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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다, 종철아 !
박종철 열사와 나는 인연이 깊다
2019년 01월 13일 (일) 18:14:35 박철 pakchol@empas.com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라는 대학생이 공안당국에 붙잡혀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받다가 죽임을 당했다. 나는 그 시절 강원도 정선에서 첫 목회를 할 때였다.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다니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매일 낮 정오에 분이 풀릴 때까지 종을 치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시라. 예배시간을 알릴 때나 종을 치는데, 예배시간과 관계없이 종을 치다니. 나름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었다고 할까. 그때 동네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아마 미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으로도 분을 삭일 수가 없어서 <박종철 열사 신구교 추모기도회>를 계획했다. 마침내 경찰의 방해공작을 뚫고 추모기도회를 진행했고, 그 일로 나는 운동권 목사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그로부터 어사지간 32년 세월이 강물처럼 지나갔다.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30대 초반이었던 내가 이제 60 중반이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 오후3시 민주공원에서 박종철 32주기 추모제와 박종철 문학상 시상식이 열린다. 그리고 같은 시간 서울에서는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고문을 받다가 숨진 남영동대공분실 그 역사의 장소에서 추모제가 열린다. 박종철 합창단도 출연하는데 나는 오늘 울 좁은길교회 창립5주년기념예배인도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민주공원 추모제에 참석할 계획이다.

박종철 열사와 나는 인연이 깊다. 박종철 열사로 인해 내가 운동권 목사가 되었고, 울 장모님 권채봉 여사는 박종철 열사 부친 박정기 선생을 민주화유가족협의회에서 만나 돌아가실 때까지 두 분이 매우 친하게 지내셨다.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선생은 울 처남 김의기 열사 대학 후배이고 지금 김의기 열사 추모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울 둘째 아들 의빈은 박종철 모교인 혜광고등학교를 나왔고, 지금 나는 박종철 합창단 부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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