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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배신한 대심문관과 우리 차이
책, '까라마초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나를 읽다
2019년 01월 22일 (화) 17:43:16 김홍한 khhyhy@hanmail.net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 그가 쓴 <까라마초프가의 형제들>, 그 중에 가장 백미라 할 부분이 2부 5편에 나오는 ‘대심문관’이다.

   

15세기 종교재판이 무섭게 진행되고 있던 시기 남부유럽의 에스파냐의 세비야에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번개가 동쪽에서 서쪽까지 번뜩이는 것처럼 권능가운데 강림하신 것이 아니었다. 2천 년 전 갈릴리 호숫가를 거니시던 그 모습으로 오셨다. 세비야 중앙 광장에는 웅장한 화형대가 세워져 있었고 바로 전날 그곳에서는 거의 1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던 때였다. 화형식은 왕과 대신들, 그리고 귀부인들, 세비야의 수많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심문관인 추기경에 의해 집행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매우 조용하게 오셨지만 누구든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분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분은 몰려든 대중을 축복하셨고 그의 몸은 물론 옷자락에 닿기만 해도 병이 치유되었다. 어릴 때부터 장님이었던 한 노인이 ‘주님, 저를 치유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주님을 뵐 수 있겠습니다.’ 하자 그의 눈이 떠졌고 그는 주님을 볼 수 있었다. 성당입구에서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가는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를 2천 년 전 그 때처럼 ‘달리다 쿰’이라 말하시며 살려내셨다. 그 분을 따르는 민중들은 주체할 수 없는 감격으로 비명을 지르고 흐느껴 울었다.

그 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대심문관이 그 장면을 목격하였다. 구십세의 고령이었지만 큰 키에 꼿꼿한 모습을 잃지 않았고 그 눈에는 불꽃과 같은 광체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바로 어제, 화형식을 집행할 때의 그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추기경 복장 이었으나 지금 그의 모습은 낡아빠지고 허름한 승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소녀를 살리시는 모습을 쭉 지켜보던 대심문관은 그의 수행원들에게 그리스도를 체포하라고 명령하였다.

그 날 밤, 대심문관이 감옥으로 그리스도를 찾았다. 그가 그리스도께 한 말은 대충 이런 말이었다. - 작품 속에서는 장황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나름대로 짧게 요약했다.-

“도대체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방해하러 오셨습니까? 묶고 풀 수 있는 권리는 당신에 의해서 교황에게 전달되었고 따라서 지금은 모든 것이 교황의 손에 달려 있으니 당신은 올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바로 빵의 이름으로 당신께 반기를 들고 일어나서 당신과 싸워 이길 것입니다. 당신은 천상의 빵을 약속했지만 지상의 빵에 비길 수 없습니다. 당신은 모든 인간들이 확실히 당신 앞에 경배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빵을 거부했습니다. 천상의 빵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빵보다 더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빵을 주면 인간은 경배할 것입니다.
당신은 저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하였지만 저들은 우리에게 차라리 노예로 삼아도 좋으니 빵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의 이름으로 빵을 줍니다.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우리는 당신의 편이 아니라 악마의 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이 아니라 악마와 함께 했습니다. 내일이면 당신은, 내가 손끝을 까딱 하기가 무섭게 당신이 우리를 방해하러 왔다는 이유로 당신을 태워 버릴 저 장작불에 뜨거운 석탄을 집어넣기 위해 달려들 저 온순한 양떼를 보게 될 것입니다.”

대심문관의 말에 그리스도의 대답은 없었다. 다만 그리스도는 노인에게로 다가가 아흔 살 먹은 그 핏기 없는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추었다.

대심문관은 문을 열고 그리스도에게 말한다.

“어서 가시오.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시오. 절대로 오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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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약속한 것은 자유이고 천국이고 평화인데 악마가 약속해 주는 것은 세상의 빵과 안정이다. 똑같은 약속을 오늘날 악마의 하수인들이 한다. 경제를 풍요롭게 하겠다고 한다.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겠다고 한다. 자유는 불안이요 혼란이니 복종함으로 안정을 얻으라 한다.

대심문관의 이야기가 단지 소설속의 이야기일까?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을 빌어 현실을 고발했다. 주님을 배반하기는 대심문관이나 우리나 일반인데 다른 점이 있다. 소설속의 대심문관은 자신이 배반자라는 것을 안다. 대중들에게는 신의 대리자요 신에게는 배신자임을 숨지기 않는다. 그러나 대중들은 역시 자신들도 배신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른다. 그리고는 마치 유다처럼 “나는 아니지요?”한다.

오래전 읽은 <파우스트>가 생각난다. 파우스트, 영혼을 판다. 한때 내가 삶의 괴로움을 질겅질겅 씹고 있을 때, 나의 지식, 젊음, 소신도 팔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때 나의 생각은 매우 끔찍한 생각이었다. 혹 악마일 수도 있는 누군가가 내 뜻을 알고 아주 작은 손짓만 했더라도 나는 그의 하수인이 되었을 것이다. 빵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나를 알기에 나는 감히 “나는 아니지요?” 할 수 없다.
다행히 아무도 나를 사 주는 이는 없었다. 그 만큼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이다. 때로는 무능함이 자신을 보존할 수 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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