요? 1:1에 사사 시대라고 하지만 실제 룻기를 쓴 시기는 바벨론 귀양살이 이후인 기원전 5세기 중엽입니다. 이스라엘은 귀양살이에서 돌아와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옛 전통은 잊혀졌습니다. 경제, 정치, 사회의 기초를 철저히 개혁해서 하나님 백성들이 자기네 본모습을 잃지 않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룻기 저자는 공동체를 다시 조직하기 위한 방향설정을 제시합니다. 가난한 백성들이 양식, 땅, 가정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한 투쟁의 길을 보여줍니다.

룻기 내용에서 보듯이, 이 책의 주인공은 이방인입니다. 룻이라는 모압 여인입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합니까? 구원을 받는 데는 경계가 없슴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 사랑은 배타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차별, 인종차별, 나라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향한 룻의 일편단심을 보여줍니다. 친정으로 돌아가서 새 남편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고 타이르는 시어머니도 고맙지만, 시어머니를 떠날 수 없다는 룻의 태도도 진한 감동을 줍니다. 룻이 말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룻 1:16-17) 룻이 비록 이방여인이지만, 성서 한 책의 주인공으로 나올 만 합니다. 룻은 나오미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말한다.

룻의 태도는 신앙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나오미는 천하에 의지가지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나오미가 말한 대로, 이스라엘의 특별법인 시형제 결혼법의 혜택을 볼 가능성도 없다. 시형제결혼법은 자식없이 홀로 된 과부를 위해 남편의 형제가 아들을 낳아 죽은 형제의 대를 잇게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이스라엘의 법 중에 최고 상위법이다. 과부가 된 약자를 보호하며 자식없이 죽은 집안도 대를 잇게 해주는 평등사회 유지법이다. 그런데 11-13절을 보면, 나오미의 경우, 자식이 없어서 시형제결혼법을 실현할 조건이 안 된다. 그러자 나오미는 시어머니인 본인이 그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다. 시형제결혼법이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의 생생한 사례가 유다의 아들 오난입니다. 유다의 첫 아들 에르가 악한 소행으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동생 오난은 형수 다말과 결혼해서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난은 자기 아들이 안 되는 것이 싫어서 형수와 동침할 때마다 정액을 땅바닥에 쏟았습니다. 그 행위가 하나님께 악하여서 주님께서는 오난도 죽게 하셨습니다.”(창 38:8-10) 이스라엘의 시형제 결혼법은 이처럼 엄중합니다. 안타깝게도 이제 나오미는 너무 늙어서 시형제 결혼법의 희망도 아예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오미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룻은 나오미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룻은 오직 신심으로 자기 안전을 포기하고 나오미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 억눌리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출애굽의 하나님과 똑 닮은 처신을 했습니다. 할렐루야.

사람이 무엇을 결정할 때, 어떤 이익이나 가능성이 보여서 결정했다면 그것은 인위적인 판단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요즘은 하도 언어도단, 적반하장이 일상화가 돼서 자신의 욕망으로, 자신의 계획대로 다 하면서도 말로는 하나님이 인도하셨다고 기름칠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합니다. 참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검증잣대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 결정이 자기 양심에 정직한가? 도덕적인가? 공동체와 공공의 이익을 구하는가? 입니다. 크게 규정하자면 사람 세상을 위하는 일인가? 입니다. 룻기의 결론에서 나타나듯이 룻의 행보는 이 잣대 모두에 부합합니다. 룻과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나오미와 룻의 연대가 이스라엘의 희망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또한 룻과 보아스의 결혼은 이스라엘 평등사회 유지법인 시형제결혼법을 충실히 준수합니다. 도덕적이고 공공이익을 충족합니다. 나오미와 룻의 연대는 한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민중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길잡이입니다.

의지할 데라고는 야웨 하나님뿐인 민중들, 이 말은 뒤집어 해석하면 세상에서는 의지할 데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잘 보이지 않는 민중이 살 길은 무엇입니까? 어디에서 희망을 만들어 내나요? 바로 민중이 서로에게 기대는 길 뿐입니다. 서로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진정으로 상대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민중은 그러한 삶에서 사는 보람을 발견하고 내일에 대한 희망도 열어갑니다. 무엇보다 지금 사람답게 삽니다. 우리도 룻의 신앙을 따릅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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