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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리의 영이다
성령강림주일설교문(19. 6. 9)
2019년 06월 13일 (목) 14:15:02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9. 6. 9) 성령강림주일
요 14:8-17 “그는 진리의 영이다”


장경동과 전광훈이 망언을 쏟아낼 즈음, 한겨레신문에서 조한욱교수 칼럼 제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목이 ‘설교의 힘’입니다. 그 글 끝대목입니다. “무릇 목회자의 설교란 인간의 영혼을 옳은 곳으로 이끌어야 하거늘, 그 부끄러운 망언들은 누구의 목소리란 말인가?” 그 글을 보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설교는 사람의 영혼을 옳은 길로 인도해서, 이성과 신앙을 통해 참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되새겨야 할 교훈입니다.

   
▲ 백창욱님(사진:김영재님 페이스북)
얼마 전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다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2010년 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로 영화 “시”를 봤습니다. 기생충은 아직 못 봤지만 “시”를 보기를 참 잘했다는 소감입니다.
양미자(윤정희)는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외손자 종욱(이다윗)이와 단 둘이 삽니다. 이혼한 딸은 타지에 나가 있습니다. 미자는 중풍 걸린 강노인의 간병인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자신도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점점 기억력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시를 배우고 싶었던 미자는 동네 문화센터에 시 창작반이 있는 걸 압니다. 등록기간이 끝났지만 사정해서 수강하고 시 배우는 재미에 푹 빠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는 끔찍한 소식을 접합니다. 한 여중생이 강에 투신자살합니다. 미자는 손자 또래아이가 그런 숭한 일을 당한 게 안타까워서, 손자에게도 “종욱아, 너 걔 알아?”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손자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합니다. 알고 봤더니 여중생이 투신한 까닭은 외손자 종욱이와 친구 5명이 함께 몇 달에 걸친 성폭행 때문입니다. 가해자 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피해자 희진이의 홀어머니에게 삼천만원을 위로금으로 주자고 하고, 한 집 당 500만원씩 부담하자고 합니다. 가난한 미자는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미자도 1/n의 책임이 있으므로 결국 그 돈을 만듭니다. 미자는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요? 궁금한 사람은 영화를 보시기를.

제가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것은 미자의 감수성입니다. 미자는 돈으로는 할 수 없는,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섬세하고 고귀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가해자 다섯 명의 아버지는 사건을 무마하는 데만 바쁩니다. 그게 합의금 삼천만원이고 각자 오백만원 분담입니다. 확실히 남자는 목적지향이구나 하는 점을 느꼈습니다.
미자는 돈 자체가 없으니까 가해자 부모들의 대책모임에서 지극히 소극적입니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것도 아닙니다. 놀랍게도 미자는 죽은 희진이의 동선을 따라갑니다. 맨 처음에는 희진이 장례미사에 참석합니다. 거기서 성당입구 안내대에 있는 희진이 탁자용 사진을 몰래 가져갑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집 식탁에 놓습니다. 가해자인 외손자도 보라고. 학교 교실도 둘러보고 손자와 아이들의 못된 짓에 희진이가 고통을 겪었던 학교 과학실도 찾아갑니다. 또 투신한 다리에도 가서 그 아이의 고통을 애도합니다. 무엇보다 뜻밖인 것은 희진이 어머니를 찾아가서입니다. 가해자 부모들이 여자끼리 이야기 하는 게 좋겠다면서 미자에게 희진이 어머니를 만나서 합의조건을 이야기하도록 위임합니다. 미자도 그게 낫겠다 싶어서 희진이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알츠하이머에 걸린 때문인지, 미자는 가는 도중에 자신의 용건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는 희진이 엄마를 만나서 시 이야기, 농사이야기만 실컷 하고 돌아오다가, 버스에서 뒤늦게 자신의 임무가 생각나서 낭패를 겪습니다. 미자는 시창작반 마지막 시간에 시 한 편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시의 제목은 자살한 희진의 세례명을 딴 ‘아네스의 노래’입니다. 시는 처음엔 미자의 목소리로, 그 뒤에는 희진의 목소리로 낭송됩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희진이 몸을 던진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미자도 그 강 어디쯤에 있을 것이라는 여운을 주고.
가난하지만 품위있고, 시상을 찾으러 애쓰며, 본인도 가해자 부모지만 다른 부모들과 달리 행동하는 미자의 모습에서 해탈 비슷한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어떤 용건과 임무에만 충실한 우리의 생활습관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늘 우리는 우리가 어떤 상을 그리고 기대하고, 예측하고 그대로 진행되는 것을 흡족해 합니다. 그대로 안 되면 마음이 분열하고 화내고 평정을 잃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인간사는 무궁합니다. 내 기대대로 돼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합니다. 또 내 뜻대로 된다고 해서 그게 가장 좋은 것도 아닙니다. 내 뜻과 관계없이 마음 품이 더 넓어지고 더 관용하는 것. 이것이 성령의 은총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성령을 칭하는 독특한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 보혜사(保惠師)입니다. 한자 뜻은 도울 보, 은혜 혜, 스승 사입니다. 그리스어로는 파라클레토스. 변호해 주시는 분, 또는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약속한 보혜사에 관한 다섯 개의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보혜사에 관한 첫 번째 증언입니다. 다섯 개의 말씀에서, 보혜사 성령을 뭐라고 소개하는지 보겠습니다.
첫째는 오늘 본문 요 14:16-17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혜사는 진리의 영입니다.
둘째는 요 14:26, 보혜사는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입니다. 보혜사의 역할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셋째는 요 15:26,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시는 진리의 영입니다. 진리의 영은 예수를 증언합니다.
넷째는 요 16:7-11, 보혜사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입니다.
다섯째는 요 16:13-14,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여기서도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소개합니다. 보혜사를 소개하는 다섯 개의 말씀 중 진리의 영이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한 곳이 세 개입니다. 이것은 성령과 진리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뿐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도 진리입니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요 17: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진리를 찾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 4:24)
이상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은 진리로 통합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도 진리로 하나님과 일치를 이룹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개념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영이며 진리이시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통하려면, 반드시 영과 진리가 돼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입니다. 성령강림이 큰 은총인 이유는 이 진리의 영이 조건 없이 우리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진리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사람은 진실하다. 그 말은 진리다.’ 할 때는 어떤 경우인가요? 누가 어떤 말을 했는데, 현실이 말한 대로 됐는가의 여부를 가지고 ‘진실하다, 아니다.’를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어떤 진술을 했고, 그 진술이 현실에서 일치했을 때, 진실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실은 동시에 믿을 수 있음을 뜻합니다. 진실과 믿음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진실성이 떨어지는 데 믿으라거나 믿겠다는 말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또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시간과 세월과 역사가 흐르는 가운데 거듭 경험하였을 때 ‘한결같다. 성실하다.’고 합니다. 즉 진실은 ‘한결같음, 성실함’과도 상통합니다. 이 경우에 완벽하게 해당하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함없이 진실하고 성실하고 한결같으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진술과 현실의 관계, 이 한 가지만 가지고도 진실 여부를 웬만큼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말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혼돈과 파멸이 얼마나 심한가요. 말이 진실을 잃으면, 세상을 혼잡하게 하고 사람을 흐트러뜨리는 바벨탑이 됩니다. 창 11장의 바벨탑 사건은 고대 시대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역사진술이 아니고 말이 진실을 잃으면, 고대든 현대든 어느 세계든 예외 없이 사람이 분열하는 혼돈의 세계로 떨어진다는 경종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은 말이 다시 진실을 찾도록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 은총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성령강림을 크게 기뻐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보혜사 약속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전면적으로 현실이 된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 현실에서 진리의 영은 더욱 귀합니다. 꼭 집어서 두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하나는 성령을 빙자한 거짓이 매우 난무합니다. 진리의 영을 모신다는 교회에 진리는 사라지고 거짓이 판을 칩니다. 교회가 가짜뉴스를 생산, 유포, 확산하는 진원지가 됐다. 혼돈을 조장하는 바벨탑이 됐다. 성령을 빙자한 거짓은 이제 교회의 일반현상이 됐습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성령을 팔아서 거짓을 전파합니다. 그들이 죄를 덜 짓는 길은 더 이상 성령을 입에 올리지 않는 일뿐입니다.
요새 전광훈이가 매일 희한한 구경거리를 제공하는데, 어제 본 동영상은 집회제목이 ‘성령의 나타남 목회자 집회’였습니다. 청와대로 진격하자고 선동하는 거짓선전을 성령집회라고 합니다. 그런 엉터리 소리에 사람들이 아멘으로 호응하고 장단을 맞춥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거에도 시대를 장악한 기운이 교회를 그렇게 농단해왔습니다. 개발시대에는 개발의 영이 성령으로 둔갑했습니다. 번영의 시대에는 번영의 영이 성령이 됐습니다. 놀라운 일은 명색이 성령집회인데, 진리는 한 터럭도 없습니다. 사실도 아니고 근거도 약한 주장을 진리라고 억지 부리면서 죽을 짓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소망이 있는가? 지금 상태에서 답하라면, 없다 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 그대로입니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 5:30-31)

다른 하나는 성령은 화려한, 인위적 수단이 아닙니다. 진리의 영 대신에 그 자리를 화려한 또는 인위적 수단으로 대신하는 풍조가 뚜렷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사랑의교회 헌당식 동영상과 기사를 봤습니다. 헌당예배는 웅장하고 화려했습니다. 삼천 억 원을 쏟아 부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이벤트로 500년 된 은홀, 400년 된 웨일스 성경이 등장합니다. 온갖 세력자들이 자리를 채웠습니다. 박원순시장, 서초구청장, 이혜훈의원등이 열렬하게 축사를 합니다. 박원순시장의 출현은 정말 의외입니다. 사랑의 교회와 박원순시장은 이해충돌당사자입니다. 사랑의교회가 무단으로 도로점용한 것에 대해 1.2심 법원판결이 다 원상복구하라고 판결이 났고 대법원만 남은 상태인데, 서초구청장은 사랑의교회가 문화센터로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칭송합니다. 도로무단점용을 묵인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정현 목사는 "서울시가 뭐라 하든 누가 뭐라 하든 간에, 우리는 늘 얘기하듯이 세상 사회 법 위에 도덕법 있고 도덕법 위에 영적 제사법이 있다"며 건축을 강행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영적 제사법은 성령을 앞세워 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인간 욕망의 절정입니다. 그런 까닭에 교회 앞에서는 사랑의교회 갱신위원회가 시위를 했습니다. “가짜목사 안수증 회개하라, 편법건축 회개하라” 피켓을 들고, “어떻게 감히 이런 흠이 있는 건물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헌당예배를 하는 것입니까?” 외칩니다. 진리의 성령은 어디에 계신가요? 여러분은 어느 자리에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약속한 보혜사는 진리의 영입니다. 진리와 성령은 한 몸입니다. 진리의 영을 받은 우리도 진리와 한 몸입니다. 거짓 없이 진리의 영을 잘 지키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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