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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돌무화과나무를 찾아서
졸저 <하늘나라 운동> 중에서...
2018년 11월 20일 (화) 09:34:53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요한묵시록 3:1-6;14-22, 루가복음 19:1-10 (시편 15)

1 예수께서 예리고에 이르러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거기에 자캐오라는 돈 많은 세관장이 있었는데
3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4 그래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다.
5 예수께서 그 곳을 지나시다가 그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6 자캐오는 이 말씀을 듣고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다. 7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주겠습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9 예수께서 자캐오를 보시며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 19:1-10)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다.”(4절)

예리고 성 안팎에서 일어났던 일화를 듣습니다. 성 밖에서는 비천한 이를 대표하는 소경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고 성안에서는 부패한 이를 대표하는 세관장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지요. ‘티매오’는 ‘불결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자캐오’는 ‘순전한, 의로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티매오는 변화 이전의 모습을, 자캐오는 변화 이후의 모습을 상징하는 이름인 것 같군요.

아무튼 둘 다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다가감으로써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된 이들이지요.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가 군중의 제지를 받는 것처럼 자캐오도 예수님께 다가가는 데 장해를 받습니다. 키가 작다는 것은 여러 가지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장막을 형성하여 예수님을 볼 수조차 없게 만들었습니다. 바르티매오가 악을 써서 군중들의 제지를 뚫은 것처럼 자캐오는 길 가에 있던 평범한 나무를 타고 올라가 그 장애를 극복합니다.

파렴치한이자 매국노요 수전노였던 자캐오였지요. 삶의 목표를 오직 돈에만 두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길을 달려온 인물입니다. 하지만 사회관계에서 보면 사람들이 자캐오의 저택을 바라보고는 오줌도 누지 않을 정도로 소외된 이이기도 합니다. 그의 영혼도 진리에의 갈급함에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그를 환대하시지요.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행동을 하십니다. 그를 불러 가까이 오게 하는 데서 나아가 그의 집에 머무르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진짜배기 사랑인 게지요.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현대판 자캐오로 내몰리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늘 영혼의 피폐함을 절감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다. 또 자캐오처럼 예수님께 더욱 다가가고 싶어도 수많은 사회적·심리적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삶의 족쇄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마다 오늘 복음의 자캐오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자캐오는 주변에 늘 있던 돌무화과나무를 타고 올라가지요. 나를 영적으로 예수님과 떼어 놓으려는 온갖 방해를 피할 방법을 일상의 주변에서 찾은 겁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지요.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지금 삶의 모순에서 빠져나오려 한다면, 보다 민첩하게 예수님께 다가서려 한다면, 아주 특별한 계기가 아니더라도 높은 자리로 우리의 시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 올라서면 나와 예수님 사이에 둘러쳐진 장벽이 무엇인지도 보이고 예수님의 모습도 확연히 마주할 수 있지요. 그리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예수님의 환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변화 이전의 자캐오처럼 영혼의 건조함 속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대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돌무화과나무를 찾아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하여 진짜배기 사랑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내 영혼의 질서를 깨끗이 바로잡는, 참으로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변화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날까요?

자캐오의 변화는 내면의 변화였지요. 오늘 우리도 우리의 나무에 올라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고 내 시선의 변화, 내 마음의 변화를 누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천국의 시선, 하늘 아버지의 시선으로 세상을 달리 보게 되고, 이전과는 달리 행동하게 된다면, 그렇게 구원의 길을 걷게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 졸저 <하늘나라 운동> 중에서 -

   
▲ 혼의 건조함 속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대할 때마다 우리의 돌무화과나무를 찾아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하여 진짜배기 사랑을 만나고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내 영혼의 질서를 깨끗이 바로잡는,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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