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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에 뉘어있는 구주
나도 하나님나라 여는 먹이가 돼야
2018년 12월 26일 (수) 11:02:08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성탄절 설교문(18. 12. 25)
누가 2:8-20 “구유에 뉘어있는 구주”

구주성탄의 은총이 여러분께 가득하시기를.

1. 복음이란?

오늘 성탄절 복음말씀을 보면, 천사가 목자들에게 구주 탄생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합니다. 어째서 주님은 구주 탄생 소식을 제일 먼저 목자에게 전하나요? 구주 탄생 소식이 뜻이 있으려면,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제일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이 진정 기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구주 탄생 소식이 대제사장이나 율법학자들에게 제일 먼저 전해졌다면 그 소식은 복된 소식이 아닙니다. 민중을 제외시키고 지배세력만 좋아할 뉴스는 복된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지배자가 가공, 유통, 독점하는 소식은 오직 그들에게 유리한 소식이지 않습니까. 참된 소식은 지배자가 아니라 그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이 기뻐해야 합니다. 그게 복음입니다.

   

2. 1세기 노동자와 21세기 비정규 노동자

오늘 복음말씀을 보면, 천사들이 찾아가기 전, 목자들은 밤샘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1세기 노동자인 목자들과 21세기 노동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선 공통점을 보겠습니다. 둘 다 밤샘노동을 합니다. 그 사회 최말단 노동자입니다. 그리고 둘 다 기간산업 노동자입니다. 1세기에는 양이 산업의 중심이고, 21세기에는 전기가 산업의 중심입니다. 밤샘노동이야말로 노동자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노동조건이 돼 버렸습니다.

어제 한겨레신문,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씨 인터뷰 기사내용입니다.

“김용균씨는 야간 근무중이었다. 어머니 김씨도 사고가 난 날, 야근을 마치고 들어와 곤히 잠들어 있다가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김용균씨는 4조 2교대, 어머니 김씨는 2조 2교대로 일했다.” 모자가 다 밤샘노동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게 한국 사회 육체노동자의 환경입니다.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1세기 목자는 일을 하다가 죽지는 않습니다. 21세기 노동자는 일하다가 죽습니다. 1세기 목자는 여럿이 함께 일합니다. 즉 노동을 분담할 수 있고, 뭔 일이 생겼을 때 의논할 수 있고, 위험한 일이 닥쳤을 때 방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 비정규 하청노동자는 홀로 일합니다. 즉 모든 현장상황을 홀로 감당해야 하고 위험한 일이 닥쳤을 때 방어는커녕 죽거나 장애를 당합니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김군도 혼자 일하다가, 전동차와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했습니다. 김군의 작업을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2017년 11월 9일 취업실습생 이민호군도 혼자 일하다가, 음료수 리프트 적재기에 목이 끼어 사망했습니다.

급기야 2018년 12월 10일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김용균씨가 혼자 일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빨려 들어가 사망했습니다. 김용균씨는 밤샘노동에 홀로 노동하는 악조건 속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부 2인 1조 규칙을 어겨서 발생했습니다. 법과 제도가 있지만, 다 공염불입니다. 모든 관심과 목표는 오직 이윤늘리기에만 꽂혀 있습니다. 그렇게 만든 이윤은 누가 가져가나요? 노동자에게는 겨우 살 만큼만 주고, 나머지는 자본이 모두 독식합니다.

태안화력발전소는 지난 8년간 12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28번이나 안전시설개선요구를 했지만 하청노동자의 요구라서 묵살됐습니다. 그러나 원청인 서부발전은 2017년 매출이 4조 2천억원, 영업이익이 3,572억원, 당기순이익이 1,109억원입니다. 자본가의 탐욕을 위해 하청노동자를 벼랑에 몰아넣었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기업의 이윤 앞에 노동자는 살고 죽는 게 그날 운에 맡길 정도로 사람 목숨이 하찮게 돼 버렸습니다. 실정이 이러진대... 지금 우리 생활수준이 옛날보다 낫다고들 하는데 진짜 나은 건지 의문입니다.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노동환경인데 도대체 뭐가 낫다는 것인지... 1세기 노동자와 21세기 한국사회 비정규 노동자 중에 누가 더 인간답게 사나요?

3. 큰 기쁨이 될 소식

1세기 노동자인 목자는 천사로부터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제일 먼저 받았습니다. 21세기 노동자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은 무엇인가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이 되는 것이지만,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서 노동환경을 더욱 좋게 하는 것이고,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만들어서 기업이 이윤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노동자의 인권과 목숨도 귀하게 여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만드는 국회는 지지부진합니다. 22일 추모제에서 제주도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다 죽은 이민호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죽었을 때 수많은 정치인이 법을 제정해서 다시는 이런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다 부도수표라고 분노를 표했습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진 감독기관인 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사고가 나면 희생자와 유가족을 생각하기보다는 기업을 먼저 생각한다고 한탄했습니다. 돈없고 빽없는 집 청춘들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나라를 나라라고 할 수 있느냐고 호소했습니다. 이번에도 김용균 어머니와 노조가 노동청을 찾아갔더니 본청소관이다 지청소관이다 하면서 서로 떠넘겼습니다. 구의역 참사 이후 국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2년 7개월 째 표류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반대자는 자유한국당입니다.

4. 두 명의 구주

오늘 복음은 두 명의 구주가 등장합니다. 한 구주는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입니다. 그는 전쟁과 정복으로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무력의 제왕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구주가 나온다. 11,12절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또 다른 구주의 표징은 로마황제 구주와 극단적으로 대조적입니다.

어떻게 대조적인가요? 알다시피 팍스로마나는 무력으로 세계를 평정하고 구축한 평화입니다. 팍스로마나가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세금징수입니다. 이건 뒷골목을 관리하는 깡패나 나라들을 정복한 제국이나 똑같습니다. 1-7절에서 요셉부부가 고향 베들레헴에 간 이유가 호적등록인데, 호적등록을 하는 까닭은 세금징수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국의 평화는 민중들을 발가벗겨서 독점하는 것으로 유지합니다. 조선말기 백성들이 너무도 무거운 세금토색에 견딜 수 없어서 고향을 버리고 유민이 되거나 타향살이에 들어갔듯이, 이스라엘 민중도 삼중고 세금에 시달리다 못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셉도 그런 배경에서 고향을 떠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조세대상에서 누락됩니다. 제국은 이 사람들까지 남김없이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 모두 고향으로 가서 호적등록을 하라고 강제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반면에 구유에 뉘어 있는 구주의 상징은 무엇인가요? 구유가 뭔가요? 먹이통입니다. 놀랍게도 새로운 구주는 당신이 직접 먹이로 구유 안에 있습니다. 사람들을 발가벗기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자신을 먹고 평화를 누리라고 합니다. 이건 황제구주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일입니다. 놀라운 전복입니다. 구유에 뉘어 있는 그리스도 주님은 로마황제가 구축한 세계를 우스개로 만들어 버립니다. 누가 봐도 구유의 구주가 정의롭고 평등하고 진짜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갓난아기 구유표징은 로마제국의 질서를 역전시키는 여명입니다.

5. 목자들의 능동적인 행위들

그럼, 그 표징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나요? 오늘 말씀의 주체인 목자들을 보겠습니다. 그들의 행동에서 우리가 할 일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목자들의 행동이 매우 능동적입니다. 연속적인 행동이 인상적입니다.

1)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봅시다.” 천사의 말을 맹목적으로 듣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목자들 스스로 아무도 말한 적 없는 베들레헴을 거명합니다. 늘 새로운 구주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목자들은 즉시 천사의 말을 확인하자고 주체적으로 움직입니다.

2) 목자들은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습니다. 찾아냈다는 단어뜻이 뭔가요? 목자들이 베들레헴 집집마다 다니며 아기를 찾으러 다닌 수고가 담겨 있습니다. 한참 수고를 한 후에 찾아낸 것입니다.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신심으로 움직였습니다. 투쟁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여러 난관에 봉착합니다. 투쟁하자마자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만나면 금새 실망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투쟁전선은 소수가 됩니다. 그러나 소수는 신심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습니다.

3) 그 다음은 자기들이 눈으로 보고 확인한 사실, 그리스도 주님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스도 주님이 태어난 일이 목자들의 입을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퍼졌습니다. 목자들이 가만있으면 사람들은 여전히 로마황제 구주의 지배 아래서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서 신음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이 전하는 소식에 다른 구주가 열어주는 세계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습니다.

6. 말씀을 고이 간직하다

민중이 제 숨 편히 쉬는 희망의 세계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요? 일단 그리스도 주님이 갓난아기로 구유에 뉘어 있는 표징을 믿어야 합니다. 마리아를 보십시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고이 간직하고, 마음 속에 곰곰이 되새겼다.”(19절) 흘려버리거나 예사로 여기지 말고 고이 간직하십시오. 마음 속에 곰곰이 되새기십시오. 그렇게 해야 내가 들은 말이 비범한 말임을 알아차리고 반드시 그 말이 실현되는 것을 내가 보겠다. 그 말이 너무도 옳은 말이므로 내가 그 말대로 살겠다는 결의가 나옵니다.

또 목자들을 보십시오.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일이 자기들에게 일러주신 그대로임을 알고, 돌아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찬미하였다.”(20절)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일을 굳게 믿었습니다. 아, 저런 세상이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세상이 반드시 그대로 될 줄로 믿고 그 세상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7. 성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하여 준 소식의 핵심은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다"입니다. 이미 목자들에게는 황제구주가 있습니다. 그러나 황제구주에게 민중은 없습니다. 오직 민중을 대상화하는 탐욕만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저 옛날 애굽에서 오직 지배자의 신만 있던 시절에 고난받는 히브리들을 위해 야웨가 나타나셨듯이, 민중을 위한 구주가 나셨습니다. 이처럼 구주탄생은 현실 세상에 대한 대안이고 전복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복음을 선포한다는 교회에서 황제구주의 방식을 신앙의 척도로 삼는 것은 본질적으로 예수신앙과 맞지 않습니다. 그 방식과 그 철학은 오직 노동자대중을 대상화하고 자기 욕망을 이루는 데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먹이로 내 주신 구주예수를 믿습니다. 황제 구주는 민중을 대상화하지만 우리 그리스도 주님은 당신이 민중에게 대상화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는 나도 하나님나라를 여는 먹이가 돼야 합니다. 옆 사람을 대상화하지 말고 내가 옆 사람에게 대상화가 되십시오. 서로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원하는 자유와 해방, 평등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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