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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 회고록
책,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2019년 05월 17일 (금) 10:41:02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 1>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독립투사 이상룡 선생 손자며느리 허은의 회고록이다. 허은여사는 구한말 의병장 왕산 허위 자손이다. 왕산의 의병활동 까닭에 일제의 감시, 닦달에 시달리다 못한 일가권속이 만주로 망명한다. 어린 나이에 부모 따라 만주로 간 허여사는 역시 유명한 독립운동가 집안인 석주 이상룡 집으로 시집간다. 이상룡은 1925년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분이다. 내각제 국무령은 지금의 대통령 격이다.

   

정정화의 『장강일기』에서 아무리 겉보기에 대단한 임시정부라도 안에서 뒷받침하지 않으면 허당이라고 했는데, 이 책의 허은여사 역시 그렇다. 고성 이씨 안동 종가집의 위세를 다 뒤로 하고 만주로 망명한 시댁 어른들을 수발하며 독립운동을 도왔다. 밖에서 활동한 어른들은 독립유공자가 되어 역사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대접받지만, 안살림을 전적으로 책임졌던 허은여사는 독립훈장도 없고 유공자 명부에 이름 한 자 올라가 있지 않다. 그 까닭에 허은 여사의 구술회고록은 더욱 값지다.

조선인 토착왜구들은 일제에 충성한 까닭에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독립운동가 집안은 삼대가 가난을 면치 못 한다고 하는데 허은여사 집안이 딱 그랬다. 시할아버지는 만주에서 병으로 돌아가시고, 시부는 조국현실에 낙심 자결했다. 남편조차 만주에서부터 해방 후 한국에서까지 집안은 뒤로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신한 결과, 전쟁 중 병으로 운명했다. 그러니 허은 여사 자녀들은 못 먹고 못 배우고 헐벗은 나날을 살았다. 게다가 자식 중 반은 병으로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읽는 내가 안타까울정도로 불우했다. 남편에 대한 회고이다. “독립운동하러 다니고 감옥 들락거리느라 생계는 걱정조차 해 본적이 없다. 윗대 어른들은 만주에서 활약하셨기에 옥살이는 안 하셨다. 그러나 남편은 귀국 후에도 감옥을 밥 먹듯이 드나들었다. 다 지난 일이라 이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어른들 모시고 수발드느라 내색도 못하였다. 걱정스럽고 안타깝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면서도 그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거니 생각하며 살았다.”

독립투사의 절개를 보여주는 한 대목, 허은여사의 숙부가 돌아가셨을 때 남긴 유지다. “호상은 나산 김정수(친구)로 하고, 상주는 안춘생씨 부부(안중근 의사의 조카)가 하게 하라. 그리고 군인으로는 이종찬 장군이 문상오면 들여보내고, 다른 군인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또 누구누구는 친일파니 문전에도 들어서지 말게 하라.”

마지막으로 백범일지에 나오는 살부회에 대한 검증이다. 우선 백범일지를 보자. “이로부터서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딴 조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민족주의자가 단결하게 되매 공산주의자들은 상해에서 할 일을 잃고 남북만주로 달아났다. 거기는 아직 동포들의 민족주의적 단결이 분산, 박약하고 또 공산주의의 정체에 대한 인식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상해에서보다 더 맹렬하게 날뛸 수가 있었다. 예하면, 이상룡의 자손은 공산주의에 충실한 나머지 살부회(아버지 죽이는 회)까지 조직하였다. 그러나 제 아비를 제 손으로 죽이지 않고 회원끼리 서로 아비를 바꾸어 죽이는 것이라 하니 아직도 사람의 마음이 조금 남은 것이었다.” (『백범일지』교문사, 226-227쪽) 나도 처음 백범일지에서 이 대목을 읽었을 때 깜짝 놀랐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서술은 완전 가짜뉴스다. 백범일지가 거론한 살부회 당사자인 허은여사 역시 참담함을 금치 못한다.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일이 어떻게 그렇게 기록이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남편은 생전에 사회활동을 하느라 집을 나가 있는 경우는 있어도 부조(父祖)에 대한 효성심만은 세상의 누구 못지않음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누가 나보다 그 양반을 더 잘 알길래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전통 유가의 종손이라 그분 머릿속에 불충이나 불효는 있을 수가 없다. 살부회라니... 조직이 있었다면 그 증거가 있을 것이고, 남의 아버지를 죽였다면 죽임을 당한 가족이 지금까지 우리를 가만두었겠는가? 생각할수록 끔찍하고 모욕당한 기분이 든다.” 자식들은 백범이 돌아가신 후라 말할 곳이 없고, 백범이 그렇게 썼다는 근거가 없다고 허은여사를 위로하지만, 허여사 속에 맺힌 한은 여전하다. 일제의 탄압 속에 숱한 고생하며 자식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같은 동족에게 그것도 동지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런 터무니없다 못해 인간 말종의 소리를 들었으니 오죽할까. 아무리 백범일지를 이광수가 썼다고 하더라도 출판 전에 감수는 했을터, 백범의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선입견이 감정적으로 기울어져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허은여사의 회고소회가 또 울컥하게 한다. “지금도 귓가를 스치는 서간도 벌판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지나온 구십 평생 되돌아봐도 여한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 연명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고달픈 발자국이었긴 하나 큰일하신 어른들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다.” 그저 숙연할 뿐이다. 허은여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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