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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알았더라면
하나님 아들은 평화 위해 오셨다
2018년 11월 22일 (목) 11:10:44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진밭교 평화기도회(18. 11. 22)
누가 19:41-44 “평화를 알았더라면”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가 예루살렘의 운명을 내다보고 심히 애통해 하는 장면이다. 성전의 외양만 자랑할 뿐,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종교장사꾼들. 그런 장사꾼들과 장단 맞춰서 제 이익만 구하는 성안 지주들. 민중이 겪는 고통과 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한 중산층들이 어떻게 완전히 몰락하는지를 말씀한다.

   

그런데 두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첫째는 예수가 울었다는 대목이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울었다는 대목은 두 군데 뿐이다. 이곳과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 때다. 왜 울었을까? 예루살렘 성과 성 사람들의 비참한 운명 때문에 울었다. 예수가 울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기록에 남긴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권력자를 생각했다. 그들도 민중을 위해 울까? 내 지식의 범위에서는 없다. 카메라 앞에서 우는 연기를 할 수는 있어도 민중의 처지를 가슴아파해서 진짜 우는 권력자는 없다. 이명박이 천안한 사고 때 희생장병 이름을 부르면서 울었지만, 천안함 일처리를 오로지 권력유지와 정치공학으로 한 것을 보면, 그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다.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 의인들을 거명하면서 운 것도 보여주기였다는 것이 그 뒤 기무사 문서에서 밝혀졌다. 보여주기라고 하니까 ‘보여주기의 달인’인 지금 권력자가 생각난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재수없게 들통난 것 일뿐, 다른 권력자도 마찬가지다. 민중의 목숨과 처지에 대해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자들과 비교할 때, 예수는 우는 사람이다. 즉 진짜 사람이라는 묵시다.

특이한 점 두 번째는 예수가 예루살렘의 운명을 말한 대목이다. 예수는 적들이 예루살렘성을 초토화할 것이며 성 안 사람들을 남김없이 도륙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예수 말씀은 예언인가? 사후보도인가? 예수는 주후 30년대를 살았고, 실제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 것은 70년이고, 누가복음은 훨씬 후대인 80년대 이후에 나왔다. 예수의 말씀이 예언이라면 최소한 40년 후를 내다본 것이다. 정말 그런가? 예언은 두루뭉술이 특징이다. 콕 집어 말하는 예언은 없다. 누구든 앞일을 예고할 때는 구체적으로 시시콜콜 예고하지 않는다. 운세를 보는 학문인 주역의 괘도 해석자가 해석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가 말씀하는 예루살렘 성 함락 장면 묘사는 매우 구체적이다. 마치 현장에서 본 것처럼 말한다. “너의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너를 사면에서 죄어들어서,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짓밟고, 네 안에 돌 한 개도 다른 돌 위에 얹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상황묘사를 볼 때, 이건 현장에서 일을 겪은 사람이거나 목격자의 증언이다. 복음저자는 자기들이 겪은 그 비극의 역사를 예수의 입을 빌어서 하는 것이다. 예수의 입을 빌어야 권위가 서고, 메시지의 설득력이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다.

복음저자는 평화를 멀리하는 예루살렘 성을 고발한다. 불의와 모순이 임계점에 달할 때는 모두가 폭삭 망한다. 예루살렘 성전을 말아먹는 종교업자든 거기에 장단 맞춰 잇속을 채우는 부재지주든 한통속으로 돌아가는 소위 침묵하는 다수든, 심지어 아무 잘못 없는 어린아이와 민중까지 로마군대의 칼날에 도륙당한 끝에 뼈속깊이 얻은 교훈이다. 평화를 거절한 댓가가 얼마나 큰 지에 대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증언한다. 평화가 목숨이고 일상이고 밥이라고.

이 정권은 사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꼭 재앙이 닥쳐야 정신차릴 것인가? 아니 이미 재앙은 시작했다. 벌써 사드 때문에 천하보다 귀한 생명 두 사람이 먼저 떠났다. 조영삼님과 조현철님이다. 이 두 분의 산화는 소성리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한 징조이다. 주민들은 일상을 빼앗겼다. 이제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해야 한다. 민중의 고통을 강건너 불구경하는 권력을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하나? 진심으로 권한다. 권력도 민중의 처지와 고통에 대해 눈물을 흘리기를 바란다. 권력을 그 자리에 있게 한 사람들이다. 전쟁은 이천 년 전 예루살렘 성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 땅과 사람의 삶을 통째로 무너뜨린다. 사드가 바로 그런 비극의 원흉이다. 평화로운 소성리에 어느날 강제로 사드 박아놓고 철조망치고 여기는 미군기지라고 떠드는 것 자체가 흉물이다. 남북 간 평화에 그토록 정성을 쏟은 것이 엄한 미국만 좋게 하는 일이 되지 않게 하라. 고통당하는 소성리 민중을 직시하라. 평화를 직시하라. 하나님의 아들은 평화를 위해 세상에 오셨다.(44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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