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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비전과 예수의 분단장벽 허물기
카이로스 역사 40년
2019년 08월 12일 (월) 11:43:33 조헌정 choshalom@gmail.com

<에스겔의 통일 비전과 예수의 분단 장벽 허물기>
겔 37장 16-17절, 요 4장 3-9절

[카이로스 역사 40년]

한민족 오천 년 역사에 가장 치욕적인 기간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이다. 이 기간을 흔히 ‘일제 36년’이라고 말하는데, 왜 36년으로 계산이 되는지 필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강제합병이 일어난 해는 1910년이고 해방은 1945년이다. 통상적인 방식으로 계산하면 35년이다. 필자는 여기서 35년이냐 혹은 36년이냐를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고 일제강점 기간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주장하고자 함이다.

   
▲ 글쓴이 조헌정님은 현재 615남측위 중앙위원, 평화통일연구소 이사장, 언론협동조합 담쟁이 이사장과 민플러스 발행인, 서울민주행동 상임대표, 기장총회와 NCCK 평화통일위원회 위원, 기독교환경연대 이사, 서울이주노동자센터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제국은 1905년 가츠라-태프트 밀약 4개월 후에 일어난 을사늑약으로 인해 일제에게 군사권과 외교권을 빼앗겼다. 독립국가인가 아닌가 하는 판단은 군사권과 외교권의 존재유무이다. 따라서 군사권과 외교권을 상실하였다면 대한제국은 한일강제합방 이전인 1905년에 이미 국가로서의 생명이 끊어진 것이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는 을사늑약 서명 일인 1905년 11월 17일부터 일제가 항복을 선언한 1945년 8월 15일까지로 보는 것이 옳다. 이렇게 볼 때,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기간을 보다 성서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 성서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제2의 창조사건인 ‘노아 홍수 40일,’ ‘애굽의 400년’ 노예의 삶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의 새 역사를 향해 나아가는 ‘광야 40년’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느님 나라 역사를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기도 40일’ 등과 같이 크로노스라는 인간의 시간으로 볼 때는 고난의 시기이지만, 카이로스라는 하느님의 시간으로 볼 때 새 역사 창조의 기간인 것이다.

물론 이렇게 일제강점 기간을 성서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한다 하더라도 현실이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왜냐면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았지만, 동시에 북위 38도선을 따라 미군과 소련군에 의한 분할 점령이 시작되었고, 이렇게 시작한 분단은 오늘까지 74년째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국토분단이 아닌 한국전쟁을 통한 극심한 대립과 반목의 74년이었다. 남한의 국가보안법에 의해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북한은 미국에 의해 극도의 경제제재를 당함으로 민중의 삶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동시에 남한은 북한과의 관계를 놓고 진보ㆍ보수간의 이념 분쟁으로 인한 남남갈등이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세계 기독교 역사에서 경이로운 성장을 한 한국교회의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민족분단과 남북적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오늘은 제1성서의 에스겔 예언자에게 임한 야훼 하느님의 말씀과 요한복음서에 짧게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통해 찾아보고자 한다.

[에스겔의 통일 비전과 계속되는 반목]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왕 이후 남북왕국으로 분열이 되고 약 200년간의 반목과 경쟁을 하다가 북 이스라엘왕국이 먼저 아시리아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한다. 이후 135년이 지나 남 유다왕국 또한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한다. 점령 왕국들의 독립투쟁을 막기 위해 앗시리아제국은 민족들이 서로 섞여 살도록 하는 이주정책을 폈고, 바빌로니아제국은 왕족과 사제들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을 자국으로 끌고 가는 포로유배정책을 폈다.

에스겔, 그는 바벨론에 살고 있던 유대 포로민 중 하나였다. 어느 날 그는 야훼 하느님의 환상을 본다.(37장) 그발 강가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마른 뼈들이 하나의 군대로 부활하는 환상이었다. 하늘의 음성이 들린다.

“사람아, 이 뼈들이 바로 이스라엘 온 족속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도 사라졌으니, 우리가 망했다” 한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느님이 말한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무덤 속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고,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11-12절, 새번역)

그런데 이 해방과 귀환 예언은 단지 바벨론에 붙잡혀 온 유대 백성들에 관한 예언만은 아니었다. 예언의 말씀은 계속된다.

“너 사람아,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 및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써라, 막대기를 또 가져다가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 및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써라. 그리고 두 막대기가 하나가 되게, 그 막대기를 서로 연결시켜라. 그것들이 네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16-17절) ... 내가 그들을 한 백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며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두 나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22절)

통일왕국의 회복 예언이었다. 그러나 귀환 이후 그러한 통일왕국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바빌로니아제국에 이어 페르시아제국, 그리스제국과 로마제국이라는 지중해 전체를 장악하는 거대한 패권 국가들이 줄지어 일어섬으로 약소국인 이스라엘은 독립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성서는 국제 정치적으로 설사 그런 기회가 있었다 하더라도 통일왕국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왜냐면 통일왕국의 회복을 방해하는 적은 외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 내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남유다 왕국의 후예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자 곧바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영도 아래 예루살렘 성전 재건 작업에 착수한다. 이때 귀환한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만(라 1:5) 재건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북쪽 사마리아 지방 사람들의 협조를 철저하게 외면한다.(라 4:3) 그런데 성서에는 이를 반대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소속을 열거하는데 북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던 본래의 열 지파 이름은 전연 등장하지 않고 모두 이방 족속들의 이름만 나열이 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하였다시피 아시리아제국의 점령 정책인 이주정책은 민족을 완전히 뒤바뀌도록 하는 전면 이주가 아닌 일부만 옮겨 살도록 하는 혼혈정책이었다. 따라서 사마리아 지방의 출신들이란 이민족의 피가 섞이긴 했지만, 크게 보아 혈육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아시리아 왕 시기로부터 계속 야훼 하느님을 섬겨온 사람들이다.(라 4:2) 그러나 성서는 그들을 형제로 고백하기보다는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라 4:1)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느헤미야서에서는 산발랏과 도비야을 중심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단순히 성전 짓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넘어 무너뜨리려는 계획까지 세운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왕국의 뿌리 깊은 반목은 두 왕국이 멸망하고 몇 세대가 지나갔건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를 지속 가능케 했던 것이 예루살렘 성전 신앙이었다. 제사장 에스라는 성전 재건을 마치자 이제 내부 단속에 나선다. 그는 이미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둔 이방인 아내들을 내어 쫓는 모세 율법의 준수를 강요한다.(10장) 느헤미야 또한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하는데 거기에는 안식일 규정 준수와 이방인 아내와 사위들을 저들의 공동체에서 쫓아내는 일이 핵심과제였다. 제사장 스가랴나 지방장관 느헤미야는 모두 포로민의 후예로 바벨론에서 출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타민족 사람들과의 결혼을 반대하고 이미 결혼한 경우라도 야훼의 이름으로 저들을 내보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지나친 민족배타주의이다.

그런데 사실 모세의 율법서는 이와 정반대의 주장을 펴고 있다. 모세 오경에서 계속 반복되는 구절이 있는데, 그건 “외국인 나그네를 억압해서는 안 되고 저들을 같은 동족으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유대인들 또한 애굽 땅에 살았을 때,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이다.”(레 19:34)라고 말한다. 신학적으로 보면 룻기나 요나서는 바로 그러한 타민족 포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귀환한 남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강력한 민족배타주의 입장을 견지하는데 이러한 배타주의는 에스라 느헤미야의 시대 이후 예수 시대까지 500년 이상 이어진다.

[차별과 배타를 넘어]

복음서는 이러한 유대민족 배타주의와 잘못된 선민사상을 깨기 위한 여러 가지의 노력을 한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복음서로 알려진 마태복음의 경우 세례 요한을 통해 아브라함을 통한 구원이 단지 혈연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3:9)

마태복음 1장에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족보 40대를 열거하는데, 여기에는 남성 이름 대신에 네 명의 여성이 등장을 한다. 다말, 룻, 라합, 우리야의 아내이다. 이들은 모두 이방 출신일뿐더러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유대의 민족 배타주의를 비판하는 탈민족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말씀을 예수의 지상 명령으로 전한다.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서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웃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은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예수에게서 그는 영생 구원의 상징이 된다.

요한복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자 요한은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복음을 기술하는데, 예수를 창조 때부터 함께 하셨던 말씀(‘로고스’)으로 설명하면서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예루살렘 성전 숙청을 예수 사역의 첫머리에 둔다. 여기서 예수는 단지 성전을 깨끗케 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성전을 허물라’고 하는 폭탄선언으로 나아간다. 곧 저자 요한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 시대, 성전 종교는 끝났으며, 민중의 아픔을 함께하며 특정 장소에 매이지 않는 새로운 몸의 성전 시대가 시작하였음을 선포하고 있다.(2장) 이어 예수 시대를 여는 두 인물을 매우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한 명은 유대인으로 예루살렘 공의회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니고데모이고(3장) 다른 한 명은 수가성 우물가 여인으로 알려진 사마리아 여인이다.(4장) 니고데모는 유대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을, 반대로 사마리아 여인은 가장 업신여김을 당하는 사람을 대표하고 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처음 예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3:10) 한참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야 니고데모는 예수를 체포하려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 반대하여 예수를 변호하는 사람으로(7:51) 그리고 십자가 죽음 현장에 예수의 시신에 바를 몰약을 가지고 온 참 제자로 등장을 한다(19:39).

반면 사마리아 여인은 한번 등장하지만, 니고데모와는 달리 예수와의 첫 만남에서 열렬한 제자가 되어 동네 사람들을 예수에게로 인도하는 전도자가 된다. 흔히 사람들은 이 사마리아 여인을 과거에 다섯 남편이 있었다는 구절로 인해 윤리적인 판단을 하곤 하는데, 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야훼 하느님간의 계약 관계가 남편과 아내(혹은 신랑과 신부)로 비유되듯이(렘 31:32) 여기서 저자 요한이 말하는 남편은 사마리아를 점령했던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이방) 제국을 의미한다. 곧 과거의 다섯 남편이란 애굽,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희랍제국을 말하고 현재의 남편은 로마제국이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오늘의 주제에 깊은 관련이 있는 지정학적 배경을 설명하며 시작이 된다. “예수께서는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셨다. 그렇게 하려면 사마리아를 거쳐서 가실 수밖에 없었다.”(4:3-4) 이는 저자 요한의 해석이지 당시 시대의 실제 상황을 반영한 이야기는 아니다. 당시 모세 율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결법은 사마리아를 부정한 땅으로 여겼기에 사마리아 땅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금단(禁斷)의 땅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갈릴리를 갈 때는 사마리아 땅을 우회하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오른편의 요단강을 건너 올라가서 다시 요단강을 건너가는 방식과 왼편의 지중해 연안을 따라 있는 로마의 국도를 따라 올라가는 두 가지 방식 중의 하나를 선택했다. 이를 반증하는 또 하나의 대화가 나온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자 여인은 이렇게 답한다. “선생님은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여기에 저자 요한은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유대사람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다.”(9절)

결국 예수께서 사마리아 땅을 들어가야 했다고 하는 요한의 말은 당시의 모세 율법을 어기겠다고 하는 예수의 결단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행위는 오늘날 한반도 상황에 비추어 말하면 국가보안법을 어기고 북한 땅에 들어가 주민과 접촉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예수는 율법이 만들어 놓은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복음의 화해 시대를 열고자 하셨다.

[통일의 새 역사를 향해]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의 두 경우를 놓고 기독교 선교의 입장에서 우리 스스로를 비교해 보면, 남한교회는 스스로를 니고데모와 같이 여기고 있다. 남한 인구의 절반 정도는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 절반은 기독교인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는 물론 대형교회 50개 중 절반이 있는 나라로 세계 선교의 중심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이 자긍심은 자만심이 되어 니고데모와 같이 예수를 만나도 진리를 곧바로 깨닫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 바로 그러한 자만감이 오늘날 기독교가 ‘개독교’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마치 이방종교 곧 주체사상으로 더러워진 사마리아 땅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북한 사람에 대한 뿌리 깊은 (빨갱이) 차별의식을 갖고 있다.

남한 사람이 증오하는 첫 번째 대상인 김일성(본명 김성주)에 대해 기존의 편견을 없애고 살펴보자. 김일성의 일가는 뿌리 깊은 기독교 집안이다. 아버지 김형직 선생은 숭실학교 중퇴자로 손정도 목사를 비롯한 여러 민족주의 계열의 목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고 어머니 강반석 일가는 초대 기독교 집안이었다. 그중 외삼촌 강량욱 목사 강돈욱 장로가 유명하다. 소년 김성주는 모친을 따라 만경대 생가 근처의 송산교회당을 다녔으며 가족이 양강도 포평지역에 자리를 잡은 후에는 부모님이 개척한 ‘포평교회당’을 다녔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 옥사를 하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중국 길림으로 건너가 손정도 목사 사택에 3년여 하숙을 하며 손목사가 목회하는 ‘길림조선인교회’에 출석하며 성가대장과 주일학교 교사를 하기도 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최근에 출판된 최재영 목사의 『북녁의 교회를 가다』(동연 2019)에 기술되어 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봉수교회와 칠곡교회뿐만이 아닌 여러 교회들도 소개되어 있으며 특히 포평리교회는 김일성일가의 사적교회로서 지금도 북한의 청소년들이 의무적으로 걷는 ‘배움의 천리길’과 ‘광복의 천리길’의 각각의 출발점과 종착점이 되면서 기독교에 대한 자연적인 소개가 되고 있다.

북은 종교의 자유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다만 외부인들에 의한 전도나 선교는 금지되어 있다. 물론 광복 후 소련과 미국에 의해 한반도가 분할 점령되고 한국전쟁 전후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기독교 자체에 대한 박해라기보다는 일본 제국주의에서 벗어난 한반도가 앞으로 어떻게 자주와 독립을 이루어가며, 또한 어떤 체제를 가지고 나라를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매우 다양한 논쟁들이 만발하던 시대 상황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극단의 시대’라고 불렀던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 맑스를 따르는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부르며 종교인들을 핍박하였고, 서구 기독교 특히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 속에서 이 점에 대해 맹목적 비판을 하였다.

한편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 아래 있었던 대다수의 북한 기독교인들은 미국의 입장에 동의하였다. 광복과 함께 찾아온 미군과 소련군의 분단 점령하에서 한반도는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는 일과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극도의 혼란을 겪었다. 더욱이 한국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겪으면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와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는 극단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3ㆍ1독립만세항쟁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김창준목사를 비롯하여 민족주의적 입장을 지닌 여러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승만정권이 아닌 김일성정권을 선택한 경우도 많았다.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이뤄내기 위해서 남한의 기독교인들은 북한의 체제와 북한 사람들의 삶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 사상적으로는 기독교와 공산주의(혹은 주체사상)와의 심도 있는 신학적 토론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이미 이러한 과정을 겪은 체코의 에큐메니칼 신학자 요세프 호로마드카의 『무신론자를 위한 복음』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남과 북은 한 세기가 가까우도록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휴전상태로 서로를 적대시하며 살아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세계인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이런 수치스러운 역사를 계속할 수는 없다. 진정 예수를 따르는 기독인들이라면 예수를 따라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평화의 사람들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 1. 영어명 Taft–Katsura agreement는 러일 전쟁 직후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문제를 놓고 1905년 7월 29일 당시 미국 대통령 특사이자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츠라 다로가 도쿄에서 회담한 내용을 담고 있는 대화 기록이다. 이 기록의 내용은 미·일 양국이 모두 극비에 부쳤기 때문에 1924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기록에는 서명된 조약이나 협정 같은 것은 없었고, 일본-미국 관계를 다룬 대화에 대한 각서(memorandum)만이 있었다. 각서에 따르면 일본 제국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통치를 인정하며, 미국은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침략하고 한반도를 '보호령'으로 삼아 통치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미국의 동의하에 일제는 4개월 후인 11월 17일 대한제국에 을사늑약을 강요했다.

2. 참고로 광야의 히브리어는 ‘미드바르’로서 ‘미’는 장소를 뜻하는 접두어이고 ‘드바르’는 ‘말씀’ ‘사건’ 혹은 ‘일’로 번역되는 ‘다바르’와 같은 어근을 갖고 있다. 광야는 말씀과 함께 창조와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다.

3. 요한복음은 창조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창조는 7일간에 걸쳐 완성이 된다. 7이라는 숫자는 요한에게 있어 완전성을 상징한다. ‘에고 에이미’(‘나는 ...이다.’)라는 신적 선언(히브리어로 읽으면 ‘야훼’가 된다.)은 7번 나온다. 따라서 6이라는 숫자는 불완전성을 상징한다. 가나 혼인잔치의 여섯 돌항아리(모세율법성전종교)나 사마리아 여인이 섬겼던 여섯 남편(제국들의 신)이 뜻하는 바이다.

4. 강반석 이름이 흔히 베드로의 반석(磐石)을 뜻하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자는 한자어로 돌 석(石)자가 아닌 주석 석(錫)자로 형제 돌림어로 한자어로 강반석(康磐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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