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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왕국절 하늘의 소리
2019년 08월 28일 (수) 12:17:29 양재성 hfmc1004@hanmail.net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58장 09~11절 누가복음 13장 10~17절


▪ 이 주간의 뉴스
지난 주간 가장 핫한 이슈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신상털이와 한일군사보호협정 일명 GSOMIA 종료입니다. 조국 후보자는 본인의 신상털이보다는 딸과 처동생 등의 비리로 큰 저항에 직면해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깨끗한 인간을 기대한 촛불민심은 크게 실망하고 있고 고대와 서울대 교수 학생들도 적잖은 실망을 하여 촛불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편승하여 자한당과 보수 수구세력들은 연일 인격살인을 하고 있습니다. 딸 조민에 대한 인터넷의 파상공세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조국 교수에 대한 문제는 청문회를 열어 그 시시비비를 가리면 됩니다. 지금 나온 비리가 사실이라면 국민이 용남하지 않을 것이며 사실이 아니라면 음해 세력을 심판할 것입니다. 단순히 정황만 가지고 실격 처리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저도 많이 실망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은 한 인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안 될 일입니다.

   
▲ 가재울녹색교회 양재성님 (사진:한현실님)

GSOMIA 종료도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촛불 시민들은 잘 하였다는 입장입니다. 그간 미국의 눈치 보느라 일본과도 제대로 관계 설정을 맺지 못하였는데 이번 차제에 일본은 물론 미국과의 관계도 새롭게 맺어야 합니다. 미국의 허락이 없이는 북한과의 접촉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보면 우린 미국의 식민지 국가임에 틀림없습니다. 미국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군사정보라인을 형성하려고 하였지만 이는 불가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이루고 미국으로부터도 독립을 이루자는 자존을 세운 소중한 결정입니다. 그리고 GSOMIA가 실질적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되었고 우리 자주권을 세워야할 입장에서도 소중한 기 싸움이 될 듯합니다. 벌써 미국은 실망과 우려라는 말을 쓰며 압박하지만 당연한 예상반응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사는 나라가 한국이라면 한국을 우대하고 한국의 입장을 대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속국으로 여겨온 처사를 뜯어 고쳐야 합니다. 우리의 국력은 그만큼 자라 있습니다. 아니 국력이 없어도 자존심을 지키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용마 기자의 귀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이용마 기자의 책 제목이기도 하고 쌍둥이 두 아들에게 주는 아빠의 유언이기도 하고 이 시대를 향한 이용마 기자의 예언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말은 거슬러 올라가면 유대 청년 예수의 꿈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가혹하고 어두웠던 시절에 거짓부리들을 호령하고 하나님의 뜻을 펼쳤던 예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다스려지는 정의로운 나라입니다. 모든 존재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담겨져 있는 존엄한 존재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자유인이라는 가르침은 당시 백성들에겐 상상할 수도 없었던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꿈은 시대 시대마다 있어왔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모두 꿈쟁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시대 기독교인이 된다는 의미는 새로운 세상을 세우자는 꿈쟁이가 된다는 의미와 통합니다.

지난 금요일인 23일, 상암 MBC방송국 앞에서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있어 참여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원불교 교도였습니다. 그이 누이 이유진씨도 원불교 모임에서 가끔 뵈었습니다. 그의 부인도 원불교 교도요, 그 집안이 모두 독실한 원불교도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원불교에 입도하였고 성인이 되어서도 원불교에 가끔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장례를 원불교식으로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마음만 닦으면 뭐하냐며 행동해야지라며 원불교를 비판하였다고 강해윤 교무에게 들었습니다.
이용마 기자에겐 광화문 광장에 촛불이 밝혀지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국민이 일어났는데도 마음공부만 가르치는 종교는 더 이상 진정한 종교로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도 마음에 새겨야 할 말이었습니다.
김중배 선생은 "나는 이용마 당신의 영혼을 가슴에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그대의 영혼을 가슴에 심을 것입니다. 그 씨앗을 살려 내고 온 천지에 날려 보낼 것입니다. 가꾸고 꽃을 피워내 열매를 이루고, 그리해 모든 생명에게 그 씨앗을 나눌 것"이라며 "그대의 안식을 빌기 이전에 그대의 다짐을 나의 다짐, 우리의 다짐으로 바꾸어 나가기를 다시 한 번 거듭 다짐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진정, 그대의 안식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을 함께하며 해고됐던 동지이기도 한 최승호 MBC 사장은 "기자로서 이용마의 화두는 정의로운 세상이었습니다. 그 세상을 이룰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내외에서 자행되는 외압, 권력과의 유착이 없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용마의 또 다른 화두는 언론개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며 회고했고, 그는 맹렬한 운동가였고, 지략가였습니다. “공영방송 MBC의 주인은 국민이다,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말고 주인인 국민의 눈치만 보자,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는 MBC가 되자”는 슬로건 하나로 시민과 손잡고 싸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싸움의 의미가 뭐냐는 물음에 그는 '우리 싸움의 의미요? 저는 기록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적어도 이런 암흑의 시기에 침묵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봐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용마 기자의 후배인 김효엽 기자는 말합니다.
"형이 떠나면서 남은 우리는 형에게 모두 빚을 졌다고 여겼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빚을 진 게 아니라 형의 꿈을 조금씩 나눠 갖게 된 것입니다. 부자가 됐습니다. 목표를 잃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으면, 그래서 한 걸음씩이라도 걸어가는 멈추지 않는다면, 조금 늦더라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꿈을 형이 우리 모두에게 나눠주고, 조금 먼저 떠났을 뿐입니다. 아마도 용마 형은 옮겨간 저세상에서도 혹시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지, 억울한 사람은 없는지 살뜰히 챙기고, 또 답을 찾을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슬퍼하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건 적어도 이용마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통 크게, 피하지 않고, 또 웃으며 함께 손잡고 가겠습니다.”
장례식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안타까운 눈물이며 동시에 고마움의 눈물이었습니다. 그의 꿈과 그 꿈을 이루려는 믿음과 목숨을 건 행동이 고마웠고, 그를 귀중히 여기는 동료 기자들이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그의 죽음은 아쉽지만 그래도 이용마 기자를 통해 기자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부인이 나와 그의 마지막 모습을 증언해 주었습니다. 부인 김수영씨는 자신이 이용마 기자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라며 “착하게 자다가 편하게 가셨다.”라고 전한 뒤 "암이 동면해주길 바랐고, 암이 더 자라지 못하도록 잘 다스리자고 준비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용마 기자는 마지막까지 암과 함께 살았고 배가 남산만하여 큰 관을 써야할 만큼 암과 함께 가셨습니다. 세상에 암적인 존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암은 없앨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 다스려서 더 크지 않게 우리가 면역력을 잘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이용마 기자가 남기고 간 메시지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마틴 루터 킹의 꿈
1963년 자유의 행진에서 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자유를 위한 가장 훌륭한 시위가 있던 날로 기록될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백 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해방령에 서명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바로 그 상징적인 자리입니다. 그 중대한 선언은 불의의 불길에 시들어가고 있던 수백만 흑인 노예들에게 희망의 횃불로 다가왔습니다. 그 선언은 오랜 노예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즐겁고 새로운 날들의 시작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백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흑인들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백 년 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인종 차별이라는 속박과 굴레 속에서 비참하고 불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 년 후에도 흑인들은, 이 거대한 물질적 풍요의 바다 한가운데 있는 빈곤의 섬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백 년 후에도 흑인들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끔찍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긴박성을 간과한다면, 그것은 이 나라에 치명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흑인들의 정당한 불만이 표출되는 이 땡볕 속의 여름은 자유와 평등의 상쾌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찾아올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만일 이 나라가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간다면, 흑인들이 좀 진정을 하고 자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친 방식으로 미몽에서 깨게 될 것입니다. 흑인들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부여받기 전에는 미국에 휴식도 평온도 없을 것입니다. 정의가 실현되는 밝은 날들이 오기 전까지는 이 나라의 기반을 뒤흔드는 폭동의 소용돌이가 계속될 것입니다.”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꿈에 대한 연설문입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솟아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의 후손들과 옛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에,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미시시피주 마저도,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 아래 앨라배마 주가 언젠가 변하여, 흑인 소년 소녀들이 어린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잡고 형제자매로서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꿈입니다.
어느 날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며,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이사야 40:4~5)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것이 제가 남부로 돌아갈 때 가지고 가는 신념입니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개척하여 희망의 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이 나라의 이 소란스러운 불협화음을 형제애로 가득 찬 심포니(교향곡)로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신념이 있기에,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며, 함께 자유를 위해 싸울 수 있으며 우리가 언젠가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날은 하나님의 모든 자식들이 새로운 의미로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의 조국, 그분의 땅, 달콤한 자유의 땅, 나 그분께 노래 부르리. 나의 부모가 살다 죽은 땅, 필그림 개척자들의 자부심이 있는 땅, 모든 산골짜기로부터,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라.』

▪ 허리 굽은 여인의 해방
오늘 성서일과는 누가가 전하는 복음서 13장의 말씀입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거기에 18년 동안이나 허리가 굽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노동에 노출되어 있어 허리가 굽은 것입니다. 예수는 그녀에게 병마에서 풀려났다고 명령하고는 가까이 오라시더니 그녀에게 안수하니 허리가 펴졌고 그녀는 해방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를 보고 분노한 사람이 있었으니 회당장과 그 일당들입니다. 예수의 권세와 치유가 자신들의 세력을 위협하고 있었기에 안식일법으로 예수의 치유 사역을 비난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는 소와 양이 우물에 빠져 있으면 안식일이라도 건져 주거늘 하나님의 자녀인 이 장애 여인이 고통 중에 있는 것을 안식일에 치유했다고 하여 힐난하느냐며 반문합니다. 이 비유로 보건데 당시 장애 여인은 소와 양보다도 험한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 취급은 고사하고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장애 여인이 치류를 받고 예수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신비입니다. 아무 관심을 얻지 못하고 주목도 받지 못하던 장애 여인을 시대의 중심에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세우고 그의 존재를 들여다보신 분이 예수입니다.

안식일법은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쉴 권리를 선포한 법입니다. 과도한 노동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보호하고 자유인의 삶을 살도록 한 법이 안식일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안식일법이 도리어 노동자들의 삶을 억압하고 정죄하여 숨도 못 쉬며 살도록 하였기에 예수가 분노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께서 이 기적을 베푼 것은 암시하는 바가 큽니다. 예수께서 처음 공생애를 선포하시고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하신 곳도 회당에서였습니다. 복음 선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고 그 복음 선포의 실현으로 이 사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 갇힌 자에게 자유를 그리고 만백성에게 희년을 선포한다며 당신의 출정식을 했던 장면이 연상됩니다. 이 장애 여인의 치유사건은 억눌리고 갇힌 자들이 자유를 얻고 병자들이 치유를 받고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이 주인이 되어 중심에 서는 사건입니다. 이미 그 선포된 복음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하나님 나라는 침범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꿈이었습니다. 당시 무시당하던 무지렁이들을 시대의 중심에 세우는 일. 그들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일입니다. 그 꿈은 예수의 제자들을 통해 실현되었고 지난 2천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을 통해 실현되었고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에 의해 실현되었고 촛불 시민들을 통해 실현되었고 이젠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의 이용마 기자를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재울녹색교회를 통해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이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지구생태계를 살리는 일이며 신앙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며 지극히 작은이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일이니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보내진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에 천착하고 예수의 길을 가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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