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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완성하라
법은 하느님 뜻 무게중심에 둬야하는 도구
2019년 03월 27일 (수) 15:15:21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신명기 4:1;5-9, 마태오복음 5:17-19 (시편 147:12-20)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5:17)

   
▲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토지강제수용. 하늘의 큰 듯 아래 있어야 할 법이 특정한 집단이나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된다면, 그 법은 그야말로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법은 공동선을 위하여,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끊임없이 완성되어 나가야 할 하늘의 도구이자 사람들의 도구이다.

예수님은 법이 제대로 제정되고 운용되려면 사람의 뜻이 아닌 <하늘의 뜻>이라는 단순한 명제를 주목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상황에 따라 만들어지는 실정법이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겠지만, 어떤 법이든 그 법이 만들어질 때 밑받침이 되는 천리(天理)가 있습니다. 법은 그 큰 틀의 기준에 따라 제정·운용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하여 예수님께 있어서 법은 언제나 문자 이전에 있는 하느님의 뜻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하는 도구였습니다. 비록 법이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법의 법을 있게 하신 하늘 뜻, 하느님의 의도가 있기 마련이므로, 무슨 법이든 최종적이고 근본적인 해석과 적용의 준거로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 예수께서 법을 보시는 눈입니다.

예수님께 하느님의 뜻은 분명했습니다. 세상 모든 이가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 누리고 또 그렇게 서로 나누며 사는 것, 곧 참된 행복의 길을 더불어 걷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의 말로 바꾸면 바로 <공동선>입니다.

오늘날 법을 만들고 운용하는 이들이 이런 대원리를 눈여겨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법의 진정한 완성을 향하는 겸손하고 전향적이며 통 크고 개방적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실상 오늘날 법을 만들거나 집행하는 이들의 모습은 공동선이 아닌 자기선(自己善)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 공동선의 가면을 쓰기는 하지만 집단선(集團善), 아니 선(善)이라는 말을 쓰기 무색합니다. 집단이익입니다. 특정집단의 이익이라는 틀 안에서 그것을 운용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저께는 청와대 앞에서 355일째 노숙농성 중인 도갑현 님을 응원하기 위한 특별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멀쩡한 자기 건물을 통째로 날리고 셋방도 구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자 여기저기 하소연하다 결국 최고권력기관 앞까지 와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시가 15억 상당의 5층짜리 건물주였던 그녀는 집을 수용당하면서 보상금 4억9천을 받았습니다. 세입자들 보증금을 주고나니 고작 7천만원이 남았습니다. 기도회에는 비슷한 처지로 노숙농성중인 고광석님도 함께 했습니다. 일흔넷 노구에 대전에서 올라와 1년 넘게 노숙농성 중이신 분입니다. 어렵사리 가꾸어 살던 터전을 백주대낮에 강제수용, 아니 떼강도짓을 당한 피해자이십니다. 피를 토하듯 절규하시는 말씀 속에서 가슴속 한이 절절이 공감되었습니다. 이런 억울함을 뒤로 한 채 그 차익의 수혜는 몽땅 자본권력에게 돌아갑니다. 건설대기업의 주머니에, 부동산 투기세력의 주머니에 평범한 서민들의 피가 빨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수탈로 시작하고 투기로 끝나는 국가폭력 토지강제수용은 그럴듯한 포장으로 진행되지만 속내가 다 이런 식입니다. 110개의 법률조항으로 특정세력들의 배만 부르게 만드는 것이 토지강제수용입니다. (토지강제수용의 제반 문제에 대하여는 졸고 참조 http://kiwon255.blog.me/221415729398 )

하늘의 큰 뜻 아래 있어야 할 법이 특정한 집단이나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된다면, 그 법은 그야말로 폐기되어야 마땅합니다. 법은 공동선을 위하여,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끊임없이 완성되어 나가야 할 하늘의 도구이자 사람들의 도구입니다. 하지만 첨단의 세상을 살면서도 이 사회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악법들을 거머쥐고 있습니다. 토지강제수용 관련 악법, 국가보안법 같은 것들이 버젓이 남아 행세를 하는 것은, 지금 권세를 누리는 이들이 이를 통하여 자신의 이익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늘여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을 권력의 무기로 사용하거나 특정 집단의 자기 이익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는 비극이 더 이상 없는 세상 되길 바랍니다. 제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디 세상이 예수 가르침을 배워 법의 완성에 이르기를 애타게 염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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