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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 되는 날에
주현절 후 두 번째 주일 설교문(19. 1. 20)
2019년 01월 21일 (월) 14:45:33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현절 후 두 번째 주일 설교문(19. 1. 20)
요한 2:1-11 “사흘째 되는 날에”

오늘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꼭 십년 되는 날입니다. 그 날 이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드디어 이명박이 국민을 향한 테러를 시작했구나!” 생각했습니다. 2009년 1월 20 새벽, 경찰이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을 강제진압해서 일어난 참극입니다. 신나가 가득한 건물에서 경찰이 무리하게 철거민을 몰아붙이다가 원인모를 불이 났고, 그 와중에 철거민 5명이 맞아 죽거나 불에 타 죽었습니다. 또 불이 붙은 건물에서 떨어져 여러 사람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특공경찰도 한 명 죽었습니다. 국민의 생존권과 행복권에 대해서는 털끝만치도 개념없는 이명박과 출세욕에 눈이 먼 경찰청장 내정자 김석기의 합작입니다. 권력자가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밑에 있는 공무원 수족들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나타납니다. 수족들은 놀라울 정도로 기민하게 권력자의 의중을 반영합니다.

   
▲ 사진출처_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페북사진 중에서

오세훈이 주도한 한강 르네상스라는 도심재개발 사업을 등에 업고 조합이 세입자들의 재산과 권리보전없이 용역을 동원해 폭력과 온갖 못된 짓으로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해서, 철거민들은 견디다 못해 할 수 없이 남일당 건물 망루에 올랐습니다. 대화하자는 마음으로 망루에 올랐는데 정권과 기득권언론은 이들에게 도심테러범이라는 누명을 씌웠습니다. 그리고 24시간도 안돼서 공권력을 투입했습니다. 살고자 했던 철거민들은 졸지에 목숨을 잃고 살아남은 가족들은 2009년 1월 20일 그날 시간이 딱 멈춰버렸습니다. 이들은 1월만 되면 예전 기억이 그대로 되살아납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불안한 심정이 계속 되고 잠도 잘 안 오고, 괴롭다고 합니다.

1월 15일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일군들은 국회에서 기습 기자회견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김석기가 있어야 할 곳은 국회가 아닌 감옥, 용산참사 책임자 김석기를 제명하라”고 외쳤습니다. 유가족들은 그 날 이후 십년을 거리에서 헤매는데 김석기는 되레 출세 길만 걸었습니다. 경주에서 출마해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김석기 뿐만 아니라,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찰과 검찰담당자들이 다 승진가도를 달렸습니다.

유가족과 진상규명위원회는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재발방지대책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도,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진상조사도 감감합니다. 국회에 강제퇴거금지법을 발의했지만 한 번도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요? 한국사회가 부동산과 토건 위주의 경제성장을 한 까닭에 부동산 카르텔이 강고합니다. 여기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도 연루돼 있습니다. 정치의 무능과 태만으로 인해 도심재개발사업은 악습을 거듭 반복하고 있고, 작년 12월에는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씨가 집에서 쫓겨나 빈집을 전전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용산참사 후, 십년이 흘렀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노동현실도 그렇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몸을 던졌지만, 그로부터 50년이 다 지난 현재도 김용균 같은 비정규노동자들의 참극이 계속 발생합니다. 이 사회가 과연 지속가능한 체제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합니다.

한편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제주 4.3 때 억울하게 죄인이 된 사람들은 평생 맺힌 한을 풀었습니다. 1월 17일 제주지방법원은 4.3 수형인 18명이 낸 재심재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했습니다. 이들은 4.3때 영문도 모른 체 끌려가서 죽도록 맞고 고문당하고 군사재판에서 1-20년씩의 형을 살았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이들이 어떠한 공소사실로 군법회의를 받게 됐는지 확인할 공소장이나 판결문이 없으며, 피고인들도 자신들이 어떠한 범죄사실로 재판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군법회의는 한 달도 안 되는 매우 짧은 기간 동안 무려 2,500여명을 재판했습니다. 단기간에 다수의 사람을 재판에 회부하면서 예심조사나 기소장 등본 송달 절차 등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형사소송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미 연세가 80~90이 된 어르신들은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고 잘 수 있게 됐다고, 자손들에게 떳떳하다고 기뻐합니다. 한국 사회 어느 면을 들추더라도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로 인한 상처와 한이 곳곳에 서려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의 역사 뒤에는 미국이 있습니다. 역사의 질고에서 여전히 고통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신원하는 일이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본문에서 첫 말씀을 제목으로 잡았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 요한은 왜 이 말을 했나요? 이 말은 무슨 뜻인가요? 어느 개그맨 말처럼 “아무 의미없어” 인가요. 무언가 중요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동안은 고민하지 않고 지나쳤습니다. 오늘은 이 첫 표현을 우선 잘 해석하는 게 순서라는 생각입니다.

책에는 서문이 있습니다. 서문이 책 맨 앞에 있어서 제일 먼저 쓴 글 같지만 실은 아닙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맨 나중에 쓰는 게 서문입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서 책의 취지와 전체 내용을 압축합니다. 독자는 서문을 통해 이 책을 왜 썼는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대충 감 잡습니다. 복음서마다 복음서의 성격을 압축해서 독창적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경우는 1장 1-28절까지입니다. 마태는 5-7장의 산상수훈입니다. 누가는 4:16-30의 나사렛 회당 이야기입니다. 복음저자는 이 대표적인 말씀에서 예수가 어떤 분인가를 증언합니다. 또 예수가 이 세상에 무엇하러 오시는지에 대해 제시합니다.

이런 취지에서 오늘 말씀인 가나 혼인잔치는 요한이 대표적으로 증언하는 예수의 핵심모습입니다. 요한은 예수의 첫 표징인 가나 혼인잔치가 매우 특별한 날에 일어났음을 강조합니다. 어떻게 강조하나요? 바로 ‘사흘째 되는 날’입니다. 이 말이 돋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2장 앞에 있는 1장 29절, 35절, 43절 첫 단어가 무엇인가요? ‘다음날’입니다. 요한은 계속 ‘다음날’ 하다가 오늘 본문에서는 ‘사흘째 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이라고 한 데에는 ‘다음날’과 다른 무엇이 있다는 암시입니다. 무엇인가요?

사도신경을 보겠습니다.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즉 오늘 말씀, ‘사흘째 되는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지 사흘째 되는 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인 금요일에서 사흘째인 일요일 즉 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일은 특별합니다. 그래서 율법이 골수에 박힌 유대그리스도인들이지만, 주일의 뜻이 너무 커서 안식일 대신 주일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은 주님이 부활한 날이고, 죄와 율법에서 해방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과 죄와 율법에서 해방된 날을 상징하기에 혼인잔치만한 게 없습니다. 가나혼인잔치는 바로 그런 배경에서 등장했고, 그 뜻을 밝히기 위해 서두에 ‘사흘째 되는 날’이라는 은유를 넣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혼인잔치에서 술이 떨어졌는데, 예수께서 표징을 행하사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잔치를 계속 살린 일입니다. 혼인잔치는 기쁨 종합세트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대표 상징입니다. 기쁨, 풍요, 재회, 포용, 용서가 한 데 어우러집니다. 모두에게 기쁜 날입니다. 그런데 사달이 났습니다. 술이 떨어졌습니다. 잔치에서 술이 떨어지면 어떡하나요? 잔치가 파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혼인잔치는 일주일을 지속합니다. 잔치가 끝날 무렵에 술이 떨어지면 다행이지만, 잔치가 한창인데 술이 떨어지면 혼주는 매우 불명예스럽게 됩니다. 혼인도 축복과 기쁨이 사그러질 게 뻔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음을 받고 구원을 얻어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은총으로 새 세상을 구현하자는 이상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복이고 기쁨입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연고로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면 그동안 살아온 게 얼마나 허망합니까. 출애굽해서 자유를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생활이 좀 어렵다고 해서, 애굽생활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해방역사를 부인하는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어둠의 역사에서 구출받아 잔치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값지게 사십시오.

예수께서 표징을 행한 포도주의 원천은 물 항아리입니다. 물 항아리의 용도는 정결예법입니다. 사람이 외출했다 들어오면 손과 발을 씻어서 부정을 제거하는 예법입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 좋은 법을 지배세력은 지배수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정결례법은 안식일법과 더불어 사람을 옴싹달짝 못하게 옭아매고 정죄하는 수단이 됐습니다. 물 두세 동이 들어가는 항아리 여섯 개가 있다는 것은 그렇게 수도 없이 많은 정결 규정이 사람들을 덮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암시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 많은 물을 간단하게 포도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을 숨 못 쉬게 막아버리는 물이 사람들을 무한 기쁘게 해 주는 포도주가 됐습니다. 잔치에 온 사람들은 질 좋은 포도주가 계속 나오므로 경위는 모르지만 모두 기뻐합니다. 하나님나라가 그렇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 선행으로 많은 사람이 그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게 하나님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생각할 대목이 있습니다. 마리아와 예수의 대화입니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술이 떨어졌다고 말합니다. 즉 해결책을 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는 말하기를 아직 내 때가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예수는 당신의 첫 표징의 때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올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사양의 뜻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지시하고 결국 예수는 어머니의 청을 따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나요? 때라는 게 특정돼 있지 않습니다. 어느 날 몇 시 어떤 일이라고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민중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때가 바로 그 때입니다. 혼인잔치에서 술이 떨어진 일이야 말로 사건입니다. 자유와 해방이 되레 신음과 어둠으로 돌아가 버리게 된다면 그 때가 바로 일할 때입니다.

예수는 마리아의 말투, 눈빛과 태도에서 바로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때를 수정했습니다. 마리아의 지시를 받은 일꾼들은 예수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항아리에 물을 담고 또 그 물을 잔치맡은 이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자기 생각, 판단이 있을 테지만 “그들은 그대로 하였다.”(8절) 그러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뜻을 함께 하는 민중이 서로 마음을 뭉쳐서 자신들의 필요를 해결해 갈 때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사흘째 되는 날은 사흘이 와야 한다고 열망하는 사람들의 분투에 따라 성사됩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십년이 지났지만, 국가폭력으로 자신들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지만,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절망하더라도 다시 일어났습니다. 길바닥 인생이 됐지만, 가족의 원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또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불의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자기들에게 주어진 숙명을 감당합니다. 전재숙 어머니는 참사 때 남편을 잃고 아들은 남편을 죽게 했다는 판결로 4년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전재숙 어머니는 그 심정을 고스란히 안고 오늘도 거리에서 외칩니다. 어제 노동자 집회에서 민주시민 여러분이 원군이 돼주셔서 지금까지 버텼다고 말씀했습니다. 온갖 출세를 한 김석기는 불의의 대명사가 됐고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어머니들은 세상을 밝히는 희망이 됐습니다. 민중이 서로 마음을 뭉치는 한,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김용균의 어머니는 제2의 이소선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면담까지 거절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당당하게 외칩니다. 홍기탁 파인텍 고공농성자는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우리 싸움의 돌파구는 김용균 어머니가 완강하게 버텨주셔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열릴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분들 모두 우리의 푯대입니다. 이분들을 보고 분발하십시오. 현실의 어둠을 뚫고 나가 사흘째 되는 날의 기쁨을 맞이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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