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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이 땅에서 진리의 증거는 '평화통일과 자주'
2018년 11월 26일 (월) 12:47:17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8. 11. 25) 성령강림 후 스물일곱 번째 주일,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계 1:4b-8, 요한 18:33-37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마침내 황상기씨가 승리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대표인 황상기씨와 삼성전자 사장이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을 맺었습니다. 삼성전자 사장은 병으로 고통받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고, 황상기씨는 “오늘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사과는 솔직히 직업병 피해 가족들에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11년간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 수없이 속고 모욕당했던 일이나 직업병의 고통,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생각하면 사실 그 어떤 사과도 충분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의 사과를 삼성전자의 다짐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약품을 취급하는 노동자들이 백혈병, 암같은 중병에 걸려 죽고 평생 장애인이 되는 산업재해를 외면했습니다. 또 산업재해를 판정하는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 편을 드는 대신 철저히 삼성전자 편을 들면서 반도체 노동자들과 가족을 벼랑으로 내몰았습니다. 황유미씨는 수백 명 희생자 중 한 사람입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스물둘 꽃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황유미씨가 급성백혈병에 걸려서 골수이식 수술을 했는데 회사 과장이 찾아와서 돈 500만원을 주면서 “삼성에 돈이 이것밖에 없으니 이걸로 해결하자”고 말하는 장면은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 뒷자석에서 죽은 딸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장면은 너무너무 슬퍼서 보는 사람 모두가 울었습니다. 이때부터 황상기씨는 생업을 포기하고 딸의 죽음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11년을 싸웠습니다.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는 무려 1023일 농성하면서 반도체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과 회사의 무책임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문제는 사회 현안이 돼서 중재조정위원회를 만들고 중재위의 오랜 노력 끝에 협약식이라는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황상기씨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게 되어 참 기쁘다고 했습니다. 대재벌 삼성을 상대로 어떻게 싸우냐, 법도 제도도 국가기관도 관련 전문가들도 모두 삼성편인데 이길 수 있는가 하는 우려와 회의도 많았지만, 황상기씨와 피해자 가족, 반올림은 불굴의 의지로 버텼고 마침내 정의는 승리한다는 것을 세상에 증거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민중과 노동단체들이 함께 농성장을 지키며 후원금과 물품지원으로 연대했습니다. 승리의 비결이 무엇이냐? 상대가 아무리 세고 크고 막강할지라도 정의와 진실이 포기하지 않으면 이깁니다. 이긴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 긴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길 때 까지 너무 많은 희생이 따르지 않느냐? 등등 두려운 생각도 있지만,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옳은 일에 투신할 때입니다. 하나님나라,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은 2018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까지 주관하신다는 뜻으로 왕이신 그리스도주일입니다. 왕이라는 단어 자체가 권력 용어입니다. 즉 기독신앙과 권력은 매우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권력은 신자뿐만 아니라 사람의 일생을 좌우합니다. 조현철군 추모예식을 위해 고전 15장 부활장을 들여다보다 새삼 발견한 사실이 있다. 성서가 권력에 지극한 관심이 있다는 점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 때가 마지막입니다.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위와 모든 권력을 폐하시고,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넘겨드리실 것입니다.”(고전 15:22-24)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의 부활과 종말이 모든 권력을 폐하는 것과 깊이 연관돼 있습니다. 성서에서 종말 때를 말할 때 꼭 등장하는 말이 그리스도께서 권력을 평정하는 새 나라입니다.

왜 성서는 지상권력에 관심이 많은 것인가요? 성서는 투쟁의 기록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정치권력 아래에서 신앙을 지키려는 ‘생존기’입니다. 성서 이야기들 배경에는 언제나 지상 최고권력인 제국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조인 히브리들이 맞섰던 애굽제국을 필두로, 앗수르제국, 바벨론제국, 메대와 페르시아제국, 로마제국 등 온통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하나님 백성이 야웨신앙과 그리스도신앙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 기록입니다. 지금은 어떤 제국이 있나요? 미 제국이 있습니다. 권력은 하나님 백성의 운명과 신앙에 결정적인 간섭을 합니다. 악한 지상권력은 사람을 비인간화의 끝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니 성서가 권력에 대해 관심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계시록 말씀에서 일곱 영은 하나님 영의 충만함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계획과 활동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칭할 때,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왕들의 지배자라고 고백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권력이나 왕에 대한 집착 때문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역사에서 가장 큰 굴절은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부터입니다. 예수도의 권력은 섬김이고 세상권력은 지배입니다. 예수도와 권력은 완전 상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라고 고백하는 이유는, 너희가 지금은 우리를 모욕하고 몹시 때리고 가두고 죽이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해를 가하고 있지만, 그래봤자 황제의 권력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아래 있다.

최종 승리는 우리에게 있다는 담대한 선언입니다. 오늘 계시록 말씀은 로마제국의 지배자 황제의 탄압을 견디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실 최종 승리의 날을 노래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는 고백은 그리스도인들의 궁박한 처지가 역전될 것을 말합니다. 로마인만이 유일한 나라이고 그들이 믿는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제국에서 그리스도인은 로마로부터 배척당하고, 제국의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로 멸시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에 살지만 나라 백성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하여 참 나라를 이루시고, 우리를 참 제사장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인용한 다니엘서와 스가랴서는 자신들의 처지에 딱 맞는 예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승리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임한다. 그리스도를 찌른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얼마나 가슴 설레는 예언인가요?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그들이 얼마나 간절한 처지인지... 그들은 간절한 열망으로 현세의 박해를 견딥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알파요 오메가”라고 고백하므로, 최후승리가 변치 않을 것을 거듭 다짐합니다. 하나님이 시작했으므로 하나님이 끝낸다는 믿음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말씀도 그리스도인과 지상 권력의 관계를 명확하게 증거합니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받습니다. 빌라도는 황제의 대리인입니다. 유대 지배자들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긴 이유가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31절)라고 말한 것처럼, 로마 황제는 사람을 죽일 권세까지 가졌습니다. 황제는 지상 권세의 종결자인 셈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 10:28)라고 했습니다.

예수와 빌라도의 대면은 예수신앙과 당대권력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관계임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과 빌라도는 영혼이 다른지라, 대화도 계속 어긋납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각각이듯이, 예수님의 나라와 이 세상도 각각임을 암시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한대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예수는 왜 이 세상에 오셨나요? 예수가 말씀합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37절) 그리고 연이은 말씀,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예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길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이 세상을 사는 이유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난 주 목요일 원불교 익산본부에서 성지수호비상대책위가 “원불교 성주성지수호 활동을 반추하다”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했습니다. 동영상으로 봤는데, 한 교무님 토론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분이 원불교 사드철회투쟁의 장단점을 각각 말씀했는데, 단점에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원불교 보수화의 폐단이 국가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국가가 벌인 여러 사례들, 예를 들어 새만금개발, 부안 핵폐기장 사건, 제주 강정, 평택 미군기지, 성주 소성리까지, 큰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원불교 지도부는 국가정책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국가와 교단을 동일시하는 것이 지나쳐서 국가를 상위에 놓고 교단을 하위에 놓는 것을 당연시하고, 국가가 돈으로 교단을 통제하는데 순응한다고 했습니다. 종교는 진리추구가 본연의 자세인데 진리는 놔두고 국가정책을 따르라고 하면 그게 종교냐고 일갈했습니다. 그리고 진리추구는 민중 편에서 세상을 향해 외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원불교 내부를 비판하는 이야기지만, 원불교 대신 기독교를 넣어도 전혀 틀리지 않은 말씀입니다. 사실 기독교는 보수화를 넘어서 우경화가 심각합니다. 희한하게도 목사들조차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극도로 거부하면서 맘몬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큼 관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과 맘몬 중에 택하라고 했지, 하나님과 공산주의 중 택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원시교회 처음모습은 공산주의에 가깝습니다.

국가가 자행하는 공권력 폭력에 대해서는 늘 강건너 불구경이고 무심합니다. 노동자보다는 자본 편을 듭니다. 그리스도교는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일등공신입니다. 교회는 갈수록 진리와는 상관없는 집단이 되고 있습니다.

세속권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국가가 우리의 신앙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이런 현실에서, 나는 어떻게 진리를 증언할 것인가요? 우선 내 신앙의 원천을 보겠습니다. 나는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를 따라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믿음은 나의 확고한 정체성입니다. 이 고백은 나의 지성소입니다. 누구도 이 고백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믿음을 구현할 시대조건은 어떤가요? 우리는 한반도에서 분단된 조국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분단과 동시에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미제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 세월이 무려 7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는 자주를 잃었습니다. 실제로 이 땅은 미국의 식민지가 됐습니다. 평택미군기지는 용산 미군기지의 다섯 배 크기입니다. 우리 땅에 우리 돈 16조원이 들어간 초호화 미국 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평화로운 소성리 땅을 또 사드미군기지로 고정하려고 합니다. 사드는 명중률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왜 배치하려고 하나요? 사드는 한미일이 공조하는 MD체제의 첫 번째 단계로 중국의 군사 활동 탐지를 위한 레이다가 주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권력은 아무 고민없이 이 땅 안보를 미국놈에게 갖다 바칩니다.

분단된 나라에서 미제의 지배아래 있다는 것은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나와 우리 사회의 삶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대조건입니다. 친미반공의식은 우리 사회에 내재된 절대규범이 됐습니다. 이 사회 모든 구성원이 이런 통제된 시대조건 아래에서 삽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러한 시대조건을 시민에게 통제 강요 집행하는 주체는 바로 권력입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나라 모든 권력은 분단과 반공, 친미예속으로 자기 권력을 유지, 행사했습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객관적 조건입니다. 우리 사회 노동문제를 포함하여 오래된 현안의 원인을 파고들면 분단과 미국종속에 맞닿아 있습니다.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은 이 벽을 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1세기 로마 지배아래 있는 조국의 현실에서 민중을 해방하는 하나님나라 운동을 했듯이, 오늘 이 상황에서 평화통일과 자주는 이 땅에서 진리를 증거하는 빠뜨릴 수 없는 지향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냐는 빌라도의 판에 박힌 질문 말고 진짜 진리를 사십시오. 나와 권력이 모두 왕이신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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