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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 그리고 사랑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기
2019년 04월 08일 (월) 12:07:57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오늘의 성서일과>
여호수아 2:1-14, 요한복음 8:1-11 (시편 23)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 진흙탕에서 피는 순결한 꽃.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내신 하늘사랑의 은유다.

오늘 복음은 삼척동자도 들었을 법한 간음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끼리 처단할 수도 있었지만
자비를 주창하시는 예수님을 떠보기 위해 그녀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왔지요.
당신의 그 알량한 사랑 타령이 어디 이런 경우에도 먹히는 일인가 하며 함정에 빠뜨려 본 것이에요.
늘 죄인들과 어울리고 또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인간은 어찌해야 되겠소! 하며 들이댄 것입니다. ​

​예수께서는 그들의 사악한 동기를 꿰뚫어 보셨네요.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생을 오직 율법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
그 기구한 생을 자신들의 정치적 도구 삼는 지도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답답하셨습니다.
무엇인가 끄적인다는 반응은 대개 멍 때렸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을 보내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시대가 악합니다.
극우논리를 따르는 이들이 상당한 오늘을 비추는 대목입니다.

마음을 가다듬은 예수께서는 정공법을 쓰셨지요. 양심에 대고 호소하셨습니다.
양심에 대고!

그들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었을까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나둘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매사에 생트집에 딴지를 거는 자한당 사람들이 이만큼이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이렇게 질문하는 이들이 있겠지요.
예수께서 간음한 여인을 용납하셨다면
간음이 하늘나라에서 괜찮아서였을까요?
당신은 사실 간음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잣대를 제시하신바 있잖아요.
율법규정의 참뜻을 완성하려면 음욕을 품는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모순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겠지요.
늘 언행이 바르게 연결되었던 당신께서 앞뒤가 안 맞는 가르침을 주실 리가 있으려구요.

그래요.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는 이치지요.​
스승 예수님은 악에 대해서 추호의 물러섬 없이 단호한 분이시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정녕 자비로우셨습니다.
아니 통상 사람들이 죄인이라 손가락질하는 이들과 더 어울려 지내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세월호 가족들 만나 했던 얘기처럼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심장은 왼편에 있지요.
당신의 연민은 늘 ‘죄인들’에게 머물렀습니다.

그런 분이니,
오늘 당신이 그저 공동선을 해치는 행위를 용납하신 것이라 볼 수 없는 노릇이지요.
사실 다시는 그러지 말라 엄히 타일러 그녀를 보냈습니다.
엄한 벌을 예상했다가 놀라운 자비를 대하게 된 그녀는​
아마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햇볕정책입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행위는 웃기는 일이지만
공동선을 해치는 구조악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더 문제가 있습니다.
개인윤리와 사회악의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지요.

오늘 주님의 가르침을 모든 악에 대한 관대함으로 오해하면 안 되겠습니다.
실상 오늘 이야기에서 악의 축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있었습니다.
주님은 먼저 그들을 꾸짖으셨고
어쩌면 그들에게 희생양이 될 뻔했던 한 가련한 여인을 그들의 위선에서 보호해주셨습니다.
물론 따듯이 훈계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으셨지만.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죄악들을 대하게 되겠지요.
그때 예수님처럼 분명히 하면 좋겠습니다.
다수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유행성 악’에 대항할 수 있는 식별력을 갖추어야겠습니다.
그러려니 하는 통념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나의 부족함과 상관없이, 질타해야 될 악의 문제를 확연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죄와 죄인 된 사람을 제대로 구분하는 자비심을 갖출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렇지요.
언제나 인간을 연민 가득히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마음,
그 원천적인 중심에 항상 머물러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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