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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민주주의
성령강림절 후 제10주 하늘의 소리
2019년 08월 19일 (월) 16:01:38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촛불 민주주의
사 5:1~7절, 눅 12장 49~56절


▪ 광복 74주년 촛불
지난 8월 15일, 74주년 광복절에 광화문 광장엔 10만 명의 시민들이 또 촛불을 밝혔습니다. 일본의 아베 정권을 규탄하고 경제도발을 중단하라며 든 촛불은 과거 일제의 식민지 만행을 사죄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일본과 일본 국민을 미워하지 않는다며 다만 우리 민족에게 아픈 상처를 입힌 일본의 군국주의와 아베 정권을 규탄한다고 촛불을 들고 외쳤습니다. 촛불은 이미 양국의 민족주의를 넘어 한일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평화에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촛불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 이번 ‘반 아베’ 일제제품 불매운동은 아베의 경제 도발에 따른 순수한 촛불 시민들의 제안과 결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관도 참여하며 반 일본 운동 양상을 띠었지만 관은 나서지 말고 반 일본이 아니라 반 아베라고 수정 제안하여 운동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이는 촛불 시민의 의식 수준이 얼마나 지혜로운 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결과입니다. 앞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촛불을 들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변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됩니다.

   
▲ 사진 : 한현실님

이번 광복절에 거명 된 인물들입니다. 조소앙, 이승훈, 류관순, 남자현, 이동녕, 김구, 김기림은 모두 독립운동의 불꽃이 된 분들입니다. 이들이 나라를 구하는 독립의 불꽃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역시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기독교 신앙인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하나님 체험이 사회변혁운동으로 나아갈 때 더 의미가 깊어집니다.

▪ 효순. 미선이 촛불
촛불 대중 집회가 처음 열린 건 ‘효순.미선이 사건’입니다. 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2002년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경,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에서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친구 생일파티에 가던 여중 2학년생 신효순, 심미선 양이 훈련 중이던 미 2사단 44공병대 소속 장갑차에 깔려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사고 장면 사진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이 사건은 전적으로 장갑차 운전병의 부주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11월 미군 법정은 장갑차 운전병 미군 2명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국민적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미군 병사를 한국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공무수행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1차적 재판권이 미군 측에 있다는 규정 때문에 이 같은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11월 30일 광화문네거리에서 촛불이 밝혀졌고 그 뒤 매주 토요일에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은 17년이 지났지만 그 진상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SOFA 역시 자구 하나 손보지 못한 채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촛불은 진화하여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서 대규모로 밝혀졌고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서도 밝혀졌고 마침내 국정농단 세력을 탄핵하는 대규모 집회에서도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촛불은 전 세계로 나아가 인류 평화를 위해 혁명하고 있습니다.

▪ 광우병 촛불
우리는 광우병을 반대한 촛불을 기억합니다. 2008년 6월에서 7월, 무더운 날씨에도 매일 촛불이 밝혔습니다. 서울 뿐 만 아니라 전국 대도시에서 일제히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서울시청 광장은 우우죽순 텐트가 쳐졌고 낮이고 밤이고 토론이 벌어졌고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와 미국의 세계 지배야욕에 대한 강의가 이루어지고 인터넷 방송이 방영되었습니다. 집단 지성은 이렇게 모아지고 그 싹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촛불은 그저 시민들의 반대와 요구만 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보는 안목을 키웠고 평화롭게 사는 사람의 길을 찾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고난의 현장을 찾아가 촛불을 밝히는 촛불교회도 그 때 태어났습니다. 촛불교회는 교회사적으로 보면 놀라운 모형입니다. 기존 질서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현장 교회 모델을 제시한 것입니다.

▪ 용산참사 촛불
생존권 싸움을 하던 세입자들이 망루에 올라가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망루에 불이 나면서 시민 6명과 경찰관 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재개발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성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당시 서울 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는 퇴임 후에 경주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이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용산 참사가 발생하였을 때도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간 것은 촛불교회였습니다. 우린 참사 현장 건물 앞 골목길에 텐트를 치고 촛불기도회를 시작하였습니다. 1년간의 지난한 싸움 끝에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과 대책위는 보상과 향후 대책에 합의하고 장례가 엄수되었으며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 세월호 촛불
우린 세월호 참사에서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냥 덮어질 수 있었던 참사는 일어나 진실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천막이 처졌고 연일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시민들의 지칠 줄 모르는 진실규명요구로 상당히 긴 시간 촛불을 밝혔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세월호의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제2기 특조위가 꾸려졌지만 활동은 답보상태입니다.

▪ 국정농단 촛불
그리고 시민들은 국정농단에 촛불을 들었습니다. 박근혜를 둘러싼 몇 명의 사집단이 국정을 운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촛불은 다시 광장에서 밝혀졌습니다. 그 수는 늘어나 연인원 1700만명의 촛불이 밝혀졌고 그로 인해 박근혜는 탄핵되었고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아마 세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일 겁니다. 이 작은 촛불이 거대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세워갔습니다. 촛불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이 땅의 참 주인은 국민이라는 준엄한 명제를 각인시켜갔습니다. 우린 이런 나라에 살 수 있다는 것에 감격했습니다.

▪ 불을 던지다
이렇게 촛불은 고통 받고 억울한 민중들을 위로해 주었고 불의한 권력자들의 책임을 묻고 정권을 탄핵하는 심판으로 작동하였으며 새로운 세상을 짓는 희망으로 작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민정권을 창출하는 혁명으로 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일경제 문제에 직면하여 반성 없는 과거사 문제를 불러내어 사죄를 요구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다시 광장에 촛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오늘 성서일과인 누가가 전하는 복음서의 말씀은 정리하면 세 가지입니다.
예수께서는 조금 생뚱맞게 당신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고, 당신이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세례를 받을 것이며, 화해가 아닌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의 평소 기조와는 다른 말씀입니다. 예수는 목숨을 걸고 당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완수할 것이란 강력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체험한 이후 그 어떤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습니다.

▪ 모세와 떨기나무의 불
모세는 ‘물에서 건짐 받은 사람’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 바로는 히브리 노예들의 사내 아이 낳은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태어나는 아이가 아들이면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대규모의 아동 학살이 저질러졌습니다. 그 학살의 파고를 뚫고 살아남은 자가 있으니 그들이 모세들입니다. 그렇게 모세의 운명은 처음부터 개인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죽임 당한 모든 아이들의 몫도 그가 짊어져야할 운명이었습니다. 모세는 운이 좋게도 바로의 딸의 양아들로 들어가 자라게 됩니다. 해방의 씨앗이 제국의 자궁에서 자라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방식입니다. 모세는 대단한 권세를 누리며 역사와 지리, 사상과 문학 등 다양한 고급학문을 익히며 궁궐에서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자신이 애굽인이 아니고 히브리인임을 알았고 히브리인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배 집단의 노예로 소모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군대 장군이 되었고 황제의 신임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혁명을 꿈꿉니다. 모세가 혁명을 꿈꾸었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모세를 혁명으로 나오게 했을까요? 모세 속에 있는 신성한 힘 때문입니다. 히브리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힘이었습니다. 충분한 내부 역량을 집결하고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모세의 1차 노예해방혁명은 패배로 끝났습니다. 그는 광야로 도망칩니다. 미디안 제사장의 도움으로 살아난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살면서 하나님의 징조를 기다립니다. 제2의 혁명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그 때였습니다. 떨기나무 가운데 불이 붙었는데 타오르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모세가 가까이 가보니 그 불은 하나님의 불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떨기나무에 하나님이 임하시니 그 나무는 신성한 나무가 되고 그곳이 곧 거룩한 지성소가 되었으며 출애굽의 역사가 거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세가 들은 떨기나무 불꽃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모세야, 너는 애굽으로 돌아가서 내 백성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시켜라. 내가 너희를 해방하여 이 광야로 인도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이 광야에서 나를 예배하리라.”
모세는 용기를 얻었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히브리 백성 앞에 서게 됩니다. 모세가 두려운 것은 바로가 아니고 히브리 민중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전적인 지지였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들 앞에 서서 하나님을 대면한 이야기를 하고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킬 것임을 천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에게 섭니다. 모세는 담대하게 히브리 노예들을 풀어달라고 요구하며 광야로 나아가 하나님을 예배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렇게 히브리 노예 해방 전쟁은 철저하게 신앙적 운동이었습니다.
결국 모세와 바로의 대립은 애굽과 히브리 노예들과의 전쟁으로 비화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해방 전쟁은 히브리 노예들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고 드디어 출애굽혁명이 일어납니다. 이 혁명은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을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세워질 이스라엘 공동체는 왕권을 거부하고 하나님 통치를 내포한 철저한 민주적인 체제였습니다.

▪ 엘리야와 갈멜산의 불
엘리야 시대는 우상숭배가 만연하였습니다. 특히 바알 신앙은 여호와 신앙을 위협하였습니다. 정착민으로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와 풍요의 신인 바알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엘리야는 우상의 기만을 폭로하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주지 않으면 야훼 하나님 신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을 믿는 이들과 바알을 숭배하는 이들과의 전쟁이 선포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진짜냐 바알이 진짜냐의 겨눔이었습니다. 드디어 격전의 날이 왔습니다. 갈멜산엔 큰 제단이 만들어졌고 제단 둘레엔 큰 도랑을 팠고 물을 가득 채웠으며 둘레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드디어 바알 선지자 850명이 나와 주문을 외우고 하늘에서 불을 내려달라고 크게 외칩니다. 시간이 가도 불이 내려오지 않자 조급해진 바알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 절규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열정적으로 기도하지만 불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젠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야가 나섭니다. 도랑을 더 깊이 파고 물을 가득 채우게 하고 장작개비와 제물에도 물을 흠뻑 붙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운명을 살피시는 하나님, 불을 내려주시어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신임을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보여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도랑의 물을 다 말리고 제단과 제물을 모두 태웠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바알의 싸움은 하나님의 승리로 결정이 났고 백성들은 일어나 가짜 바알 선지자 850명을 죽이고 하나님 신앙을 견고히 세웁니다. 이렇듯 엘리야 시대에 하늘에서 내려온 불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증하는 불이요, 바알 숭배를 심판하는 불이었습니다.

▪ 초대교회와 성령의 불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로마는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처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흩어졌고 그렇게 예수운동은 끝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절망을 딛고 죽음을 각오하고 한 사람씩 마가의 다락방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을 곱씹으며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며 하나님을 갈망하자 하늘에서 불의 혀가 각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이 또한 집단적 하나님 체험입니다. 그 이후 제자들은 로마제국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전혀 다는 용기를 갖고 예수 운동의 증인으로 자처합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시들 줄 알았는데 결국 오순절 성령의 불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 다시 들불처럼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의 존재 이유는 바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 일의 증인으로 세우고자 성령의 불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그저 죽어서 천당이나 가고 이 땅에서 평안하고 지복을 누리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살게 되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동참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광장에 나아가 촛불을 드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거룩한 역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일입니다.

▪ 예수의 불
예수는 “불을 던지러 왔노라”며 이미 불이 붙어 타고 있다면 여한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가 평생 붙들고 사신 것이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전파한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된 인류 사회입니다. 결국 예수가 불을 던지러 왔다는 이 불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 나라로 진실을 기반 한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입니다. 몇몇 특권층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제국을 부정하고 힘이 없고 나약한 사람들, 가난한 이들이 주인이 되는 평등한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선포되는 곳마다 기득권과 갈등을 빚었고 핍박을 받았습니다. 자본이 힘인 물량주의적 세계관으로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애당초 기독교 신앙의 길은 십자가를 지는 결단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처음 제자들은 예수의 초청에 당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와 배를 버리고 예수의 길을 따라나섭니다. 예수에게 주어진 세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어떤 고난도 감당하고자 하는 십자가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이 짊어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가족의 평화를 깰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십니다.
이를 믿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나섭시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는 기쁨을 맛봅시다. 이는 한 방울의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룸 같이 하나님께 바쳐진 우리의 작은 삶들이 모여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불은 이미 던져졌고 촛불은 그 불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촛불은 불의한 세력을 광장으로 불러내어 심판하고 있습니다. 거짓을 드러내고 진실을 밝혀내며 시대를 정화하고 있습니다. 촛불은 강대국의 야만을 드러내고 야욕을 심판하고 죽임의 문화를 태우고 평화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촛불은 사리사욕을 태우고 인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으며 군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불을 거부하면 하나님의 불은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에서 타오를 것입니다. 한 방울의 물방울이 바다처럼 살 수 있는 길은 기꺼이 바다의 삶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동참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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