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논평 환경/기술 지역/농업 전통/문화 미디어/사람 정보/게시판
  편집: 2019.6.19 수 18:47
> 뉴스 > 시사/논평 > 칼럼 | 김경호의 경이로운 삶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송년주일 설교문
2018년 12월 30일 (일) 23:01:12 김경호 kim17kh@naver.com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17, 20-21

17.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도 또한 "오십시오!" 하고 외치십시오. 목이 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마시십시오.
20. 이 모든 계시를 증언하시는 분이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기를 빕니다. 아멘. (계 22:17, 20-21)

   


건망증이 심한 선생님이 학생 하나를 불러 커피를 부탁했다. 잠시 후 커피를 빼온 학생을 보고 선생님은 화를 냈다. “아니 이 녀석 왜 늦었어?” “아쭈! 이 녀석, 아부하려고 커피까지 빼왔네.......” 잘 받아먹은 후에 소리쳤다. “아니 아까 커피 빼오라고 한 놈은 어디갔어?”

망년회를 한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노화증상의 하나이지만 때로는 축복이 된다. 아픔을 그대로 기억하면 못산다. 하루밤 자고 나면 잊게 되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다. 올 한해 여러분들도 잊을 건 잊고 새해로 가져가지 말기를 바란다. 예수님도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마태 6:34)고 하셨다. 매일 반복되는 같은 날이지만 왜 섣달 그믐날이 마지막 날이고 그 다음날은 설날이라며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가? 잊을 것, 버릴 것은 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잊을 때는 철처히 잊고, 버릴 것은 철저하게 떠나보내는 것이 내게 약이 된다.

한 해 마지막 날이라 오늘 본문은 성경의 맨 끝 구절로 했다. 예수께서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고 답한다. 이것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부름에 대한 답이다. 17절에 “성령과 신부가 "오십시오!" 라고 하고, 이 말을 듣는 사람도 또한 "오십시오!" 하고 외친다. 그리고 ”목이 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마시십시오.”라는 말씀에 대한 응답이다.

계시록은 치열한 전투의 기록이다. 우주의 전쟁이 벌어진다. 악의 세력, 사탄, 용, 곡과 마곡의 세력을 죽이고 지옥에 던지는 최후의 전쟁에 대한 승리의 보고서이다. 그들은 철저한 응징과 보복으로 처리한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잔인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밑바닥 인생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당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록은 마지막 모든 악을 진멸하고 그들에게 죽음과 지옥으로 심판하였지만 마무리는 최후에 도구로 사용한 사망과 지옥마저도 불속으로 던져 버린다.

13. 바다가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고, 사망과 지옥도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14. 그리고 사망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사망입니다.(계 20:13-14)

바울은 사망이 가장 큰 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죽음과 지옥이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동안 삼켜왔던 죽은 사람들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들은 행위대로 낫낫이 심판을 받는다. 공포스럽던 사망과 지옥도 결국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사망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진다. 그러니 불바다는 영원히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었던 사망과 지옥 자체를 불사른다. 그들은 악한 자들을 벌주고 응징하는 자기 역할을 다해냈지만 새로운 세상에서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첫째 사망은 자연적인 사망이며, 동시에 악인을 벌주기 위한 사망이지만, 둘째 사망은 징벌자체를 불태우고, 사망과 지옥을 불태운다. 즉, 사망을 사망시키며 징벌을 징벌한다.

사망과 지옥 이런 징벌과 관련된 것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필요 없다. 더 이상 무용해서 폐기될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아름다움 마무리인가? 모든 전투의 무기들을 무장해제하고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마무리인 21, 22장에는 보복이나 심판도 없고, 다시는 저주도 없는 세상(22:3)을 그린다. “모두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고 한다. 오직 서로를 용납하는 격려와 찬양만이 있을 뿐이다. 그 나라에는 설교도 필요없다. 기도도 필요없다. 주님이 함께 계신데 기도와 교훈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성경도 필요없고 성경공부도 필요없다. 그리고 우려와 염려 자체가 필요없게 된 세상이 열린다. 이러한 세상은 “보라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는 선언 아래 있다.

그 나라에 없는 것들이 또 있다. 주님과 함께 있을 때 사라지는 것들이 많이 있다.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시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21:22)

성전이 필요 없다. 주님 자체가 거기 계시니 성전이 필요하겠는가? 모두가 거룩하고 모든 곳이 거룩한 곳이다. 하나님과 어린 양 자체가 성전이다. 본문에서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고 선언한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 도시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 땅의 왕들이 그들의 영광을 그 도시로 들여올 것입니다. 그 도시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대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21:23-25)

그 도시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기 때문이다. 해나 달이나 빛을 내는 발광체에서 빛이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빛이 나오며 그와 함께 왕노릇 하는 모든 성도들의 변화된 성품과 인격에서 빛이 나온다.

그러니 밤이 없다. 해와 달과 별에서 빛이 나올 때는 밤, 낮의 구분이 생긴다. 그러나 인격에서 빛이 나오니 그 도성은 밤낮 없이 환하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그러나 이내 그 빛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서 얼굴에 너울을 가렸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성도에게 그 빛이 나온다.

“민족들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닐 것이요”는 구약의 말씀이며 비유적 표현이다. 이제 이런 비유는 무용하다. 인간 밖으로 빛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로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기에 그가 움직이면 빛이다. 그에게서 빛이 나오니 그가 움직여야 주변이 밝아진다. 그가 가는 곳마다 빛 가운데이다.

저마다 빛을 내니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빛이 밖에 있을 때, 밖에서 조명해야 밝아질 때는 필연적으로 그림자가 생긴다. 내 안에서 우러나오지 않을 때, 선한 것이 그 사람 자체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짐짓 꾸며야 한다. 밖에서 조명해야 밝아질 때는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 또한 깊다. 자연스러운 선함이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 아니고, 짐짓 꾸며 그렇게 보이려는 선은 진한 그림자를 남길 뿐이다. 밝기는 하되 그 뒤에 독소를 품었다. 오직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선, 있는 그대로 선하고 감동스러운 진리 자체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은 그림자가 없다.

빛이 안에서 나올 때는 찬란하고 황홀하다. 꽃에서 나오는 색깔은 그 황홀함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 꽃 자체에서 빛이 나온다. 그러나 꽃을 물감으로 그리면 감흥이 떨어진다. 빛을 품은 물감이 있다면 그림의 차원이 달라질 것이다. 안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그 안에 없기 때문이다. 밖에서 덧 씌운다는 것은 그렇게 보이려는 것이다. 덧칠, 회칠, 본래 그런 것이 아니고 보이게 하려고 애쓰는 것은 참이 아니고 그 내면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이란 누구 앞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행하듯 신실하고 일관성 있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앞뒤가 다르지 않고, 이 사람과 저사람 앞에서 다르지 않고, 그 사람 앞에서와 뒤에서 다르지 않고, 나 혼자 품는 생각과 드러내 말하는 생각이 다르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계시록은 자기 안에 진실을 갖지 못하는 군상을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민족들의 영광과 명예를 그 도시로 들여올 것입니다. 속된 것은 무엇이나 그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도 절대로 거기에 들어가지 못합니다....(21:26-27)

사람들은 민족들이 가진 참다운 영광과 명예를 그 도시로 들여온다. 그러나 속된 것, 가증한 것, 거짓으로 꾸며진 것들은 들어오지 못한다. 참되고 진실한 것만이 들어 갈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먼저 진실한 훈련을 해야 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 신경쓰고 나타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실을 찾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속으시겠는가? 그런 척하는 것은 오히려 가증할 뿐이고 죄에 죄를 더할 뿐이다. 악하면 차리리 악한 것을 그대로 보여라. 그렇게 보일 자신이 없으면 진짜 선해져라. 선한 척, 남을 위하는 척, 믿음으로 행하는 척 하지마라. 이렇게 진실로 행하는 도시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런 곳에서는 아무리 자기 자랑을 하고 자기 영광을 드러내도 누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진실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절제해야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난 체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잘한 일을 칭찬하려고 해도 그가 너무 교만해 질까봐 주저하기도 한다. 꼭 지금 나무라지 않아도 되지만 앞으로의 일을 위하여 싫은 소리를 할 수도 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다.

그러나 그 나라에는 모든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참 만이 존재하는데 어찌 칭찬을 아끼랴? 어찌 드러내기를 감추랴?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가능하다. 무한히 인정하고 무한히 칭찬하고 자기 자랑과 영광을 드러내도 모두 흡족하고 만족하다. 언제나 잔치이고 축제이며 항상 감동이고 기쁨인 세상이 그들 앞에 있다. 질이 다른 세상이 활짝 펼쳐있다.

천사는 또, 수정과 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서, 도시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흘렀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다시 저주를 받을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그 도시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도시 안에 있고,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고,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입니다.(22:1-5)

   
▲ 글쓴이 김경호님은 강남향린교회 목사, 사진은 2018년도 마지막 날 밤에 성북구청앞에서 철거민들이 모여 송년예배를 드리고 축도하는 장면이다

에스겔의 성전에서 샘이 솟구쳐서 사방으로 흘러 온 예루살렘을 적셨듯이 이제 참된 성전이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물이 흘러나와 새 도성의 한가운데를 흘러간다. 그 강 양쪽에는 달마다 열매를 내는 생명나무가 열려있다. 창세기에서 인간이 영생할까 두려워 감추셨던 생명나무를 이제 만인에게 공개하신다. 그리고 그 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데 쓰인다. 성도들을 핍박하는 제국, 각 민족들은 자기의 힘을 자랑한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명예와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런 영광에는 그림자가 있다. 그들로 인해 박해받고 희생당하는 민족이 생긴다. 그러나 지금 생명나무 열매로 모든 민족의 오만과 독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병들이 치료받는다. 그리고 성도들의 이마에는 어린양 예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와 동일한 인격으로 변화되었다는 말이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듣고 볼 때에, 이것들을 내게 보여 준 그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고 하였더니, 그는 "이렇게 하지 말아라. 나도, 너나, 너의 동료 예언자들이나 이 책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과 같은 종이다. 경배는 하나님께 드려라" 하고 말하였습니다.(22:8-9)

이 모든 환상을 본 요한은 너무나 가슴이 뛰고 황홀하여서 천사 앞에 엎드려 절하려고 하였다. 그랬더니 천사가 만류한다. 그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높고 낮고, 더 거룩하고 덜 거룩한 등급도 없고 모두가 친구이고 동료이며 동일한 영광아래 있다.

성령과 신부(교회)가 외친다. “오십시오!” 성도들도 외친다. “오십시오!” 목이 마른 사람,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모두 거저 마실 수 있다고 외친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 화답하시는 말씀으로 계시록은 끝난다.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기를 빕니다. 아멘.(22:20-21)

성경의 아름다운 마무리처럼 올 한해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마무리되길 바란다. 마음으로 용서할 사람들을 용서하고 더 이상 징벌과 훈계나 교도도 필요하지 않는 신뢰와 인정함으로 마무리하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 여러분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과 선함과 참됨이 온 누리를 비추길 바란다.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잊을 것은 잊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십시오.
우리는 보이는 것만 신경쓰고 나타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실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척한다고 사람은 속일지 모르지만
어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속으시겠습니까?
그런 척하는 것은 오히려 가증할 뿐이고 죄에 죄를 더할 뿐입니다.
악하면 차리리 악한 것을 보이십시오.
선한 척, 남을 위하는 척, 믿음으로 행하는 척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진리에 있고 그 도시에는 참과 진실만이 존재합니다.

김경호의 다른기사 보기  
ⓒ 새마갈노(http://www.eswn.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완택이 형 잘 가세요
홍천 풍천리 양수발전소 안돼 !
홍천군의 양수발전소 추진 문제점
자연닮기
진실한 사람들
무교회의 진실
스무살의 청춘 비탈에 서다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갤러리 담-SINZOW_ Mystic
비상시, 브레이크 댄스를 추시오
나를 사랑하거나, 더 사랑하거나
비상시, 브레이크 댄스를 추시오
시대를 온 몸으로 산 세 여자 이...
한국교회 지붕 햇빛발전소 설치를 ...
9월 3일(월) 오후2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교...
신재생에너지로 90% 전력공급 가...
독자 설계 잠수함 건조
'남북관계에도 봄이여 오라'
17일 오전 강원 춘천시 신동 일대 논에서 춘천시 농업인단체협...
헬조선을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포천 평화나무농장 생명역동농업 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 384-19, 성도빌딩 5층 | 전화 : 02-747-3191 | 편집인 010-8413-1415 | 제호 : 새마갈노
등록번호 : 서울 아03061 | 등록일 2014.03.24 | 발행인 : 양재성 | 편집인 : 류기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류기석
Copyright 2009 새마갈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esw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