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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속한 사람들
주현절 후 일곱 번째 주일 설교문
2019년 02월 26일 (화) 16:55:38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9. 2. 24) 주현절 후 일곱 번째 주일
고전 15:42-48 “하늘에 속한 사람들”

지난 주 월-수 예수목회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예수목회세미나는 역사 예수의 삶을 목회현장에 적용실천하자는 취지로 만든 모임입니다. 한국기독교연구소가 주관한 지 올해 14회째고 나는 11회째부터 참석했습니다. 한국기독교연구소는 스퐁, 크로산, 마커스 보그 등 평생 역사적 예수를 탐구한 학자들의 책을 집중 소개해 왔습니다. 이 출판사 부설인 <생태문명연구소>에서 이번에 『분단체제에서 예수살기』을 냅니다. 예수목회세미나가 추구하는 지향을 주보 글에 실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교회답게 하기 위해 어떤 신앙을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문자주의와 천당-지옥의 패러다임을 극복하여 역사를 향하여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답변을 하는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까? 자본의 욕망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진정한 복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미국제 번영의 복음을 극복하고 교리를 넘어 역사 안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으로 역사예수 신앙을 추구합니다.

   

예수목회세미나 일정에는 주제강연, 예수목회특강, 시대읽기, 교회읽기 순서가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 분야 전문가를 모셔서 강연을 듣습니다. 혼자만 알기에는 아까운 내용입니다. 그래서 작년에도 그랬듯이, 올해도 예수목회세미나 강연 내용을 요약압축해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주제 강연은 “한반도 평화와 교회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했습니다. 정 장관은 본인이 오랫동안 통일부 관료와 장관으로 북한을 상대해 왔기 때문에 특히 북한의 권력실무자들을 잘 압니다. 그가 경험한 비하인드 스토리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예를 들자면, 지금 북한의 내각총리가 박봉주입니다. 정치국 상무위원도 겸하는데, 북한권력서열 4위입니다. 이 사람이 장성택의 적극 추천으로 총리가 됐는데 정작 장성택이 숙청당할 때는 제일 앞장서서 비판한 공로로 김정은의 신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권력세계는 언제나 어디서나 비정합니다. 하여튼 박봉주가 지금 북한의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 2002년 10월 총리되기 전 고위관료였을 때, 경제사절단 이름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정장관이 담당자로 가까이 대면했는데 계속 재래시장을 보고 싶다고 해서, 동대문시장에 갔더니, 상인들에게 쉬지 않고 질문을 하더랍니다. 시장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북한에 장마당이 섰다고 합니다. 지금 북미 협상라인이 김영철 폼페이오에서 김혁철과 비건으로 바뀐 것은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을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배치이며, 베트남 회담은 빅딜로 가는 얼개를 합의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나는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이 분이 한반도현인이라는 별명답게 여러 매체에 나가는 고로, 지금 한반도 평화정세에 따라 사드는 철거하는 게 맞다는 이야기 좀 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매체에 나오는 많은 전문가들이 북미관계,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실컷 말하는 데 정작 사드에 대해서는 없는 자식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장관은 사드가 대 중국 방어용이라면서 다 아는 이야기를 한참 했습니다. 나는 그의 답변을 통해서 목요일 기도회에서 말한 것처럼, 소위 전문가들의 입장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들은 주류담론을 유지하는 데 골몰할 뿐, 그런 일을 통해 자신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할 뿐, 정작 민중들의 신음이나 고통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는 것을. 결국 사드철거는 깨달은 민중들의 주체적인 의식과 실천뿐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예수목회특강은 연세대 교목인 한인철교수가 했습니다. 주제가 흥미로웠습니다. “장례예배 설교,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입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장례예배에도 역사예수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반적인 장례예배 설교의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 이후 천당에 가고,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은 고인은 천당에 갔을 것이며, 살아 있는 이들도 예수 믿으면 천당 가서 고인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큰 틀입니다. 이런 신앙 전제에서 부활, 영생은 무엇인가요? 부활은 이 세상에서 죽은 이는 모두 저 세상에서 다시 살아나며, 영생은 저 세상에서 다시 살아난 이는 다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예수 믿은 이는 부활하여 천당에서 영생하고, 예수를 믿지 않은 이는 부활하여 지옥에서 영생합니다. 이 내용이 우리가 그동안 절대적으로 믿고 고백해 왔던 천당, 부활, 영생 개념입니다.

우선 이 사상이 등장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적 역사관은 신명기 역사관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거역하면 화를 입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역사관에 큰 시련이 왔습니다. 기원전 160년대 그리스제국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폭력통치가 이스라엘을 덮쳤습니다. 성전에서 예배하고 율법을 준수하면 사형에 처합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폭력지배와 이스라엘이 겪은 수난과 저항한 내용은 마카베오서에 자세히 나옵니다. 안식일준수를 금하고 모든 축제를 금하고, 성전제단에 돼지고기를 바치고 유대인에게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하고, 불응하면 죽이고... 그 결과, 성전과 율법을 버린 유대인은 살고, 율법을 지킨 유대인은 죽었습니다. 신명기 역사관과 완전 반대결과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자연히 신명기 역사관에 큰 회의가 옵니다. 다니엘서는 그 상황에 대한 한 대답입니다. 바로 부활과 영생 사상입니다. 율법을 지킨 자의 복과 거역한 자의 화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 저 세상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킨 자는 죽은 다음 부활하여 영원한 복을 누리고 율법을 거역한 자는 죽은 다음 부활하여 영원히 화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유대교의 신명기 역사관이라는 전통사상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시대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활영생사상이 나왔고, 그 부활영생 사상이 기독교의 교리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부활영생 역시 절대적인 무엇이 아닌, 시대상황의 산물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역사예수 연구자의 부활이해는 다릅니다. 예수 부활의 장소는 이승인가요? 저승인가요? 이 세상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부활하는 시기는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때입니다. 예수의 영생은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따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한, 예수는 그 사람들 속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 이후에 부활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도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마 22:32) 고인이 생전에 다음 세대에 기억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았을 때에만 부활 영생은 가능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은 후 곧 잊혀지고, 그 삶을 이어가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 부활과 영생은 끝납니다. 그러므로 역사예수의 부활이해에 기반한 장례예배 설교는 고인의 저 세상에서의 부활영생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부활과 영생에 관해 말합니다. 이것이 예수목회의 부활영생신앙입니다.

이 생생한 사례가 있습니다. 정일권총리와 문익환목사님입니다. 두 사람은 완전 동년배입니다. 태어난 해도 일 년 차이고(17년, 18년), 세상을 떠난 날도 하루 차이입니다. 정일권은 1994년 1월 17일이고 문목사님은 18일입니다. (문익환목사님 돌아가셨을 때, 그 전 날 정일권도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정일권의 죽음은 완전 묻혔습니다.) 두 사람의 삶을 대조해보죠. 정일권은 박정희와 함께 꽃길만 살았습니다. 외무부장관과 총리, 국회의장 등 최고 권력 자리에 있었습니다. 평생 박정희 독재에 부역자로 살았습니다. 문익환목사님은 완전 반대되는 생을 살았습니다. 1976년 3.1구국선언으로 세상에 등장해서 94년 돌아가실 때까지 18년 동안 절반이 넘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평생 이 땅의 민주화와 노동해방, 조국통일에 당신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부활영생은 어떤가요? 지금 정일권을 기억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생에서 정일권의 부활영생은 없습니다. 반대로 문목사님의 삶과 죽음은 민주시민 모두가 애도합니다.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 속에 부활하고 살아서 영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예수의 부활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이 생에서 예수를 진실히 따르는 삶이 부활이요 영생임을 알아서 그 믿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시대읽기에서는 노동전문가 하종강씨가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강연을 했습니다. 하종강씨는 드라마 송곳의 실제모델입니다. ‘송곳’은 2015년 10월-11월, JTBC에서 인기 방영한 노동주제 드라마입니다. 하종강씨 강연듣고 우리는 모두 깊은 탄식을 했습니다. 왜?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이 너무도 뒤떨어졌기 때문입니다. 2011년 말,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고3 실습생이 주 58시간, 한 달 100시간의 연장노동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습생들의 사망사고가 잇달아 발생했습니다. 사고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 중, 중요한 원인 하나를 찾았습니다.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전혀 시행하지 않아, 학생이 노동자로 신분이 변동된 후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노동법, 노동조합, 최저임금 등에 대한 예비지식이 전혀 없어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그것이 부당한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11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트위터를 통해 “학생 노동인권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며 특성화고교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의 일부로 노동교육을 적극 제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이념적 교육정책”이라고 비판했고, 한나라당은 “시대착오적 이념교육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오만한 교육 독재는 공교육을 뿌리 채 흔든다”고 비난했습니다. 과연 어느 쪽 주장이 합리적이고 옳은가요?

그러면서 유럽의 현실을 소개하는데, 그들과 우리나라가 하늘과 땅 차이여서 또 한번 탄식을 했습니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에서 모의단체교섭이 특별활동으로 잡혀 있습니다. 일 년에 여섯 차례 모의노사교섭을 진행합니다. 모의 교섭을 통해 경영자 역할도 하고 노동조합 간부 역할도 맡아 봅니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사회과목에서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에 관한 내용을 전체 교과서의 1/3 비중으로 가르칩니다. 이런 교육을 받고 노동자, 경영자, 정치인, 언론인 등이 되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노동자, 경영자, 정치인, 언론인 등이 되는 사회에서 노동문제를 이해하는 수준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거의 산 것과 죽은 것만큼의 큰 차이가 납니다. 교사, 학부모, 성직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전 세계 한자권 나라들이 달력에 5월 1일을 ‘노동절’이라고 표기하는데, 한국만 유일하게 ‘근로자의 날’로 표기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새 헌법안에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는 일은 이제야 비로소 다른 나라들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근로자는 중세시대 노예를 칭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독일은 군인노조도 있습니다. 군인노조를 만든 배경이 “다시는 나치군대가 될 순 없다”입니다. 우리나라에 군인노조가 있으면 “군납비리, 성추행, 의문사 쉽게 되겠어요?” OECD 가입국들에서는 경찰노조와 소방노조가 일반화돼 있습니다. 프랑스에는 판사노조, 변호사 노조도 있습니다. 핀란드에는 교장도 교원노조에 가입해 있고 영국은 교장노조가 따로 있습니다. 독일 메르켈이 총리가 된 후에 말하기를 “할 수만 있다면 총리가 된 뒤에도 노동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나요? 유럽사회가 노동가치, 노동계급을 매우 존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노동현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세월호 예를 들었습니다. 선장, 조타수, 기관사 등 배를 유지하는 중요 일군들이 모두 비정규직입니다. 그러니 배에 결함이 있어도 수리할 생각보다는 언제라도 회사를 떠날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기 일에 애정이나 헌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이리도 노동이 천대받는 건가요? 식민지 40년에 분단 70년, 이 와중에 군사정부 30년 세월을 겪으며 건설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란 단어 자체를 불온시하는 ‘레드 콤플렉스’가 만들어졌습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구조와 더불어 이 긴 세월동안 권력에 길들여진 지식인들을 비롯해서 사회구성인자들이 자본만을 대변하는 까닭에 노동이 올바로 자리 잡기 어렵게 됐다는 진단입니다. 결국 노동존중, 노동해방 역시 민주화, 평화, 분단극복과 함께 가야 하는 길입니다.

교회읽기, 김진호 실장의 “극우 기독교의 어제와 오늘” 강연은 카톡에 올린 강연록을 참고하십시오. 그저께 강연록을 꼼꼼이 읽고 난 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 파일을 부탁해서 올렸습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이야기 두 가지만 전하습니겠다. 나도 ‘교회는 인적네트워크의 총체’라는 개념규정을 한 바 있는데, 강남권 대형교회 만의 끈끈한 관계망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관계가 혈연, 지연, 학연이 큰 줄기인데 이들은 여기에 덧붙여 교회연으로 뭉쳐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가 이념적으로는 맞지 않더라도, 교회가 주는 관계망 혜택을 굳게 유지합니다. 이 관계망으로 파워엘리트 집단을 이룹니다. 이들이 관계망을 이루는 주 수단은 호텔파티입니다. 한국교회에만 있는 매우 독특한 현상입니다.

또 하나는 태극기집회를 이루는 구성원입니다. 첫째는 극우 개신교 NGO가 있습니다. 에스더기도운동이나 십알단 입니다. 둘째는 기성교회에서 동원하고 셋째는 탈북자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광신도들인데 주로 기도원 식객입니다. 기도원에는 기본적으로 집회를 성공적으로 유도하는 고정사람이 있습니다. 치유집회든 은사집회든 이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말하자면 이들은 잘 훈련된 조교인 셈입니다. 이들은 삶의 뿌리가 가정에서 이탈하여 아예 기도원에 정착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기도원이 폐쇄되면서 이들이 오갈 데가 없어졌습니다. 집과 이별한지는 오래됐고, 홀로 살아갑니다. 이들이 극우집회에 한 축이 됐습니다. 버림받은 사람들이 극우집회를 만나서 존재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이념적으로 교정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포용해서 온전한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하는 숙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만 우리 교회에 대해서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매년 1,300개 교회가 문을 닫습니다. 백 억 넘는 교회도 여러 개입니다.(과도한 대출과 신도수 극감) 대마불사 신화가 깨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새민족교회를 보호하시어 오늘까지 지켜 주었습니다. 또 옳은 신앙고백을 찾는 사람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대구라는 극우의 아성에서 교회와 세상에 대해, 신앙과 지성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소명이 있습니다. 건강하게 남아서 하늘에 속한 사람의 모습을 증거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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