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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얼굴을 그리라
제 자신 얼굴 속에 어른거리는 예수를 살라
2018년 12월 03일 (월) 16:57:06 김홍한 khhyhy@hanmail.net

나는 안병무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적이 한번도 없고 역시 뵌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모하고 있었지요. 김경호목사님을 통해서 마치 그분을 뵙는것 같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랫만에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기나긴 기독교 예술의 역사를 훑어보면, 예수의 초상화에서 그 시대의 자화상을 읽을 수 있다. 비잔틴시대는 예수를 전권을 거머쥔 황제로, 중세에는 십자가의 고통에 찌든 모습으로, 앵글로색슨 개신교에서는 금발의 멋진 청년으로, 현대에는 남미의 혁명 투사 체 게바라를 닮은 해방자로 각각 그리고 있다. 각 경우마다 예수의 모습을 당시의 문화적 이상형에 맞추어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레슬리 뉴비긴,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268쪽.

   
▲ 김홍한 작, 인류의 십자가 (66cm) 작가설명 : 예수님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공자님은 중국인이 아닙니다. 석가모니는 인도인이 아닙니다. 무함마드는 아랍인이 아닙니다. 성현들에게는 조국이 없습니다. 나도 한국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백인들은 사회진화론에 경도되어 우월한 백인종, 열등한 유색인종으로 분류했고 백인종의 종교인 기독교는 우월한 종교이고 타종교는 열등한 종교로 분류했지만 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모순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구세주라 믿는 예수가 백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열등한 유색인종이라니, 그래서는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도 뻔뻔하게, 너무도 당연하게 예수를 백인으로 만들었다. 1940년 워서 살먼(Warner Sallman)은 <그리스도의 초상>을 그렸다. 전형적인 젊은 백인청년의 모습이다. 긴 금발, 파란 눈, 크고 높은 코, 흰색 피부, 갸름한 얼굴. 유색인종들도 아무 의심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 작품은 무려 5억장이 복제되어 판매되었다. 너무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서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백인들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사람들이 좀 더 현명해 지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학자들은 2000년 전 예수님의 모습은 이랬을 것이라고 공개했는데 검은머리, 검은 눈동자, 덥수룩한 수염, 뭉뚝한 코를 가진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흑인들은 흑인 예수를, 여성들은 여성 예수를, 우리나라의 화공들은 도포입고 갓 쓴 예수님을 그려 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운보 김기창 화백은 예수님의 일생을 30장의 한국화로 그려냈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모두 한복에 큰 갓을 쓴 선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초상을 그리면 안된다.

중국은 龍의 나라, 가는 곳 마다 용 그림을 볼 수 있다. 나는 중국의 龍을 좋아한다. 용은 성인이나 군자, 천자를 상징하는데 중국의 용 이야기에서 중국인들의 민중사상을 보았다.
용은 새끼를 낳지 않는다. 미꾸라지가 용 되고 뱀이 용 된다. 용이 되다 만 것이 이무기다. 날 때부터 용은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용은 대하장강에서 나지 않는다. 개천에서 나고 연못에서 난다. 달리 말하면 훌륭한 인물은 좋은 가문, 좋은 여건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다. 아비가 훌륭한 것과 자식이 훌륭한 것은 별개이다. 망나니 같은 아비에게서 성인군자가 나올 수 있으며 왕후장상의 가문에서도 사람구실 못하는 이들이 나올 수 있다. 역사의 인물들 중 대단한 위인들이 대단한 가문에서 난 이들이 별로 없다.

용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해본다. 나는 용 이야기는 참 좋아하는데 용 그림은 싫다. 무지한 사람들이 감히 용 그림을 그렸다. 상상의 동물로 군자의 상징이고 왕의 상징인 용을 그림으로 그리니 무시무시한 괴물의 형상이 되었다. 굳이 용 그림을 그리려면 머리는 그리지 말았어야 했다. 머리는 구름 속에 감추어 두어야 하는데 용머리까지 그려 놓았다. 그려놓고 보니 악어 주둥이에 돼지 코, 돼지꼬리같은 수염, 사슴뿔을 가진 괴물이 되었다. 周易에는 “无首면 吉하리라.(머리가 드러나지 않아야 좋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본체를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름이 있으되 감히 쓰지 않고 호를 썼다. 아버지, 어머니의 벗은 몸을 보는 것은 큰 죄라 여겼다. 성경에서도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본 ‘함’이 저주를 받았다.

용의 머리를 그린 것 까지도 용서하겠다. 머리는 그려도 눈은 그리지 말아야 되는데 눈도 그렸다. 눈을 그려도 눈동자는 찍지 말아야 하는데 눈동자까지 찍어 넣었다. 畵龍點睛(화룡점정)이다. 그러자 성인의 상징인 용은 죽고 조화 부리는 괴물 이무기가 되었다. 형상화 한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용의 형상도 그러한데 하물며 예수의 모습이겠는가?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이겠는가?

성상과 성화가 신앙에 도움이 된다고? 그럴 줄 알고 서방교회건 동방교회건 수없이 많은 성상을 만들고 성화를 그렸다. 반면 이슬람교와 유대교에는 성상과 성화가 없지만 그들의 신앙은 다른 어느 종교 못지않게 그 열정과 깊이가 대단하다.

안병무선생님께서 “예수의 얼굴을 그리라”는 말씀은 거짓된 예수 얼굴 속에 숨어있는 온갖 거짓을 찢어버리라는 말씀으로 받겠다. 그리고 우리 모두 제 자신의 얼굴 속에 어른거리는 예수를 살라는 말씀으로 알고 –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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