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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 거룩한 낭비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 하늘의 소리
2019년 04월 08일 (월) 10:52:48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환대, 거룩한 낭비
요한복음 12장 1~8절, 빌립보서 3장 4~14절


▪ 사순절 순례
지난 한 주간도 사순절 순례를 잘 걸어오셨습니까? 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면서 수난의 의미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시대적 고난에 동참하는 절기입니다. 그간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자신을 돌아보고 이타적인 삶으로 전환하도록 힘쓰는 절기이며 경건하면서도 검소하게 길을 걷는 절기입니다. 우리 주변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찾아보고, 그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우는 절기입니다.
우리의 친구인 이은수 성도의 부친께서 어제 저녁 9시쯤에 소천하셨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받아주시기를 빕니다. 아울러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 4.3 항쟁
올해로 4.3항쟁이 71주기를 맞았습니다. 4.3희생자 추념식에서 유족이자 후유장애인인 김연옥 할머니 이야기를 대학생 손녀가 편지로 낭독했습니다.
그간 할머니에 대해 몰랐던 게 너무 많았습니다. 할머니 머리에 애기주먹만한 움푹 파인 상처가 있는데요. 그게 4.3 후유장애였다는 것도 작년 4월에야 알았어요. 심지어 10살 때까지 신발 한 번 못 신어본 고아였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고요. 저희 할머니는 보시다시피 아주 고운 분이시랍니다.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바다를 참 좋아하신다고 생각했었죠.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하루아침에, 땅도 아닌 바다에 던져져 학살되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당시 할머니는 고작 8살이었습니다. 4.3 이후 할머니는 어릴 적 10년 세월을 대구에서 부산으로, 다시 서울에서 제주로 헤맸어요. 한강에서 빨래도 하고 아이스깨끼도 팔며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대요. 그러다 꽃다운 18세가 되어 제주로 다시 내려 오셨어요. 제주에서 살아야 부모님을 잊지 않고, 또 내가 누구 자식이고 누구 딸인가를 기억할 것만 같았데요. 친척 삼촌과 함께 시신도 없는 그런 헛묘를 지었답니다. 그리고 평생 물고기를 먹지 않으셨습니다. 할머니의 바다를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너무 미안해요, 할머니. 할머니 삶에 그런 끔찍한 시간이 있었고 멋쟁이 할머니가 그런 아픔에서 살고 계셨는지 미처 몰랐어요. 할머니는 그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뎌 온 멋진 사람이에요.
당시 이렇게 죄 없는 시민들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무려 3만 명이나 학살되었습니다. 죽임당한 사람들은 연좌죄법 때문에 대대손손 죄인 취급을 받으며 숨죽이며 살아야했습니다. 그리고 71년이 흘렀지만 누가 왜 죽였는지 그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국가 폭력을 사과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재차 사과하고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늦었지만 올 해는 처음으로 경찰청장과 국방장관이 당시 저지른 만행을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영정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 콜트 콜텍 기도회
오늘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해고된 지 4449일째입니다. 경영상 어려움이 있어 해고시켰지만 매해 100억 원의 매출 이익을 달성했습니다. 해고는 노동자 뿐만 아니라 가정의 생존권이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노동자들은 거리에 나섰고 그 세월이 12년이 되었습니다. 임재춘 노동자가 노사합의를 호소하며 단식한 지 오늘로 27일째입니다.
지난 4일 저녁, 화곡동 콜트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서 개신교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이인근 지부장은 외롭게 싸우는 자신들을 방문하여 격려하고 기도해 주신 기독교인들에게 감사했고 단식 중인 임재춘 노동자는 가끔은 자신을 위로하라는 이해인 수녀의 시를 읽으며 힘겨움을 토로해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그리고 촛불교회와 예수살기에 깊은 감사를 전해주었습니다. 참 맑고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노사합의를 이뤄 단식을 풀고 농성도 풀고 일터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읍시다.

▪ 예수님의 환대
먼저 우리는 사순절에 주님의 수난을 기억합시다. 주님의 수난엔 당시 민초들의 수난이 담겨져 있고 유대 민족의 수난이 나아가 인류의 수난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할 짐을 주님께서 기꺼이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없도록 옥죄이는 정치적 종교적 제도를 정면으로 거부하셨습니다. 로마제국과 헤롯정권은 인간을 노예화시켰고 하나님의 형상인 자유를 빼앗는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분노하셨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인류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주기 위해 불의한 정권과 싸우셨습니다.
빌립보 신도들에게 보내진 바울의 편지에 의하면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동등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인간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전부를 내어 주심으로 하늘 길을 내셨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인류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은총이요 최고의 환대입니다.

▪ 환대의 종교
유대교는 환대의 종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목민으로 살면서 환대를 배웠습니다. 유목민은 언제 어떻게 재난을 맞을지 예측이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나그네를 극진히 예우했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어려운 처지에 만났을 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누구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환대는 소돔과 고모라성에 사찰 나온 천사들을 보호하고 대접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내어주겠다는 롯의 삶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법엔 고아와 과부를 위해 한 모퉁이에 이삭을 남겨두어야 했습니다. 환대는 율법의 중심 정신이 되었고 제도화되었습니다.
유대교의 환대사상은 그대로 기독교로 옮겨졌습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심으로 기독교를 환대의 종교로 규정하셨습니다. 일명 황금률입니다. 환대는 선택이 아니고 의무였습니다. 기독교인이면 당연히 실천해야할 덕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지극히 작은이들을 하나님처럼 대접하라고 명하십니다. 기독교의 복음의 진보입니다. 기독교의 관심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였고 잘나고 유능한 사람들이 아니고 못나고 무능하여 무지렁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형상을 빼앗겨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성을 일깨워주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도록 이끄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당시 편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권력자들에 의해 고통당하는 자들의 편에 서서 불의한 권력과 부패한 종교와 맞섰습니다. 당시 무지렁이처럼 살아가는 민초들을 일깨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일은 제국과 권력자들에겐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서 있어야할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 부당한 권력에 고통당하는 사람들, 위선적 종교를 개혁하고 진실을 따르는 사람들과 손잡아야 합니다. 그 교회가 진짜 교회라면 권력자들이 두려워하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토마스 머튼은 평생 봉쇄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살았습니다. 그의 명상록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영성가들을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권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수도원을 나와 평화운동을 시작하자 정권이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가 행동하자 그를 죽입니다. 세상은 행동하지 않는 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 환대하는 사람들
오늘 성서일과는 요한공동체가 전하는 복음서 12장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해방적인 유월절 엿 세 전에 베다니에 들어가셨습니다. 베다니엔 문둥병자로 살던 시몬이 살고 있었고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아지트가 있던 곳입니다. 오늘의 잔치는 예수님을 위해 나사로 가정이 마련한 환대의 자리입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장만하며 시중드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마르다는 이 좋은 것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을 위해 시중을 드는 일이 행복하였습니다. 나사로는 사람들 가운데 앉아 이야기하고 예수님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이 당신의 집에 계시다는 이유만으로도 아니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미 죽었던 자신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입니다. 아쉬움이 없는 삶입니다. 그 때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가져오더니 예수의 발에 붇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었습니다. 이 행위는 마치 노예가 주인에게 하는 행동이요 아주 존경하는 사람에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 향이 온 집안 가득하였습니다. 그 향유의 값은 아주 비싸서 한 노동자의 연봉이었습니다. 이렇게 비싼 향유를 자신이 바르려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귀한 손님, 최고의 손님을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오라버니를 살려준 은인이요. 새로운 삶을 열어 준 선생이요.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입니다.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전부를 드려도 아깝지 않은 마음이 참 신앙입니다.

▪ 환대를 비난하는 사람
이렇듯 마르다, 나사로, 마리아는 주님께 최고의 환대를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보던 주님의 한 제자가 시비를 겁니다. 그 시비는 그럴싸합니다. 이렇게 비싼 것을 왜 낭비하느냐? 이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런데 평소 같으면 이 말씀을 수용할 만할 텐데 주님은 그 제자를 꾸중하는 것을 넘어 비난하고 나무랍니다. 가만두어라. 왜 이 사람을 괴롭히느냐? 이 사람은 놀라운 일을 하였는데. 내 장사를 준비하였다고 극찬을 하십니다.

▪ 거룩한 낭비
1956년 1월, 미국의 휘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은 네 명의 친구들과 함께 남미 에콰도르 아마존 유역에 살고 있는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선교사로 자원하여 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복음을 전해보지도 못하고 원주민의 창에 찔러 순교하였습니다. 아우카 부족은 수백 년 동안 외부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죽였습니다. 엘리엇과 친구들은 불과 스물여덟 살에 모두 살해되어 강에 버려졌습니다. 당시 <라이프>지에는 이 비참한 사건을 장장 10페이지에 달하는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헤드라인이 이러합니다. 이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 (“What an unnecessary waste!")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이 인생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갓 결혼한 아내의 뱃속에 아이를 두고 처참히 죽었으니 지당한 말입니다. 그러나 짐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온 생애를 이것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시간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늘이 주신 자기의 책임을 수행하고 생의 목표를 달성하고 죽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남편이 죽은 후, 간호사 훈련을 받고 1년 후 아우카 부족의 마을에 들어가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아우카 부족은 외부에서 들어온 남자는 죽여도 여자는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5년간 이 부족과 생활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5년 뒤 떠나려는 엘리자베스에게 파티를 열어주며 추장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남편이 가지고 있었던 당신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나는 이곳을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짐 엘리엇이 살해당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들이 죽은 마을에서 수백 개의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엘리엇이 죽고 난후 태어난 유복 아들이 그곳 교회의 목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장로와 교사로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 바로 엘리엇과 그의 네 친구들을 죽였던 원수들이라는 것입니다. 짐 엘리엇의 순교는 결코 안타까운 젊은 피를 낭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피가 수백 개의 교회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거룩한 낭비는 반드시 30배, 60배, 100배 열매 맺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행동이 누구에겐 낭비가 되고 누구에겐 거룩한 행위가 됩니다.

▪ 예수, 전부를 버리고 얻은 보배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닮고 따르는 지를 고백합니다. 바울은 혈통으로나 정통적인 입장에서나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이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법대로 하면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을 만큼 철저한 바리새인입니다. 명문 가정일 뿐만 아니라 학식으로는 최고의 스승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이며 적극적인 신앙의 소유자로 다른 종교를 핍박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으로 이를 얻기 위해서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에겐 예수야말로 우주적 진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율법을 완성하는 길이요 하나님의 참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품에 계셨지만 하나님께서 진리로 보내주셨고 이 땅에 오셔서 길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 하나님의 환대와 우리의 사명
하나님의 환대를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낸 사건으로 완성됩니다. 이 일은 하나님에겐 거룩한 희생이었습니다. 노예들을 제국의 발톱에서 건져내어 가나안의 주인이 되게 하시더니 온 세계의 민초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포하여 주인이 되게 하십니다.
이사야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건져내어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들짐승들도 나를 공경할 것이다. 이리와 타조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임금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환대입니다. 이 예배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환대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예배보다 더 큰 환대는 지극히 작은이들을 하나님처럼 대접하는 일입니다. 이 거룩한 사명이 늘 우리 앞에 있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시고 상대방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보시고 서로를 하나님처럼 대하며 사십시오. 나아가 여러분 주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그리 대하며 사십시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헌신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낭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헌신이 자신의 영혼을 맑히고 세상을 새롭게 일구는 단초가 될 것입니다. 세상은 그냥 좋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을 토대로 더 나은 세상은 세워졌고 세워집니다.
이 예배는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며 찬송하는 자리입니다. 거래의 자리가 아닙니다. 거래가 되면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아무것도 변화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의 영혼이 맑아지고 단단해집니다.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받게 되고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되어 그 어떤 삶보다 아름답고 멋진 삶이 될 것입니다. 어린 나무를 심어 가꾸다보면 조금씩 자라나 거대한 나무가 되는 것처럼 우리네 영혼의 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고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 보여주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 땐 그 사람의 삶이 곧 예배가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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