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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이면
신앙의 힘,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을
2018년 11월 29일 (목) 12:11:50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요한묵시록 18:1-2;21-24,19:1-3;9, 루가복음 21:20-28 (시편 100)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 도시가 파멸될 날이 멀지 않은 줄 알아라. 21 그 때에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고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곳을 빠져 나가라. 그리고 시골에 있는 사람들은 성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 때가 바로 성서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다. 23 이런 때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 이 땅에는 무서운 재난이 닥칠 것이고 이 백성에게는 하느님의 분노가 내릴 것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질 것이며 포로가 되어 여러 나라에 잡혀갈 것이다. 이방인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예루살렘은 그들의 발 아래 짓밟힐 것이다."
25 "그 때가 되면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지상에서는 사납게 날뛰는 바다 물결에 놀라 모든 민족이 불안에 떨 것이며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무서운 일을 내다보며 공포에 떨다가 기절하고 말 것이다.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러나 그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 너희가 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온 것이다.”
(루가 21:20-28)

   
▲ 희망이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무릎에 힘을 주며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의 힘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 너희가 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온 것이다."(28절)

무시무시한 묵시의 언어들을 접합니다.
파괴와 살상의 참혹한 아수라장을 가감 없이 묘사하는 장면입니다.
오늘 복음의 앞부분만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캄캄할 뿐입니다.
절망적 상황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인간의 초라한 모습만 보이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표현들은 결정적 전환을 위한 상징들로서 사전포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절망을 겨냥하는 것이 아닌 참된 희망을 표출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기원전 2세기 이스라엘은 현실세계에서 도무지 찾을 수 없는 희망을 묵시문학으로 표출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일제 암흑기 때 민족 시인들이,
군사독재 시절 깨어있는 시인들이 상징의 언어로 저항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다니엘서입니다.
다니엘서는 에제키엘서가 사용했던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라는 말을 평범한 인간을 지칭하는 말에서 종말의 초월적 메시아를 지칭하는 단어로 바꾸었지요.
복음서들이 ‘인자’라는 말을 사용할 때 대부분은 다니엘서의 개념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절망적 상황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묵시문학입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파괴된 자리,
재처럼 무상하게 스러져 없어진 자리
바로 그 자리에 초월적 메시아, 곧 하느님께서 결정적으로 임재하신다는 신앙언어입니다.
신앙의 역설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오늘 주님은 마지막에 이처럼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오히려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라 하십니다.
이 모든 답답한 상황을 끝장이 아닌 참된 구원의 표징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희망 없는 곳에서 희망을 희망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의 길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모든 기대가 물거품이 되고 모든 소망이 사라진 듯 할 때
오히려 그 안에서 참된 변화의 기운이 싹트고 있음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신앙인의 안목일 터입니다.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서 생각하면 그 반대의 가르침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나의 부질없는 기대와 욕심들을 다 내려놓은 자리에
비로소 하느님께서 제대로 임재하신다는 믿음이 그것입니다.
나 자신을 향해 수렴되고 있던 온갖 생각들을 다 비워내고
하늘 아버지의 세계, 한 생명을 우주보다 소중히 여기는 세계,
온전히 타인에게 열려있는 세계, 참된 아가페의 세계로 시선을 돌릴 때,
결정적 구원자이신 예수를 만난다는 것이겠습니다.

묵시문학의 종말적 신앙언어 앞에서
나의 죽이고 비울 것을 확연히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고
절망과 의기소침 너머에 있는 참된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절망적 상황에서 오히려 희망의 서광을 꿰뚫어보는 우리이길 바랍니다.
그런 은총이 주님의 마지막 말씀에서 발산됩니다.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 너희가 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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