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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판에 새긴 언약
인류가 한 가족처럼 사랑으로 가야
2019년 01월 06일 (일) 22:56:34 김경호 kim17kh@naver.com

마음 판에 새긴 언약
예레미야 31:31-34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과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를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예레미야 31:31-34)

   

올해 세상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세계 곳곳에서 국가주의가 일어나고 있다. 트럼프로 시작된 국가주의가 일본, 중국 등 우리 가까운 주변 국가로 확산되어 가는 중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국가주의는 처음부터 진단이 잘못되었고 거짓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론》(2014)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지난 250년간의 부의 집중과 분배에 관해 연구했다. 그는 자본의 수익률, 즉 주가 상승, 이자, 배당으로 얻는 수익이 경제 성장률보다 높아질 경우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주장했다.

올해 세계의 가장 큰 문제는 빈부 격차의 극대화에 따른 반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동안 자본은 낙수효과, 적하정책(Trickle-down policy)을 주장했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듯이, 대기업이 성장하면 거기서 넘쳐흐르는 부의 효과로 중소기업이나 서민들도 부유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빈익빈 부익부의 결과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세계가 직면한 진정한 위기는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산층은 봉건사회에서 근대 국가로 넘어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계층이고 이들로 인해 민주주의가 꽃 피울 수 있었다. 그런데 작금의 세계는 엄청난 역사의 후퇴이며 역사의 거센 역류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반(反)역사의 물결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것을 되돌리는 데에는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점점 절망감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절대 빈곤율은 14%이다. 영국 런던의 절대 빈곤율은 27%에 이른다. 절대 빈곤율은 자기 자신의 필요한 식료품마저도 구입하기 어려운 층을 말한다. 자기 수입으로는 굶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절대 빈곤층을 면했다고 하더라도 33%는 절대빈곤에 가까운 층이니 50%에 가까운 인구가 절대 빈곤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경이다.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인 미국이 왜 이 모양이 되었나?

미국 안에 잘살던 마을들이 폐허가 되었다. 기업의 해외전출로 일자리가 없어지고 절대 빈곤화되었는데 가려운 곳을 트럼프가 긁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근본 이유가 아니다.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미국에서 1945년에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비율이 93%였다. 그러나 1970년에는 70%로 낮아졌고, 1980년에는 40%로 낮아졌다. 10년 안에 30%가 줄어 부자들이 어머 어마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금융위기 때, 한국은행에서 돈을 찍어서 부도날 기업, 은행에게 투여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가치는 형편없게 떨어졌다. 그때 우리나라의 모든 기업의 가치를 합하면 미국의 맥도널드 정도의 가치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신용이 막히고 부도나고 파산하는 기업들이 즐비했다. 국가에서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여했다. 채권을 발행하고 화폐를 찍어내 이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그때 각종 부실과 비리로 기업을 망쳐 온 기업주들과 은행은 돈 찍어서 지원한 자금으로 기업의 CEO에게 보너스를 두둑하게 안겼다. 국가는 가난해졌고 서민들은 목숨을 끊는 일이 허다했다.

그 때가 나라의 경제구조를 바꾸어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다시 그 모순적인 구조를 되살려 주었다. 만약 국가가 의지를 가지고 공적기금을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기업을 소유해 나가는 기금으로 지원하고 나중에 노동자들이 정부에 갚도록 하는 방식을 취했더라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기업구조를 갖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국가는 자본가들에게 조건을 걸지 않았다. 그러면서 서민들에게는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서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참아내라고 했다. 이런 정책을 우리에게 강요한 것은 IMF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경제 위기가 왔을 때도 비슷한 정책들이 취해졌고 국민들에게는 긴축하기를 요구하는 갈등이 여러나라에서 계속되었다. 유럽의 그리이스, 이탈리아, 작년 일어났던 프랑스의 노란 조끼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는 일반적으로 유류세 인상, 휘발유 세금을 올려서 시위한다고 보도를 하지만 그 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반란의 에너지가 올라오고 있다. 국가는 그들의 부모세대보다 더 가난해진 상황에서 견디라고만 한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시위는 3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전 국민의 75%가 시위를 지지했다.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 지금 잠잠해진 것 같지만 올해도 이 시위는 재연될 것이다. 왜냐하면 근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균형의 체제를 뒤엎는 혁명은 프랑스에서 먼저 일어났다.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이다. 프랑스의 국경에 접해 있는 나라들은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이고, 바다 건너는 미국이 있다. 지금 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제1세게 국가들이 모두 프랑스에 접해있다. 지정학 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인데 지금 여기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으니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기 십상인 셈이다.

이미 빈부격차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졌지만 지금 대로라면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돈 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부지런히 노동을 해서 돈을 벌더라도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자본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결코 따라잡지 못한다. 이 흐름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토마 피케티는 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동시에 부에 대해 매기는 세금(a global tax on wealth)을 신설할 것을 제의했다.

국제적 부에 대한 세금, 부유층에 계속 모이고 있는 돈을 아래로 흩어야 한다. 그것이 부유층에게도 좋은 일이다. 중산층과 빈곤층이 여유를 갖고 구매력을 갖는 일은 경제가 돌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지금 체제로는 돈이 계속 위로 쌓일 수는 있어도 결코 오래가지는 못한다.

그런데 부유층이 그렇게 지혜로울까? 이런 법을 통과시킬 만큼 국민들이 지혜로울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과거에 좋은 선례가 있다. 미국이 대공황에 들어가기 전에 어마어마한 빈부격차가 생겼다.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구매력을 가질 수 없어 경기가 침체되고 대공황이 왔다. 경제가 공황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이 지혜를 모았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거두어 그 돈을 모아서 국책사업을 해서 밑으로 돈을 풀었다. 그때 93%의 세금법을 통과시켰다.

최고의 빈부격차로 인해 사람들이 바닥을 치면서 미국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그 힘이 거대하게 되서 루스벨트에게 갔다. 노동조합은 이 세금 법을 통과시키고 정책을 실시해 달라고 압박했다. 거대 노동조합의 힘이 루스벨트를 당선시키고 대 개혁을 이루어냈다.

루즈벨트 이전에 상위 10%의 국민이 전체 국가가 가진 50%의 부를 차지했다. 불평등이 이 정도로 심화되자 대공황이 왔다. 그러나 루즈벨트의 개혁 이후에 상위 10%의 부가 30-35%정도로 낮아져서 미국 경제는 몇 십년간 호황을 누렸다. 결과적으로 부자들에게도 엄청나게 도움이 된 세이다. 그러나 1970-80년대 이후로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지기 시작해서 마침내 10%의 부자들이 다시 50%에 이르는 부를 차지하게 되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왔다. 그러나 개혁은 없었고 기업가에게는 생돈을 베풀고 서민들에게는 긴축을 요구하는 정책이 계속되었다. 지금은 상위 10%가 국가 부의 52%를 넘기고 있고 이대로라면 앞으로 계속 심화될 예정이다. 혁명 전야인 셈이다.

사람들이 힘들기는 한데 이런 이유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민자 땜에 못살게 되었다는 선동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이유가 아니다. 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자본과 언론이 자꾸 다른 이유를 대면서 사람들의 눈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거짓을 선동하는데 각종 머리를 짜낸다. 그들은 거짓을 만들어내는 싱크 탱크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눈이 멀도록 선동, 선전한다. 이것은 다 같이 멸망으로 가는 길이다. 지금 한국의 언론이 그 모양이다.

그러나 지배자들이 주도적으로 빈곤과 빈부격차의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프랑스 혁명과 같은 상황이 오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수년간 콩코드 광장에 설치된 단두대에서 1600여명이 넘는 지도층들의 목이 잘려 나갔다. 시민들이 보는 가운데 무서운 공개 처형이 있은 다음에 오늘의 자유, 평등, 박애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박애가 사랑인데 사랑이 그렇게 말랑말랑한 것만은 아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하나님의 심판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해방을 준비시키면서 또 다른 쪽으로는 파라오를 강퍅하게 만드신다. 강퍅케 하심은 그것 자체로 심판이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은 스스로 돌이키기 어렵다. 한 쪽을 강퍅하게 하시는 것은 또한 동시에 새로운 세대를 준비시키시기 위한 것이다.

다시 그런 반란이 일어나면 부유층은 엄청난 공포를 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개혁할 수 있을까? 이 혁명의 물결은 한번 불타면 매우 빠르고 강렬하게 전파된다.

200만 명이 일어난 촛불혁명이 마지막이 아니다. 지금 방향을 잘 잡고 서민들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지 못한다면 밖에서 불어오는 반란의 거센 열기가 횃불처럼 거셀 텐데 아마 촛불 정부도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한번에 훅 가는 수가 있다. 물론 국민들이 보수 세력에게 어부지리가 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촛불정부가 갈지자 행보를 한다면 경제문제에서 진보성향의 정당이 갑자기 급성장할 수 있다.

적당한 눈가림으로 지금 세계인들이 가진 절망감을 주저앉힐 수는 없다. 근본 해결이 없는 눈가림은 오래 갈 수 없다.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월가 점령 시위가 사라진 것 같지만 흐름으로 보아서 계속 올라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우리에게 물질의 풍요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깨어남이 같이 따라야 한다. 우리들 마음의 밭에 하나님께서 심어주시는 법을 받아야 한다. 내 고집대로 앞으로 달려가다 보면 자기가 얼마나 잘못 왔는가가 보이지 않는다.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간만큼 거꾸로 되돌아 가야한다. 그럴 때 나아가기를 멈추고 내 방향이 맞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지혜가 부족하면 멈추고 하나님의 지혜를 청해야 한다. 가만히 멈추어 살펴보면 보일 수 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 판에는 하나님의 법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류가 한 가족처럼 사랑으로 가야한다. 같이 풍요로워지지 않고 나만 누리겠다고 하는 것은 내 머리 위에 숯불을 쌓는 것과 같다. 한 사람 한 사람들이 힘없고 당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세상에 무엇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도 바꾸고 세상도 바꿀 수 있는 주체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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