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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회개의 표지
하늘의 대자대비를 닮아가는 신앙
2019년 03월 26일 (화) 16:55:17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정과>
다니엘 2:20-23, 마태오복음 18:21-35 (시편 25:3-10)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18:35)

   
▲ 회개했다는 증거는 비장한 결단이라기보다는 그분을 닮은 자비로운 미소일 것이다.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했다(시편33:1)

마태오복음 18장은 공동체 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모아놓았습니다.
주제는 ‘용서’이지요.
용서는 예수님 가르침의 큰 주제이기도 합니다.
기도에 대한 가르침의 마지막도 용서였습니다.
산상수훈의 한복판, 주님의 기도 종결어가 용서였지요.(마태 6:14-15)
우리의 하느님은 어머니처럼, 집 나갔던 아들을 반기는 아버지처럼 한없이 용서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 하늘 어머니의 자비를 기억하라 하십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빚은 흔한 삶의 굴레였기에 청중들에게 친근한 소재였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빚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사회구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빚은 돈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주님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비에 대하여 주목하기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내가 입은 은총의 선물들을 되짚어 보노라면, 어찌 형제끼리의 사소한 일에 죽기 살기로 앙갚음할 수가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숫자놀이 좋아하는 우리네들이니 숫자로 비유해주셨습니다.
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
한 달란트가 육천 데나리온이니 만 달란트는 육천만 데나리온, 곧 당시 로마제국의 연간 예산으로도 겨눌 수 없는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느님을 욕되게 하고 애타게 하고 가슴 졸이게 한 일을 나열해보자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비하면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용서의 양은 사실 상대적으로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은 양 - 백 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니 그 어떤 것도 백일정도면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양이 우리끼리의 용서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책무를 수치화하는 습성이 있었지요.
벤시라 같은 이는 범죄한 이웃에게 두 번의 기회를 줄 것을 말하고 있고(집회서 19:13-17),
또 이웃의 범죄는 3회까지만 용서하고 그 이상은 금하라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아모스 1:3;2:1).
따라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통념을 능가하는 자신의 관대함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완전수 내지는 거룩한 수에 해당하는 '일곱' 번의 용서를 제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이든 일곱 번이든 제한적인 용서는 무한수로서의 일흔 번씩 일곱 번(혹은 일곱 번씩 일흔 번, 혹은 일흔일곱 번씩)에 의해 거절되었습니다.
용서에는 제한을 둘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용서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요.
무릇 하늘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맺힐 것이란 아무것도 없을 테지요.
내가 받은 용서의 양을 생각하면서
내 모든 인연들을 맞이한다면
모진 마음 부서지고 악독함이 녹아날 것입니다.
해서 주님은 하늘의 자비함 같이 우리도 자비롭기를 바라십니다(루가 6:36).

은혜로운 회개의 때, 사순절을 걷고 있습니다.
마음 깊은 데에서 용서치 못할 응어리가 남아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면
오늘 말씀처럼 “그와 나”가 아니라
“하늘과 나” 사이의 숱한 사연들을 톺아볼 일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풀지 못하는 법.
부디 하늘의 대자대비함을 닮아가는 신앙이길 빕니다.
하늘 향해 바로서서 하느님과의 동행을 재개하는 것이 회개이지요.
그렇다면 회개의 표지는 나의 자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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