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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읍내에 알렸다
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설교문(19. 6. 23)
2019년 06월 24일 (월) 11:13:29 백창욱 baek0808@hanmail.net

주일설교문(19. 6. 23) 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
누가 8:26-39 “온 읍내에 알렸다”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는 5월 29일 제주해군기지 건설 때 발생한 인권침해 발표에 이어서 6월 13일 ‘밀양청도송전탑건설사건’ 때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작년 10월부터 금년 5월까지 관련자들을 직접 조사한 결과입니다. 어제 교회 카톡에 결정문을 실었습니다. 진상조사위가 경찰청과 정부에 권고한 핵심사항은 이렇습니다. 경찰청에 대해서는 “반대주민에 대한 불법사찰, 특별관리, 회유 등 부당하게 공권력을 행사하고 송전탑 공사반대를 막기 위해 과도하게 공권력을 투입해서 인권을 침해한 사실에 대해 의견을 발표하고 사과할 것.” 정부에 대해서는 “앞으로 본 사건과 같은 공공갈등의 재발과 이로 인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제기준을 국내적으로 실행할 절차적 방안을 강구하고, 반대 주민들의 재산적 피해와 정신적 신체적 건강 피해에 관하여 실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른 치유방안을 마련할 것” 입니다. 앞으로 경찰청이 인권침해 진상조사위 권고안에 대해 어떻게 할 지 지켜보는 일이 남았습니다.

   

2014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악몽의 해였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송전탑과 관련하여 6월 11일 밀양행정대집행, 7월 21일 삼평리 기습침탈이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 송전탑이 세워지기까지 3-4개월 동안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견딘 보람을 얻고 있습니다. 소성리 수요집회와 김천 수요집회에서도 밀양청도송전탑 건설사건에 대해 발언했는데, 경찰이 소성리에서 또 같은 짓(수백배 많은 병력을 동원해서 시민들을 물리력으로 제압하고, 도로제한, 밀착감시, 집요한 채증)을 반복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주해군기지건설과 송전탑건설 반대투쟁에 투신한 일에 대해 절반은 신원받은 느낌입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 정의는 승리한다는 격언은 저절로 입증되지 않습니다. 당사자들이 그 일을 포기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구할 때, 원하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지난 주 한겨레신문은 삼성전자 아시아공장의 노동자 실태를 추적, 보도했습니다.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세 나라 아홉 개 도시의 노동자 129명을 직접 만나 설문 조사했습니다. 보도를 본 소감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입니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아시아의 젊은 노동자들은 이렇게 일하고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혹독한 환경에서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일인당 생산 목표량 1600대, 갤럭시 휴대폰을 13초당 한 대씩 12시간을 조립해야 하루 일이 끝납니다. 할당량을 못 채우면 퇴근도 못합니다. 화학물질 사용여부를 인지하지 못해서 열 명 중 네 명은 건강이상을 느낍니다. 일하다가 쓰러집니다. 그렇게 일하고도 견습공이란 이유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습니다. 작업장은 목표량을 재촉하는 고함과 욕설로 가득 찹니다.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고문으로, 일부 노동자들에게는 혜택을 주고 일부는 배제하는 분할통치 방식을 활용하고, 정규직 전환이라는 미끼를 이용해서 사소한 저항조차 하지 못하게 합니다. ‘파란 목줄을 걸고 출퇴근하는 삼성맨’에 대한 열망은 퇴사 후에야, 그것은 지속 불가능한 극한 노동을 감당할 수 있는 청춘의 한 때를 바친 결과임을 깨닫습니다. 삼성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쪼개기 계약, 견습공 남발 등 탈,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삼성전자의 한 해 매출은 243조 7700억원, 영업이익은 58조8900억원(2018년 기준), 휴대폰 100조6800억원, 반도체 86조2900억원이지만 삼성공장의 어떤 노동자는 돈이 없어 저녁을 굶습니다. 월세를 아끼려고 2~3명이 단칸방에 동거합니다. 삼성이 누리고 있는 전 지구적인 ‘돈의 권능’은 아시아 청년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영혼이 뭉쳐진 값입니다. 이렇게 노동자를 혹사하면서 자본가만 이익을 독점하는 실태인지라, 신문의 큰 제목은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입니다. 삼성폰 좋다고, 삼성이 망하면 나라도 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삼성의 거짓신화에서 깨어나는 게 급선무입니다. 일개 회사가 망한다고 망할 나라 같으면 망하는 게 맞습니다. 한 기독교 신자가 삼성 거짓신화를 확고하게 믿은 체, 구원받았다고 하는 건 구원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래서 어제 신문에서, 십년 만에 산재 인정받은 한혜경씨 이야기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혜경씨는 삼성전자에서 5년 9개월 일하다가 건강 악화로 퇴사하고 뇌종양 진단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시각, 보행, 언어장애 1급 장애인이 됐습니다. 혜경씨는 자신의 병이 산재인 것을 알고 2009년부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지만 대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패소했습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이 대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새로운 행정처분을 내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변호사의 끈질긴 도전에 힘입어서 근로복지공단에 다시 산재신청을 한 끝에, 올해 4월에 산재 인정을 받았습니다. 7전 8기 끝에 이룬 결실입니다.

이들 모녀에게도 오랜 투쟁의 과정 중에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삼성이 십억 원을 줄테니 반올림과 사회단체와 연락을 끊으라는 조건이었습니다. 혜경씨 엄마는 흔들렸습니다. 생활고에 너무 힘들었기에 삼성의 제안을 받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혜경씨는 죽어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모녀가 서로 소리 지르며 대판 싸웠습니다. 그 때 혜경씨의 한 마디가 엄마를 무너뜨렸습니다. ‘엄마는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와도 좋겠냐’고. 정신이 번쩍 든 엄마는 반올림에 연락해서 경위를 설명하고, 마음을 완전히 고쳐먹었습니다. “그래, 누군가에게 우리가 겪은 일 또 겪게 하지 말자, 한번 끝까지 가보자. 오기가 생긴 거에요.” 거대 세력 속에 포획된 한 사람은 극히 연약합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뜻을 꺽지 않고 그 뜻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단결해서(반올림 사람들) 진실을 구하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사실 역시 진리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가 5장에 나오는 ‘거라사 귀신 이야기’의 누가 버전입니다. 마가와 내용상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행보를 눈여겨보겠습니다. 예수는 어떤 행보를 하나요? 오늘 복음 말씀 바로 앞에서 예수와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납니다. 다행히 예수가 풍랑을 잔잔케 하는 역사 끝에 거라사에 닿았습니다. 거센 풍랑에 한바탕 홍역을 겪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말하자면 강력한 목표가 있어서 풍랑을 뚫고 거라사에 닿은 것입니다.

왜 이런 힘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건가요? 거라사가 휴양지라도 되나요? 정반대입니다. 이스라엘의 관습상 부정이 겹겹이 있는 땅입니다. 첫 번째 부정은 이방 땅입니다. 유다인들에게 이방 땅은 배제와 낙인의 땅입니다. 두 번째 부정은 무덤입니다. 시신은 가장 부정한 사물입니다. 그런데 무덤은 시신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습니다. 부정 중 상 부정입니다. 세 번째 부정은 돼지 떼입니다. 유다인들에게 돼지는 가장 부정한 짐승입니다. 그런 돼지가 한 마리도 아니고 떼로 있습니다. 역시 부정 중 상 부정입니다. 네 번째 부정은 귀신들린 사람입니다. 귀신의 우두머리 바알세불이 있으므로 역시 매우 부정합니다. 부정이 겹겹이 둘러 싸여 있는 곳을 예수는 강렬한 의지로 건너왔습니다. 무슨 이유로? 거시적으로는 하나님나라 운동은 정-부정 계율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미시적으로는 귀신들린 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예수는 작심하고 거라사에 온 것입니다.

이 사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는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은 채, 집에서 살지 않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다.”(8:27) 이 사람은 공동체에서 완전 격리되어서,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귀신들림이 매우 중증임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름이 의미심장합니다. 예수가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는 레기온이라고 답합니다. 레기온은 6천명 병력의 로마군단 정예부대입니다. 하필 귀신이 레기온이라는 이름으로 떼로 한 사람에게 몰려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의도적입니다. 이 군대귀신은 무엇을 증언하나요?

도미닉 크로산의 『예수』 라는 책이 있습니다. 역사예수에 관한 20세기 최고 권위자의 결정판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군대와 돼지’라는 주제로 거라사 귀신이야기를 합니다. 내용 중, 여러분이 이해할 만한 대목을 뽑았습니다. 저자가 던지는 첫 물음은 일세기 유대 땅에 귀신들림이 그렇게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여러 형태의 정신적인 질환들과 식민지 억압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66년-73년 사이에 있었던 제1차 로마-유대전쟁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귀신들림과 식민지 억압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노골적으로 로마 제국주의를 귀신들림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또 식민지 지배와 귀신들림을 연결짓는 일이 우리가 단순히 현대의 감정들을 일세기의 상황 속으로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식민지 착취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귀신들림으로 구체화된 것이라는 게 나(크로산)의 생각이다.”

저는 『유배지에서 예수읽기』에서 귀신들림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귀신들림’은 로마 황제와 제국의 억압적인 지배를 말하고, 귀신 들린 자는 제국 폭력에 억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회적인 표현이다. 귀신의 등장은 시대 현실을 감안한 이중 언어의 뜻이 담겨 있다. 식민지 살이에서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비인간적 상황이 귀신들림이고, 그 억압의 흔적이 깊이 남아서 사달이 나면 귀신들린 자가 된다. 예수가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들린 사람을 구제한 이유는 제국의 폭력에 눌려서 신음하는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도 하나님 복음실현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독점 양극화를 유발하는 경제구조의 핵심에 있는 자본과 그 동업자인 권력들이 귀신들림의 유포자이다.” 이번 인권침해 발표에 나타난 송전탑건설 반대주민의 피해 중에는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도 있다. 만성우울증 증세다. 이것을 고대 언어로 말하면, 귀신들림이 되는 것입니다.

거라사 귀신축출 복음은 특별히 일세기 귀신들림에 대해 더욱 강조하고자 거라사 군대귀신을 설정해서 예수와 로마제국을 대면시켰습니다. 예수는 어떻게 귀신을 쫓아내나요?
“그가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고서,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이미 악한 귀신더러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던 것이다.”(누가 8:28,29) 이 대목을 보면, 예수는 말씀으로 명합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는 말씀은 한 사람을 정상으로 돌리는 평범하지만 진실어린 소리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충분히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분쟁현장에 있는 시민들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옳은 말을 할 뿐입니다. 예수가 따로 어떤 특별한 권세가 있어서 귀신이 벌벌 떠는 것입니까? 귀신이 하는 말,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나중 예수 사후 편집자가 붙인 말입니다. 처음 예수를 맞닥뜨린 귀신은 예수가 특별히 어떤 권세를 발휘해서 굴복한 게 아닙니다. 예수가 말하는 참 소리에 굴복한 것입니다.

귀신으로 은유된 로마군대는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로마귀신에 더 이상 눌려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의 지배는 끝났습니다. 그들이 갈 곳은 무저갱입니다. 이제 사람은 자유해야 합니다. 산 사람은 더 이상 무덤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귀신이 나가고 정신이 든 사람이 예수를 따르겠다고 애원했으나, 예수는 그를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합니다. 따르면 좋을 텐데 왜 집으로 가라고 하나요? 귀신들린 사람은 우선 집으로 돌아가서 사람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계속 떠돌이로 다닌다면, 사람들은 그가 여전히 귀신들려 있다고 오해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집으로 돌아가서 내가 귀신에서 풀려나 사람이 됐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사람의 증언도 이웃에게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일세기 군대귀신은 21세기인 지금도 이름만 달리해서 사람들을 무덤 곧 죽음으로 내몹니다. 비인간화의 정점으로 몰고 갑니다. 삼성의 노동자 착취는 대표사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대 군대귀신의 실체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자유하는 길을 부단히 찾아야 합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귀신과 미국이라는 사대귀신과 자본주의라는 맘몬귀신, 반공이라는 분단귀신의 정체를 분간하고 그 속에서 참 사람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한 사람이 진리에 깨어 있으면 군대귀신은 진리 앞에 한 순간 무너집니다. 그 한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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