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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요일에
당신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2019년 04월 19일 (금) 10:23:50 김기원 kiwon255@hanmail.net
<성금요일 성서정과>
이사야 52:13-53:12, 히브리서 4:14-16,5:7-10, 요한복음 19:16b-37 (시편 22)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19:30) 

   
▲ 당신은 돌아가셨습니다. 숨이 끊겼습니다.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어머니께 새로운 아들을 주시고 제자에게는 새 어머니를 주셨듯이 당신은 이제 새로운 아들, 수많은 새 예수로 태어나십니다.(위르너T.Werner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십자가 위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나의 고통, 나의 죽음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내가 남긴 유품들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저들이 매단, 저들의 손에 피를 묻혀 희생시키는 이의 인생이 갖는 의미 따위에는 신경쓸 새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니 정의니 평화니 하는 것들이 저들 눈과 귀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나를 꼼짝달싹 못하게 해 놓고서는 내가 가진 알량한 재산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내가 쓰던 컴퓨터, 운동기구, 책, 옷가지 까지 남김없이 가져가야 성이 찰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외치던 소리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합니다. 저들 눈엔 내가 소중히 보듬어 안고 살아왔던 진리가 그저 하나의 상품, 소모품처럼 보입니다. 주님, 억장이 메어지는 느낌이지만, 당신이 용서하시니 당신의 은총에 힘입어 저도 마지막까지 저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당신의 죄목은 ‘유대의 왕’이라 적혀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라는 뜻입니다. 저들의 치기어린 장난이 진실에 대한 고백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무튼 저들은 당신이 하느님 나라의 주역이기 때문에, 하느님이 온전히 통치하시는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주역이시기에, 그것을 정죄하고 처벌한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결국 제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살고자 하면 그것은 세상의 단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가치가 다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 여기고 오직 그것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저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죄악이요 놀림감이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먼저 그 고발로 희생되셨으니 제가 당신과 같은 죄목으로 사회에서 냉대받는 것은 영광일 뿐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당신을 희롱합니다. 아니 당신을 유혹합니다. 다른 이들을 살려내는 그 능력으로 스스로를 살려보라고! 냉큼 그 자리를 박차고 우리 쪽으로 오면 당신이 말하는 것을 믿어주겠노라고······.

주님, 세상을 이끄는 논리들은 하느님 나라의 주역이 되려하는 저에게도 똑같은 미끼를 던집니다.

나 아닌 타자를 위한 삶, 내 안위 아닌 하느님 나라 위한 삶이 참된 행복을 보장한다고? 웃기지 말라. 네 인생은 너의 것이야! 먼저 네 인생을 보듬고 즐겁게 해주어야 다른 이들에게도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거야······.

당신은 침묵으로 저들을 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일이 대꾸할 필요조차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내 인생의 참된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가는 동안에는,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갈 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그만입니다. 왜? 라고 질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당신은 외로이 십자가에 달려있지만, 세상이 온통 당신을 정죄하고만 있는 듯하지만, 멀찍이 보이는 사람들 중에는 당신을 인정하고 당신을 응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머니와 여인들,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시는 제자······.

주님, 제가 생명의 길을 가노라면 모든 이가 나를 외면하는 듯이 보일 것입니다. 심지어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까지도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도 십자가상에서 보시고 마음 든든하셨듯이 저도 주변에서 당신의 길을 걷는 적지 않은 이들을 봅니다. 희망입니다. 연대의 힘을 얻습니다. 그들 중에는 물론 피붙이도 있습니다. 더 큰 힘을 얻습니다.

고통의 끝이 다가옵니다. 당신은 당신의 유일한 통교자였던 아버지를 부르십니다. 아버지,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나의 세례 때, 내가 모세와 엘리야를 만날 때 들려주셨던 음성을 들려주실 때입니다.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이 마지막 고통의 순간을 넘어 가겠나이다······.

하느님은 아무 말씀 없으시군요. 완전한 침묵.

주님, 저도 당신의 길을 걸을 때 분명 지금은 영적 위로를 주셔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주님을 부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하는 곳에서 제 기도는 메마르곤 합니다. 이 시간 그 비밀을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완전한 침묵 - 그것은 바로 완전한 동참이라고!

지금 당신께서는 아무런 위로도 받지 못하시는 것 같으나, 실상 하느님은 당신과 혼연일치가 되어 그 고통을 송두리째 공유하고 계신 것이지요. ‘하느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외침은 사실 하느님 당신의 자기분열인 게지요.

주님, 제가 극도의 고독과 시련 속에서도 아무런 영적 위로를 경험하지 못할 때, 우리가 당신의 평화의 길을 걷다가 극한 곤경에 처하여 어떤 희망도 발견하지 못할 때, 바로 우리 한 복판에 당신 와 계심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마침내 당신은 돌아가셨습니다. 숨이 끊겼습니다.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어머니께 새로운 아들을 주시고 제자에게는 새 어머니를 주셨듯이 당신은 이제 새로운 아들, 수많은 새 예수로 태어나십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도 백인대장이라는 이방인이 당신의 사람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 저도 죽습니다. 제 눈으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외견상 평생 추구했던 일이 물거품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을 오늘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숨이 지상에서 멎을 지라도 제가 추구했던 예수의 길, 생명의 길은 또 다른 나를 통하여 끊임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결코 죽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당신의 시신은 내리워져 소중한 이들의 품에 안기고 평안하게 묻히십니다. 당신이 남긴 흔적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따뜻하게 머뭅니다. 당신의 시신, 당신의 흔적은 봉인된 무덤처럼 저들을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 저 또한 죽어 저의 자취를 남길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당신을 향한 사랑의 길만큼은 저를 아끼던 모든 이의 가슴 속에 남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주님,
저의 지금의 시련이 주님의 길 때문이라면,
저의 죽음이 당신 향한 사랑의 결과라면,
저는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
당신만이 희망이고 생명이며 기쁨입니다.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제 인생은 참으로 복됩니다!

-<그리스도와 친해지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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